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근성 / 조정권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7/04 [09:45]

[이 아침의 시] 근성 / 조정권

서대선 | 입력 : 2022/07/04 [09:45]

근성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여지껏 뿌리들이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

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

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배추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肅然)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울 이만큼

흙의 혈(血)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배추 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도 흙의 육(肉)을 물어 뜯

고 있었나보다

이놈들은 흙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독하게 제 하반신을 잘라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

각이 든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

흙의 육(肉)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 ‘뿌리 좀 보세요. 근성이 대단하네요.’ 호미에 딸려 나온 잡초의 잔뿌리는 아기 주먹만큼이나 컸는데, “악착스러울 이만큼" "흙의 육(肉)을 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뿌리도 함께 물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리던 장맛비가 다른 지역으로 잠깐 이동한 사이, 텃밭에는 초대하지도 않은 잡초들이 농작물 사이에서 더 씩씩하고 푸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 때에 잡초를 뽑아 주지 않으면 농작물들은 마치 굴러들어온 돌에게 뽑혀나가는 박힌 돌처럼, 잡초에게 밀려나 주객이 바뀌어 버린다. 호미를 잡초 뿌리 쪽으로 깊이 넣고 손목에 힘을 주어 뿌리를 잡아당긴다.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을 주고” “버티다가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잡초의 뿌리를 본다.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조금 전까지 텃밭에서 푸르게 흔들리던 잡초들이 “제각기/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肅然)함”에 인간이 세운 기준이란 것에 마음이 흔들린다.

 

잡초(weed)는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에 의해 구분된 식물 집단일 뿐이다. 잡초였다가 나중에 농작물(crop)로 인정받은 “배추”도 약 2000년 전에는 잡초였다. 배추의 기원은 지중해 연안이고, 유럽의 북부, 동부, 튀르키에 고원지대에서 자라던 잡초 성 유채였다. 이 식물이 지중해,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고, 7세기경부터 중국 북부 양주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 원시 형 배추 재배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에는 13세기 경 채소가 아니라 한약 재료로 배추가 들어왔다. 1610년 한정록(閑情錄) 문헌에 처음으로 배추가 등장하였으며, 1800년 개성에서 배추가 최초로 재배되었다. 잡초였던 배추도 인간의 무지하고 이기적인 기준으로 무시당하고, 뿌리채 뽑혀지거나 유해한 것으로 분류되어 외면 받았지만, 끝내 살아남는 “근성”을 길러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귀한 농작물이 되었다.

 

'지극히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열정과 인내(sustained passion and perserverance for very long term goals)를 의미하는 “근성(Grit)”의 구성 요소는 관심(Interest), 연습(Practice), 목적의식(Purpose), 긍정(Hope)이라고 보았다. “근성”은 타고난다기보다 부모에게 배울 수도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서 모델모방을 통해서 학습할 수도 있다. 근성을 키우려면, 현재의 처한 상황은 자신이 노력하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보는 ‘성장마인드(growth mindset)’를 지녀야 한다. 성장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난관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는 자세로 목표를 이룰 때 까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기른다. 

 

우리는 모두 유아 시절 ‘성장마인드(growth mindset)’를 지니고 목표달성을 이루기 위해 “근성”을 키웠던 적이 있다. 생후 12개월을 전 후해서 인간은 두 발로 일어섰다. 그리고 수백 번 넘어지고 주저앉아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벌떡 일어서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잡초처럼 느껴진다면, 유아 시절 걸음마를 배우며 키웠던 “근성”을 기억해보자. 잡초(weed)는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 하지 않던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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