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 박종용 화백 ‘전용전시관’과 ‘화운당 아틀리에’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 오픈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1/04/15 [15:47]

[현장탐방] 박종용 화백 ‘전용전시관’과 ‘화운당 아틀리에’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 오픈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1/04/15 [15:47]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 오픈

 

지난 14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소재 내설악백공미술관과 박종용 화백의 ‘화운당(花雲堂)’ 아틀리에를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제1전용전시관(일생관) 오픈에 이어 20일 오픈 예정인 제2〜3전용전시관(‘결’ 전용전시관 및 ‘도자·조각’ 등, 입체작품 전시관과 그간의 작업상황 등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내설악백공미술관 1층에 위치한 박종용 화백 전용전시관은 모두 3개관으로서 제1전시관은 일생의 작품 전시를, 제2전시관은 ‘결’ 전용전시관, 제3전시관은 도자, 조각 등 입체작품 전용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었고, 제1〜2전시관은 각 75평, 제3전시관은 10평의 면적이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2전시관인 '결' 전용 전시관에 전시된 작품  © 박명섭 기자


전용 전시관 오픈과 관련해 박종용 화백은, “작년 11월 제1전시관(일생관)을 오픈하면서 올 봄 ‘결’ 전용전시관을 오픈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이번에 ‘결’ 전시관을 마련하면서 입체작품(도자·조각)전시관을 동시에 오픈하는 것이다. 전용전시관은 미술관 속의 또 다른 미술관으로서, ‘결’ 작품 관람문의가 쇄도하여 오픈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설악산 자락의 한적한 백공미술관의 기능강화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 전용전시관 마련 취지 등을 설명했다. 

 

제1전용전시관(일생의 작품)에는 수월관음도 등 불화작품 및 책가도, 백동자도 등 각종 민화작품과 산수화 등 20여점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제2전용전시관에는 ‘순정 결’ ‘색체 결’ ‘공전 결’ ‘결의 빛’ ‘인물 결’ ‘정물 결’ 등등 각종 ‘만유(萬有) 결’ 20여점이 환상적인 조화 속에 판타지아를 울리고 있었다. 입구  쪽 제3전시관에는 도예 및 조각 작품 60〜70점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용전시관 운영 등과 관련하여 박종용 화백은 “불화, 민화, 영모화(호랑이 등), 인물화, 산수·정물화 등 보관 중인 작품들이 600∼700점에 이르고, 도자·조각 작품들도 부지기수이다. 더하여 ‘결’의 작품들은 향후 수없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연중 교체전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2층 전시관은 소장전, 기획(초대)전 등을 하면 되고…”라고 설명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와도 같은 백공미술관이 작가의 창의력으로 영감의 산실로 변신을 도모하다니 가슴이 찡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1전시관인 일생관  © 박명섭 기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박종용 화백의 삶은 고난의 천재작가에서 생명예술을 향해 구슬땀을 흘려가며 원로한 선원의 미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불꽃같은 삶이었다. 60여년 풍상이 그를 ‘전천후 예술가’ ‘예술의 연금술사’로 변모시켰지만, 섭리의 작용으로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여 세계의 하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만유(萬有)‘결’ 예술을 통해 세계인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에 따라 의미 부여가 다를 수 있지만, 박종용 화백에 있어 ‘결’은 우주의 본원으로서 삼라만상이다. 인간들이 밝혀내고자 하는 궁극의 원리인 삼라만상의 이치를 ‘결’로서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즉, 삼라만상의 이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결’의 예술로 표현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결’은 박종용 예술의 총괄 결산표로서, 쇠보다도 더 강인한 예술의지 등에 비춰 앞으로 향후 수많은 ‘결’의 예술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에 ‘결’의 전용전시관을 오픈하여 연중 교체전시하면서 미술관의 기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향후계획 등과 관련, “저는 영원한 작가다. 작가가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큰 계획은 없다”면서 “저는 수시로 ‘영겁의 세월 속에 찰 라의 이승에서 살아간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나의 흔적은 작품이다. 이를 위해 생명을 불태울 것이다. 작품하다 죽는 것이 소망이다’라는 말을 읊조리곤 한다. 이는 명작창작에 대한 갈망이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사 희로애락을 멀리하면서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험난했던 인생 역정과 관련해 “60여년 풍상의 작가생활을 하면서 겪은 아픔과 파란은 수권의 책으로 발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눈물서린 인생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알고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사실 작가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고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끝임 없이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면 반드시 빛을 발할 것이라는 미의 진실을 믿고, 예술을 벗 삼아 세상사 곁눈질 하지 않고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것이다.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3전시관에 전시된 달항아리  © 박명섭 기자

 

또한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예술외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 같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치열한 예술 혼을 불태워야 한다.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을 오픈한 것”이라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아틀리에와 전용 전시장이 세계인 박종용 탄생 산실이 될 것을 염원 

 

이렇게 전용전시관(제1∼3관)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 대화를 나눈 후 미술관 부지 귀퉁이에 있는 하얀 목조건물의 화실 '화운당아틀리에'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작업장과 작품 및 각종 재료들로 꽉차있는 3개의 방의 모습은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했다. 방 3개에 있는 그림들을 세어보니 대충 60점 내외였고, 그것도 대다수 100∼400호의 대작들이었다. 20호 내외의 작은 작품들은 불과 몇 점 정도에 불과했다. 미술관 전용전시장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20여점을 합해 무려 80여점이다. 그것도 10여점을 제외하고 전부 대작들이었다.

 

이 많은 대작들을 대체 언제 완성했냐고 묻자 작가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매일 18시간정도 작업하여 5개월 만에 이정도 작업을 소화했다. 식사시간 및 5시간 정도 취침시간 외는 18시간정도 작업만 했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수 만점의 점을 찍어야 하고, 특히 몇 번 말리면서 찍고 또 찍어야하는 하는 힘든 과정인데, 5개월 만에 어떻게 대작 80여점을 창작해 낼 수 있었을까. 이정도 공력이 들어가는 힘든 작업이면 대작 80여점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기자는 박종용 화백의 창작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이같은 설명이 사실임을 잘 알고 있다.

 

▲ 박종용 화백의 아틀리에 '화운당' 내부  © 박명섭 기자

 

작업과정에 대해 박종용 화백은,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기 때부터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초긴장 속에서 100호, 200호, 500호의 작품 80여점을 창작했다. 하루 5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매일 초죽음 상태로 작업했다. 작품들의 재료가 고령토이고, 작품마다 1만점 이상의 점들을 정교하게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공력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늦은 가을에 대형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작품들을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안고 작업을 했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 것이라 할 수 있다”면서 지난한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이쯤 되면 거의 짐승 같은 생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사를 멀리하며  고독한 작업실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종일 내내 땅방울을 흘려가며 붓질하는 모습은 넘어 雪嶽道人(설악도인)을 연상시키는 기인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외로 간단했다. “저는 운명적 예술가로 작품 활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성공은 지난한 일이다. 특히, 한국적 상황은 예술계에서도 학벌 등 끼리끼리의 인맥 등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작가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고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끝임 없이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면 반드시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작품 활동 외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인생은 유한하고 예술은 영원하다. 유한한 인생에서 그마나 작품을 통해서라도 삶의 흔적들을 남기기 위해 세상사를 멀리하면서 이토록 몸부림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내설악 백공미술관 전경  © 박명섭 기자


무릇, 세계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이는 모든 예술가들이 풀어내야 할 궁극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이의 실현을 위해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하면서 처절한 예술의 노예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을 다짐하는 결연(決然)한 자기선언을 하면서, 미래가 기억할 작가를 향해 생의 종점까지 치열하게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박종용 화백은 고비 고비마다 천부적 재능을 표출하면서 불모의 땅을 헤쳐 왔다. ‘순정 결’에서 시작된 결들의 향연은 ‘색체 결’ ‘공전 결’ ‘결의 빛’ ‘인물 결’ ‘정물 결’ 등등 각종 ‘만유(萬有) 결’로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주의 본원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향후 그의 예술이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인 박종용 등장이 예감되는 상황이다.

 

더하여 박종용 예술의 전진기지인 백공미술관 (전용)전시관이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활성화 되어 갈지 또 다른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박종용 화백은 ‘화운당아틀리에’에서 신화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백발을 휘날리면서 구슬땀을 흘리며 창작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그의 전용전시장을 통해 냉엄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아틀리에와 전용전시장은 화살과 화살통처럼 운명적 관계다. 아틀리에와 전시장이 세계인 박종용 탄생의 산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더욱 정진해 광대무변한 화엄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길 염원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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