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설날 아침에 / 김종길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2/08 [08:57]

[이 아침의 시] 설날 아침에 / 김종길

서대선 | 입력 : 2021/02/08 [08:57]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博)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당연히 돌아와야겠지만, 어쩌면 집에 못 돌아 올 수도 있어요’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립병원 응급실에 당도 하였을 때, 병원은 폐쇄되어 있었고 응급실도 코로나 확진 환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차를 돌려 시내 이빈후과에 들렸다. 이석증과 감기 몸살이 동시에 찾아온 것이었다. 구토와 멀미와 어지럼증 처방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털신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발의 기억을 가진 털신을 다시 신고 눈 덮인 마당도 둔덕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몇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면역력이 떨어져 파도처럼 들고 나던 감기 몸살을 떨치고 일어나니 “설날”이 코앞이다. 모처럼 대청소를 하니 익숙하던 물건들도 다시 보였다. 털신을 신고 다시 현관 밖을 나설 수 있어 다행이고, 뽀송하게 마른 빨래의 감촉이 느껍다. 새 먹이통에 먹이를 가득 넣고 휘파람으로 새들을 부르는 것도 즐겁고, 지난겨울 강추위 속에 태어난 강아지 삽살이가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도 귀엽고, 마당 한 귀퉁이에 어느새 얼굴을 내민 여린 풀잎들을 만나면 뭉클해진다. 당연하던 일상이 이리 새롭게 다가오다니.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병에 시달리다 일어나니, 올해의 “설날”은 더 “따스하게” 맞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서 맞이하는 “설날”은 매년 당연하게 돌아오던 설날과는 같지 않으리라. 비대면 생활이 지속 되면서 설이면 흥청이던 재래시장 풍경도 이전 같지 않고, 어떤 가족은 코로나로 여전히 고통 속에 있을 것이며, 가족모임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운 것을 생각하”고 싶다. “세상은/험난(險難)하고 각박(刻博)하다지만”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꿈도 좀 가지고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뿐이랴, 당연하던 것들이 우리를 돌보던 일상을 찾는 그 날까지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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