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화가(예술가)의 자화상(Ⅳ)

김월수 | 기사입력 2020/09/27 [15:36]

[기획] 화가(예술가)의 자화상(Ⅳ)

김월수 | 입력 : 2020/09/27 [15:36]

[편집자 주] 화가(예술가)들의 자의식과 욕망 등이 투영되어 있는 자화상은 그들의 가려져 있는 일생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로서 깊은 영감을 안겨준다. 본지는 ‘자화상미술관’을 건립을 목표로 국내 유명 화가(예술가)들의 자화상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는 Lee Collection[이원주 : (주)대일포장 대표이사]을 통해 화가(예술가)들의 일생·예술관·의식(고뇌)·욕망·시대상황 등을 8회에 걸쳐 살펴본다.

                          

자화상, 사상과 철학을 담다.

 

▲ 김봉준 자화상 45.5×53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동·서양 미술을 살펴보면 변화하는 시대에 흐름에 따라 선풍적인 인기와 유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도전과 시도들을 통해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당대에 조명이 되고 평가되기 마련이다. 간혹 드물지만 인기와 유행을 떠난 작품도 먼 미래에 재평가되기도 한다. 현상은 끝없이 변화하지만 존재(진리)와도 같은 그 본질(예술성)은 변함이 없다. 이처럼 냉험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술가(예술가)는 예술성과 상업성 한쪽만 가지고 자신의 작품이 성공할 수 없고 이 둘 사이의 비율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며 문화의 주체자도 역시 민중이다. 살아 있는 민족문화의 발현은 주체자가 스스로 민중이 되는 창조적 활동에 의해서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 민중미술이란 민중 속에서 진실을 찾고 이를 확인하려는 예술이며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민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의식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개발되는 것이다.(원동석,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 1975)

 

서양미술에서 보면 새로운 표현 매체인 사진이 탄생하자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미술에서도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게 되는데 프랑스 사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구스타브 쿠르베(1819년∼1877년)는 주요 작품으로 '세상의 기원'과 ' 오르낭의 매장' 등 있으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천사를 데려오면 그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사실주의는 사실성과 현실성을 강조하며 아카데믹한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오르낭의 매장’ 역사화는 쿠르베의 사실적 화풍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전의 회화는 종교적, 신화적, 역사적 주제를 다룬데 반해 쿠르베는 평범한 사회적 풍경을 소재로 하였다. 이처럼 사실주의는 형태의 사실보다 진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향으로 사실주의는 후에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의식과 노동자계급예술이 최초로 나타낸 독일의 여류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년)가 있고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직조공들의 봉기’가 있는데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독일 실레지엔 지방의 직조공들의 봉기다. 1840년대에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쓸고 산업혁명으로 생겨난 직조 기계들은 집에서 손으로 직물을 짜던 직조공들의 생활조건을 비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참하고 안타까운 현실의 삶을 공감하고 작품에 담아내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케테 콜비츠가 살았던 19세기 후반부와 20세기 전반부는 정치, 사회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일대 변혁의 시대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 이래 유럽은 혁명과 반혁명의 한가운데 있었고 1905년 러시아혁명, 1914년∼1919년 1차 세계대전, 1917년 2월과 10월의 러시아 혁명, 1918년∼1923년의 독일혁명, 1933년의 히틀러 집권과 1939년∼1945년 2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사건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파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이자 민주화운동과 흐름을 함께 한 사회변혁운동의 하나이고 민중미술가들은 미술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이전의 미술이 다루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주제로 다뤘다.

 

세 번째로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두렁, 그 외 등 10점를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미술의 시대적 변천과 역사성 및 특이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1983년에 출범한 미술동인 ‘두렁’은 김봉준, 장진영, 김우선, 이기연, 라원식 등 있었고 미술계에 공식적 출범을 알린 것은 1983년 7월 애오개소극장에서 펼친 '창립예행전'과 1984년 4월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통해 알려졌고 단청이나 탱화 등 민속 미술의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를 위해 판화나 벽화, 걸개그림 등을 통해 전통미술이 가지는 다양한 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하였고 동학혁명으로부터 일제와 민족분단, 그리고 군사독재의 시기를 거치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의 넋을 달래며 그들의 죽음과 희생이 의미 있는 역사의 밑거름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공동체적 의지가 표현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각자 예명을 사용하였고, 실제 창작자나 주필을 가린 채 탄생한 ‘공동 작업’들은 미술계 안에서 ‘두렁’의 양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공식적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문제 삼은 작품은 ‘두렁’의 공동작업 노동운동사 연작 '노동자의 힘', 대우어패럴 노동자파업 농성 사건을 담은 '대우어패럴파업(대우어패럴 해산)','연대투쟁(동조파업)', '이렇게 슬기롭게', '당신은 당국의 노동대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자의 삶을 그린 작품 '우리들의 밥을 뺏지 마시오', '우리 아빠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산다.' 등이 있으며 두렁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동일방직·반도상사·해태·원풍모방 등의 노동조합과 연계하며, 노동자·민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현장에서 활동하고자 하였다.

 

“민중시대의 예술은 대중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예술을 다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산 미술', 1984, 두렁, p.16)

 

자화상

 

칠성(七星) 김월수(金月洙) 

 

오, 자유여!

너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정의라는 이름에 못 박히고

권력의 힘에 밧줄로 꽁꽁 묶이며

똬리 튼 허상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너는 힘겹게 걸쳐 있구나.

어차피 너도 편히 죽지도 못할 운명이라고 한다면

나와 함께 굿굿하게 버티고 이기며 힘껏 살아보자꾸나!

빈 가슴에 진정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서양화가 김봉주의 '자화상'을 보고 쓴 시

 

1980년 7월 창립한 광주자유미술인협회는 이하 광자협, 1979년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홍성담, 김산하, 강대규, 최익균(최열), 이영채 등 7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미술 소그룹이다. 창립전을 준비하던 중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창립전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이후 사회변혁운동과의 조직적 연대, 노동 현장에 결합하는 미술 투쟁을 중심으로 한 선전 활동을 통해 조직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두 차례의 야외작품전, 판화 강습, 시민미술학교를 통한 대중미술 활동과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등에 민화반과 같은 대학 미술운동 동아리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미술 민중교육운동을 수행했다. 1983년에 접어들어 광주 지역 문화운동의 출발을 알렸던 단체 ‘일과 놀이’(광주‘민중문화연구회’의 전신, 1984년 결성)에 미술 분과로 참가하면서 각종 시각매체를 제작했고, 1985년 광주 ‘시각매체연구소’로 재편되었다.

 

1985년 창립한 서울미술공동체(약칭, ‘서미공’)는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미술가들로 구성된 소집단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이다. 참여 소집단은 △실천 △황단 △나무 △에스파 △시대정신 △십장생 △억새 등이었으며, 참여 작가는 △문영태 △최민화 △손기환 △이인철 △김방죽 △곽대원 △주완수 △박진화 △류연복 △황세준 등이다. 1985년 2월, ‘서미공’이 주관하는 연립전 형식의 행사였던 '을축년 미술대동잔치'를 개최하며, ‘표현의 자유 권리 쟁취’, ‘작품의 소통’, ‘유통의 대중화 운동’을 활동의 핵심으로 내걸었다.

 

▲ 왼쪽부터 두 번째 서양화가 신학철, 화가의 자화상 수집가 이원주   © 김월수


Lee Collection(이원주, 미술사학 공부한 작품 수집가로서 ‘자화상미술관’을 추진 중임.)

-‘화가들의 자회상’ 작품에서 1. 민중미술 ① 현실과 발언 10점 ②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대한민국의 국토면적) 10점 ③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두렁, 그 외 등 10점 2. 팝아트 10점 3. 페니미즘 10점 4. 극사실주의 10점 등에서 화가의 삶과 인생이 투영된 자화상 작품을 통해 미술의 시대적 변천과 역사성 및 특이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 신학철 자화상 60x72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민중미술(Minjung Art)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비판적 예술 운동으로 설명되어 왔으며, ‘미술 장’(Field of Art)1) 내에서 보편적인 것(the universal)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믿어져 왔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군부독재 체제에 있던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모순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민주화 운동 세력이 당대 미술 형태와 화단의 풍조를 비판하던 기류와 만나 한국의 화단에 영향을 미치며 탄생한 민중미술은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갈망하는 사회 변혁 세력과 정치적 입장을 일정 부분 공유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 민중이 추구했던 민주적 이상(자유·인권·평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기여하며 한국미술사 안에서 한 주류를 형성하였고 ‘새로운 미술운동’, ‘삶의 미술’, ‘민족미술’, ‘민중미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사회참여적 미술(socially engaged art) 형태의 흐름은 한국 사회 안에서 다양한 소그룹 운동으로 나타났다. 

 

자화상

 

칠성(七星) 김월수(金月洙) 

 

허망함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인생의 바다 

요동치는 삶의 파도 위에서

살풀이 (수건) 춤추는 동안

불운의 살과 함께하듯

삶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진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부여잡은 톡 튀어나온 바위 턱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올라온다.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하얀 수건 다시 주워 들면서

기쁨과 행운 기원하듯

공손히 두 손으로 모아 받든다.

희망은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서양화가 신학철의 “자화상”을 보고 쓴 시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Renaissance)의 위대한 미술가들(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을 볼 때 인간의 권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표현의 자유라 말할 수 있고 인간이 다양한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그것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가(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곧 그 나라가 가진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한 평가하는 기준이다.

 

미술사조에서는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에 이어 혁명과정에서 생겨난 19세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인상주의, 모더니즘이 등장하였고, 세잔느를 이어 브라크와 피카소가 큐비즘을 구축하고 구현한다. 또한 표현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 20세기 전반기에 다양한 미술사조가 생겨나고 있었다. 한편, 프랑스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과 그에 영향 받은 유럽과 세계 노동자투쟁의 분출은 미술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요구하면서 리얼리즘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된다.

 

한국 민중미술 형성과 발전 그리고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민중미술은 이미 서구에서 유행이 지난 미술사조”라고 비판하고 “미적으로 세련 화 시키고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동아일보, 1985년 7월 18일)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의 발언: “문화예술가 중에는 일부 투쟁인사들의 구호처럼 자신을 권력의 억압과 착취를 받아 헐벗고 굶주린다는 소위 민중과 동일시하여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발언 및 경고하였다. (“도구문화의 해독성을 경계함”, 경향신문, 1985. 7.22, 2쪽)

 

당시 한국의 화단에서 민중미술은 구호와 이념이 앞서 있고 기법도 치졸하며 작품으로 형성이 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적으로 말한다. 

 

민중미술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서 한국미술의 새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사회 참여적 예술로 단순히 예술계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대안적 방법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1989년 동구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지켜보며 사실상 대의가 사라졌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민미협’과 민중미술가들의 운동으로서의 활동은 2000년을 접어들면서 자유로운 민주화된 삶과 각자 개성을 요구하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미술을 통해서 보면 주류와 비주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상황에서도 있게 마련이다. 시대의 조류 속에서 지금 현재 이 순간 미술가(예술가)로서 자신(정체성)은 무엇(목적과 방향)을 할 것인가?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어필하거나 어떤 사회적인 사건에 대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켜 회자(膾炙)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예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가져야만 된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여겨진다. 

 

▲ 신학철 자화상 30x42cm 나무에 페인트 1970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박건 자화상 45.5x53cm 캔버스에 유화 1981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박건 오월자화상 26x36cm 목판화 1984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박건 해골자화상 19x24cm 캔퍼스에 오브제 2020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이윤엽 자화상 30x42cm 목판화AP 2003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최경태 자화상 60x72cm 캔퍼스에 유화 2003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권순철 자화상 32x41cm 캔버스에 유화 1976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 서용선 자화상 35×41cm 캔퍼스에 유화 2015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2020.09.24 미술평론 김월수(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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