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난민 / 윤석산

서대선 | 기사입력 2021/10/11 [08:58]

[이 아침의 시] 난민 / 윤석산

서대선 | 입력 : 2021/10/11 [08:58]

난민

 

도심 한복판에 멧돼지가 출현을 했다

그것도

어린 것 두 마리까지 데리고.

 

놀란 시민들 우왕좌왕 피해다니고

출동한 기동경찰의 총격에

멧돼지 일가족은 피를 흘리며 도심 한가운

데에

그만 사살되어 버렸다.

 

사람들에 의하여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 일가족

널부러진 채, 

그 사람들에 의해 쓸쓸히 끌려가고 있었다.

 

# ‘해도, 너무 하네’. 마을 가까운 능선 비탈에 도토리 껍질이 족히 두어 말도 넘게 버려져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도토리 껍질을 집어 보았다.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우내 야생의 짐승들이 먹어야 할 뒷산의 도토리들을 누군가 집중적으로 주운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마을 바로 뒤 능선 비탈에 도토리 껍질을 내다 버렸으니,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 중 누군가 도토리를 싹쓸이한 이웃이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다. 아홉 가진 자가 하나마저 빼앗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겨울이 되면 허기를 참을 수 없었던 멧돼지들이 마을까지 내려오고, 먹이를 찾느라 둔덕이랑 밭고랑을 파헤친 자국이 거칠게 남아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것 아닌가. 

 

인간의 욕심이 생태계에 개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50년대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벼 이삭을 먹는 참새를 보고는 참새 소탕 작전을 벌렸다. 그 결과 1958년경 중국 전역에는 약 2억 마리의 참새가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정말 쌀의 소출이 늘어났을까? 참새가 사라지자, 쌀의 소출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굶어 죽은 사람들이 170여만 명이 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태계 먹이 사슬(food chain)에서 생산자인 벼를 1차 소비자인 메뚜기가 먹고, 그 메뚜기는 2차 소비자인 참새가 먹는다. 그러나 참새가 없어지자 벼를 먹는 1차 소비자인 메뚜기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벼의 알곡을 파먹어 오히려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태계의 먹이 사슬 속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원인으로는 태풍, 지진, 산불 같은 것이 있지만 제일 큰 요인은 인간에 의한 인위적 파괴이다. 댐 건설과 도로 확장, 산업체 건설에 따른 산업용 폐기물과 화학물질, 오염물질의 방류와 난개발,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간세인 지구는 이미 많이 상처받고 파괴되었다. 

 

“사람들에 의하여/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난민 일가족”이 된 “멧돼지 가족”이 “어린 것 두 마리까지 데리고”, “도심 한가운데 출현을 했다”. 깊은 산, 활엽수가 우거진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멧돼지가 왜 도심 한가운데까지 내려오게 되었을까? 최근 우리나라 산들은 수종 개량한다고 수십 년 된 나무도 몽땅 잘라버려 온통 민둥산을 만들어 버렸다.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생명들이 거처를 잃고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농법과 농업혁명으로 도처에 먹거리가 그득그득 쌓여있는데도, 야생의 생명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비축하고 먹어야 할 도토리나 밤 같은 소박한 먹거리까지 싹쓸이하듯 빼앗고 있다니... 함께 상생해야 할 지상의 생명체들을 “난민”으로 내몰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무섭다. 결국에는 이 모든 탐욕과 이기적 행동의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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