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색깔의 정치학

강인 | 기사입력 2022/06/20 [10:47]

[강인 칼럼] 색깔의 정치학

강인 | 입력 : 2022/06/20 [10:47]

 

‘백치(白癡)’라는 말이 있다.

 

‘백치’는 19세기 러시아의 세계적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이기도 한데 이 소설 속에서 백치라고 불릴 만큼 때 묻지 않은 주인공 ‘미쉬킨’ 공작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게 한 점이나, 한국의 근대소설가 계용묵(桂鎔默)이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백치 아다다’에서 벙어리인 주인공 ‘아다다’(소설 속의 이름은 ‘확실이’지만 그녀가 입을 벌려 말하려 하면 '아다다다~'라는 소리밖에 낼 수 없기에 '아다다'로 불림)라는 여인이 순수하고 진실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다 끝내 물에 빠져 죽는 비극적 모습을 보여줌으로 사전적 의미의 백치(Idiot)는 ‘Fool’과는 달리 꽤나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단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백치는 순수한 인간성의 상징이다. 오죽하면 ‘백치’ 뒤에 아름다울 ‘미(美)’를 붙여 ‘백치미(白癡美)’라는 표현을 썼겠는가?

 

그러고 보면 ‘미쉬킨‘이나 ’아다다‘는 결코 백치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순수한 인간성이, 오염된 세상 속에서 사나운 바람에 떠밀려 사라져 간 흠모의 대상이다.

 

사람을 ’색깔‘로 구별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흰색이다. 이 흰색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무색(無色)으로서의 흰색이다. 비유컨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어찌 보면 백치의 상태이다.

 

또 하나는, 유색(有色)으로서의 흰색이다. 이 흰색은 세상의 모든 색깔을 흡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이 흰색 속에 감춰져 있는 어떤 다른 색깔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빛을 받아 생긴 모든 색깔이다. 이를 가리켜 ’빛깔‘이라고도 한다.

 

이는 빛을 받아 생겨난 다른 색깔들을 통째로 삼킨 어둡고 음흉한 검은 색깔이기도 하고 또한 고혹적인 무지갯빛 색깔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과묵한 듯하면서도 시커먼 속내를 품은 검은 색깔이나, 찬란하리만치 아름다우면서도 현란한 무지갯빛 색깔이 역겹다. 백치처럼 순수해 보이는 흰색 뒤에 감추어진 흑색의 음흉함과 무지갯빛 고혹의 소리장도(笑裏藏刀)가 두렵다.

 

수년간 역겨움 속에 어쩔 수 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던 검은 사술(詐術)과 무지갯빛 희롱(戲弄)이 그 수명을 다한 이즈음, 필자가 앞으로 바라보고 싶은 새로운 공복(公僕)의 색깔은 이 혼탁한 세상에서 만나기 힘든 순수한 흰색이었다.

 

그러나 현재 보여지는 그 흰색이 잠시 빛을 받아 생긴 일시적 흰색은 아닐까? 그래서 혹, 그 속에 다른 색깔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요즘의 여러 날을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지내고 있다.

 

이는 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저희 선대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 선대위입니다”라는 애매한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대선에서 진보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거전략이었던가?

 

당시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한길은 지난해 12월 12일 사무실 현판식을 마친 후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고 이를 실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윤 후보뿐이다”라는 아전인수격 의지를 천명(闡明)한 바 있다.

 

물론 정권교체를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정권교체만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정권교체 후 새시대위원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새시대위원회는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지난 5월 26일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국민통합위원회‘를 출범, 초대 위원장에 김한길을 내정했다.

 

결국 ’새시대‘란 ’국민통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국민통합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다툼이 사라지고, 중도(中道)층까지도 함께해야 하는데 우리 국민의 독특한 정치적 정서로 보아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도 SNS에서는 다수 국민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마치 식음을 전폐한 듯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자고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정치적 병폐는 국민 분열이다.

 

‘보수-진보’를 비롯하여 ‘친북-반북’, ‘친미-반미’, ‘친일-반일’, ‘친중-반중’, '호남-영남' 등이 지난 정부가 길들여 온 국민의 2분법적 사고방식이다. 특히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좌파-우파’의 파벌 다툼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좌, 우로 나누어진 파벌 의식이 국민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보’라는 정치적 이념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김한길은 물론 지난 진보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한덕수를 새로운 보수 정권의 총리로 기용한다든지, 또한 현 대통령 부인이 전(前) 대통령 부인들을 찾아가는 등의 행보로 이루기 어려운 것이 통합이다.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진보는 다른 나라의 진보와는 그 의미가 다르기에 더욱 그러하다.

 

현재 한국의 진보는 다르게 표현하면 좌파이고, 이 좌파는 다분히 친북 성향을 내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통합이 절실해도 친북 성향을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며 또한 이를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예컨대 과거 종북 작곡가인 ‘윤이상’의 경우 진보 정치인들은 그가 생전에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한 것은 보수 정권의 허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특히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윤이상을 전향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던바, 1982년 그의 작품에 대한 해금(解禁) 조치와 함께 같은 해 9월에는 제7회 대한민국음악제에서 이틀간에 걸쳐 “윤이상 작곡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연주회를 가졌고, 또한 윤이상의 귀국 및 자유로운 국내활동을 위해 필자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유선 및 서신교환은 물론 심지어는 일본(동경)에서의 면담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윤이상의 귀국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윤이상의 요구조건 때문이었다.

 

즉, 입국 후 자신이 작곡한 ‘광주여 영원하라’라는 작품을 광주시립교향악단을 직접 지휘하며 각 대도시를 순회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정부가 허락할 수 없는 요구조건이었다.

 

이 작품은 다분히 평화보다는 친북과 반북의 이원화 투쟁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당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리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정책의 중요한 이슈로 삼는다 할지라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은 종전국이 아니라 휴전국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보수 진영의 대통령 후보가 “저희 선대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라고 선언한 애매한 정치적 색깔은 모호함을 넘어 위험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정치에 있어서 빛을 받아 생긴 각각의 색깔들이 합해진다고 한가지 색깔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각자 선명한 색깔을 나타내듯이 정치도 피차 대립하고 있는 색깔이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가능성은 있다. 그 가능성이란 태초(太初)에 빛을 받기 전 무색(無色)으로서의 흰색은 아닐지라도, 빛을 받은 후 유색(有色)으로서의 흰색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색깔이 스스로 합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매개체에 의하여 모든 색깔이 흡수된다는 의미이다.

 

이 ‘흡수의 매개체’는 혼탁함이 아니라 순수함, 투쟁적이 아니라 평화적 속성을 가진 ’문화예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남북통일도 예외는 아니다. 극단적 이원화(二元化) 체제에 의해 대립하고 있는 정치적 색깔이 문화예술이라는 흡수의 매개체를 통해 한가지 흰색을 이룰 때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과 제주 등지에서 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을 중심으로 『2022 평화콘서트 남북 가곡의 밤』이라는 ’흰색의 음악회‘를 주최한 한국경제문화연구원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새 시대에는 ‘미쉬킨’과 같은, ‘아다다’와 같은 순수한 흰색을 보고 싶다. 그들의 순수한 백치미가 사무치게 그립다.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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