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편견에 의하면 / 김도언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8/18 [08:35]

[이 아침의 시] 편견에 의하면 / 김도언

서대선 | 입력 : 2022/08/18 [08:35]

편견에 의하면

 

내 편견에 의하면, 밤하늘의 별은 가슴 속에 파묻혀

자라는 장기의 일종이고, 고양이는 동물의 이름을 가

리키는 명사가 아닌 동사의 어근이야, 따라서 해부학

교실에서는 필히 밤하늘의 별을 다뤄야 하고, 국어학

자들은 ‘고양이하다’라는 동사의 기본형을 국어사전에

등재해야 한다고, 오케이?

 

# 입추가 지나서인가, 개밥바라기별이 반짝이는 초저녁 마당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간다. 찻잔을 앞에 두고 모처럼 마당에 나와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며칠간 내린 폭우로 하늘을 가렸던 미세먼지가 엷어져 제법 많은 별들이 눈을 맞춘다. 노르웨이 고등어를 구운 저녁, 고등어 한 토막을 맛있게 먹은 길고양이도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등을 보이고 앉는다. 우리는 말 없이 어둠이 내리는 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별의 가족’이 되었다. 

 

왜 인간은 자주 별들을 바라볼까?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우리는 모두 별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우리 신체를 이루는 물질들은 실제로 모두 별에서 왔으며, 인간은 ‘별의 먼지’에서 탄생했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은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황(S), 인(P), 칼슘(Ca), 마그네슘(Mg), 칼륨(K), 그리고 우리 핏속을 흐르는 철(Fe) 등을 포함해 약 60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원소가 모여 피부와 장기를 이루고, 스스로를 지각하는 뇌의 신경세포를 형성한다. 이 세상 모든 물질과 생명체는 이 60가지 원소를 포함한 118개의 원소로 형성되어 있으며, 우주가 생겨날 때, 이미 모두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118개의 원소들은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결합하고, 순환하며, 대기에서 물로, 토양에서 동물이나 식물로, 그리고 인간의 몸을 거쳐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 우주 안에서 새롭게 물질을 구성한다. 

 

우리가 흔히 중금속이라고 부르는 철보다 원자핵이 더 많은 원소들인 구리(copper), 납(plumbum), 니켈(nickel), 금(gold), 은(silver), 우라늄(uranium) 등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이런 물질들은 별의 죽음을 통해서 생겨난다. 별의 탄생과 죽음은 138억 년의 우주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별의 일생은 인간의 일생과 많이 닮아있다. 모든 인간이 성장하고 결국 죽게 되듯이, 별 또한 시간에 따라 진화하고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별은 탄생 후 공통으로 원시성, 전주계열성, 주계열성, 후주계열성이라는 진화 단계를 거치며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이 임박해진 별들 중에서 아주 크고 밝은 별들은 초신성으로 폭발하는데, 이 엄청난 폭발로 만들어진 물질들이 우주 공간으로 뿌려져 우주의 먼지가 된다. 지구의 지각을 이루는 주요 원소인 산소, 규소, 알루미늄, 철, 칼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과 이것들이 만들어 내는 산과 들 같은 자연, 그리고 휴대폰, 컴퓨터, 철탑이나 고층빌딩, 자동차같이 인간이 만든 물건들의 재료도 모두 별이다. 그러기에 원소로만 본다면 너도 나고, 고양이도 나고, 노르웨이 고등어도 나고, 벌레도 나고, 나무도 꽃도, 세상만물이 모두 나인 것이다.

 

시인이 “밤하늘의 별은 가슴 속에 파묻혀/자라는 장기의 일종이”라는 전언은 “편견”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해부학/교실에서는 필히 밤하늘의 별을 다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전언하며 “내 편견에 의하면,”이란 단서를 붙인 것은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받아들이는 것에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지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기에 마치 자신의 “편견”인 것처럼 전언함으로써, 인간의 편견이 줄 수 있는 문제점을 각성시킨다.

 

어둠이 마당 깊숙이 내려 별들과 고양이와 소쩍새의 시간이 오자, 조용히 몸을 일으킨 길고양이가 둔덕 쪽으로 걸어간다. 유연한 척추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길고양이가 먹은 노르웨이 고등어가 단백질과 지방으로, 탄수화물과 콜레스테롤로, 나트륨과 칼륨으로 분해되어 고양이 눈이 되고, 네 발이 되고, 호기심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이 되어, 별빛 아래 산속 친구들을 만나러 달려가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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