지난 주말 강동구 성내동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백인철 챔프 타이틀 획득 31주년 기념식이 개최되어 백인철, 홍수환, 장정구, 김태식, 이경연, 정기영, 박찬희 등 세계챔피언 7명을 포함한 80여명의 복싱인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안상우 '탄다타' 대표의 지인 ㈜해양진주 신진환 대표의 전폭적인 협찬으로 많은 복싱인 들이 오랜만에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오븟한 시간을 함께했다. 다시 한 번 복싱인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행사에는 전 IBF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정기영이 멀리 대구에서 KBC 홍수환 회장과 함께 상경해 자리를 빛내줬다. 대구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정기영 관장은 “지난일은 모두 잊고 새로이 출범하는 자세로 전 복싱인이 화합을 하자”고 역설했다.
5개 기구로 사분오열된 한국복싱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문득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비화가 생각난다. 1944년 26세에 일제 강점기때 학병 징집장을 받고 일본군 학도병으로 중국전선에 배치 되었다가 김준엽과 탈출하여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 한라산에서 백두산의 거리의 두배인 무려 6천리의 벌판과 산줄기를 걷고 걸으며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로 발길을 옮긴다.
한낮엔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도저히 걸을수 없어 낮에 잠을 자고 해가지면 걷고 어느 날에는 4박 5일간 한밤도 안자고 꼬박 걷기도 하면서 드디어 1945년 1월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에 입성, 드디어 광복군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전부터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한 개조파(改造波)와 단재 신채호를 중심으로 한 창조파(創造波)의 이견으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이 심화되면서 많은 독립운동 세력이 임시정부를 떠났고, 이후 지도층을 형성한 김구, 김원봉, 지청천, 조소앙 등의 갈등과 내분, 권력다툼을 지켜본 장준하는 울분을 토하며 외친다. ‘내가 다시 일본군에 입대하여 일본전투기를 몰고와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먼저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이에 김구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경청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비분강개한 김백선 장군은 1896년 3월 1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 중 본진에 요청한 원군이 오지않자 칼을 빼들고 항명을 했고, 총사령관 의암 유인석장군은 ‘그대는 본시 한낱 천한 포수에 불과한 상민 이거늘 어찌 분수를 모르는가’ 라고 훈계한 후 군령위반죄로 포살 시켜버렸다.
김백선 장군은 기개와 용력(勇力)은 비상 하였지만 가난하고 변변치 못한 집안 출신이란 신분 때문에 처형당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시대는 같은 동족이 동족을 노예로 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모순된 구조를 지닌 국가였다.
이러한 내용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벌어지고, 지연·혈연·학연으로 분해되는 병패는 반드시 이제는 종식 되어야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란 중국어가 있다.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서로 다른 점은 잠시 보류하여 논쟁을 피한다는 뜻이다. 55개 소수민족과 연합하여 사는 대륙국가의 풍모를 읽을 수 있는 단어라 생각한다. 할 수 없다는 핑계를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복싱 부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홈페이지 하단 메뉴 참조 (ad@mhj21.com / master@mhj21.com)
댓글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