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나무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 임윤식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7/26 [08:39]

[이 아침의 시] 나무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 임윤식

서대선 | 입력 : 2021/07/26 [08:39]

나무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텃밭에서 할머니가 풀을 뽑고 있다

허리 굽힐 때마다 희끗희끗 보이는

저 가슴

한때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옥마산 말재 오르는 산길

가파른 비탈 바위 난간에

아름드리 한 그루 걸터앉아 있다

 

계곡을 타고 오르는 바람결 부드럽다

가슴 풀어헤친 나무

눈높이에 옹이 두 개 나란히 솟아 있다

제법 풍만하게 튀어나온 두 봉우리

 

이젠 딱딱하게 굳은 흔적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새순을 길러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저 젖꼭지로 모여들었을까

얼마나 싱싱하게 부풀었을까

 

햇볕 한 가닥 끌어들이기 위해

그 심장은 또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 ‘어떻게 저렇게까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강원도 쪽으로 가는 길에 시뻘건 민둥산을 마주쳤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나무들의 아우슈비츠를 목도(目睹)한 것 같았다. 얼마 전 모 저널 뉴스에서 마치 ‘동물 가죽을 벗기듯 울창하던 산림이 싹쓸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도중 직접 민둥산을 만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민둥산에서 학살되듯 잘려나간 나무들에 기대어 살던 새들, 다람쥐들, 청설모들, 해마다 찾아와 새끼를 낳아 기르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돌아가던 철새들, 그 숲  속에서 새끼들과 풀뿌리를 캐던 멧돼지들, 너구리, 족제비, 고라니들과 두더쥐 가족들,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곤충들과 벌레들과 지렁이들, 그리고 나무의 “젖”을 얻어먹으며 크던 크고 작은 균류의 생명들, 매년 “새순을 길러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던 뿌리와 물관이 퍼 올린 수액이 “나무의  젖꼭지”를 채우고 새순을 먹이려 “얼마나 싱싱하게 부풀었을까”. 그 모든 숲속의 생명들에게 미리 양해라도 구하고 저리 무참하게 벌목해버린 걸까?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은 수명이 오래된 나무에는 나무의 신령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앞둔 딸을 위해 오동나무 장을 짜주려고 오동나무를 베는 날, 그 오동나무의 주인 아저씨는 동네 어르신들을 초대하고, 오동나무 아래 막걸리와 약간의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한 다음, 나무를 베어야 하는 이유를 고하고 막걸리를 따라 나무 밑둥 아래 뿌리며 허락을 구했다. 동네 뒷산 조림한 숲이 너무 울창해지면, 이장은 동사무소에 신고하고, 전문적으로 간벌(間伐)하는 분들을 모셔왔다. 간벌은 나무들의 심한 경쟁을 막아주고 나무들의 밀도를 줄여주어 햇살과 바람과 영양을 더욱 잘 섭취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잘린 나무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제2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민둥산이 될 정도로 벌목한 이유는 돈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우거진 잡목을 더 나은 수종으로 바꾸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 심은 어린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기까지는 적어도 몇십 년은 걸릴 것이다. 어린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기온 이상으로 인해 민둥산이 쓸려갈 만큼의 폭우나 홍수가 나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대처전략은 마련되어 있는지 궁금하고 불안했다. 비록 수종 개량을 한다고 해도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로 넓은 면적의 나무들을 ‘싹쓸이하듯’ 잘라버리기보다는 일정한 면적을 나누어 한쪽에서는 묘목을 심어가면서 순차적으로 벌목이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무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 나무도 생각하고, 나무 끼리 의사소통하고, 고통을 느낀다. 학살되듯 잘려나간 나무들의 아우슈비츠처럼 보이는 민둥산 근처를 지나며, 인간들의 잔인한 행위에 진저리쳤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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