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영원한 스타 바이런(Byron)

강인 | 기사입력 2023/06/26 [09:39]

[강인 칼럼] 영원한 스타 바이런(Byron)

강인 | 입력 : 2023/06/26 [09:39]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allege)의 한 강의실 안에는 학생들이 시험을 치루기 위해 앉아 있었다. 시험문제는 "예수님이 '가나(Cana)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기적을 신학적으로 서술하라"였다. 

 

그중 한 학생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더니 시험 종료시간을 몇 분 앞두고 시험지 위에 단 한 줄의 문장을 적어 제출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답으로 최고점수를 받았다. 

 

그 한 줄의 문장은 [물이 주인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더라(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였다. 그가 바로 영국의 위대한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다.

 

▲ 토마스 필립스 作, 알바니아 아르나우트 부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바이런의 초상화’, 1835년 작품,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영국의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는 "세상은 바이런의 시에 열렬히 경의를 표했다. 그의 이름은 여전히 위대하고 찬란하다"라고 바이런을 칭송했다. 비록 젊은 날 가정적으로 불행했고,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 선천적 장애가 있었으며, 한때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그는 이 세상에 오고 가는 모든 이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흠모의 대상이다.  

 

178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낭만주의 대표적 문학 작가이며 반속적(反俗的) 천재 시인 바이런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지를 여행하며 쓴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Childe Harold's Pilgrimage)]이라는 장편 서사시가 선풍적 인기를 얻으므로 이른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유명해져 있더라"라고 한본인의 말처럼 단번에 런던 사교계의 총아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 특히, 무려 3천 행(行)에 달하는 총 3막 10장의 장대한 극시(劇詩) [만프레드(Manfred, 1816년)]는 음악의 거장 '슈만’과 '차이코프스키‘에게 영감(靈感)을 불어넣어 1848년에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Overture Manfred Op.115)’, 그리고 1885년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 Op.58)‘이라는 불멸의 명곡을 탄생 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영국인으로 ’세익스피어‘ 이후 세인의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바이런은 수려한 외모와 천재성그리고 낭만적 기질의 3박자를 두루 갖춘 불세출의 시인이다. 

 

당시의 유명 시인 '토마스 메드윈(Thomas Medwin)’은 이러한 바이런을 ’스타(Star)’라고 칭송하며, "생전에는 낮의 세계에서 산 자들의 별로 반짝이더니 죽어서는 밤의 세계에서 죽은 자들의 별로 반짝인다"라는 추모의 글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돌이켜보건대 이쯤은 되야시인이라부를 수 있지 않을까? '

 

비교하건대 스스로 세계적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현실을 보면,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일부 시인 중에는 기껏 언어의 유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멜랑꼴리(Melancholy)한 애정 시 몇 편으로 대중의 인기를 몰아 정치권력에 편승하는 소위 사이비 시인이 득세하는 ‘비문화 선진국’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사이비 종교인’이라는 말은 가끔 들어봤지만 ‘사이비 시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시(詩)‘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 즉 ’절에서 수행자들이 엄숙하게 주고받는 말‘이라는 뜻이고 보면, 시인을 얼추 성직자 반열에 포함시켜 놓고 볼 때 그 의미가 전혀 생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요즘 필자가 살고있는아파트 입구에는 흰 접시꽃들이 무리를 이루어 만개했다. 이 접시꽃을 바라볼 때마다 도종환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암(癌)으로 먼저 세상을 등진 첫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속에, 시골 담벼락에 핀 흰 접시꽃을 보며 쓴 자전적(自傳的) 시집 ‘접시꽃 당신’(1986년)이 100만 부 넘게 팔리고 영화로도 제작, 방영되는 등 대중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면서 이름 없는 시골 중학교 교사에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우리나라 대표적 시인 중에 한 사람이다. 

 

그 후 정치에 외도(外道)하여 제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비례)에 이어 제20대, 21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3선 의원으로서 지난 정부에서는 출범과 함께 장관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평소 그는 지나온 날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나의 키를 넘는 벽을 수없이 만났다. 그때마다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고 고비를 넘겨 왔다.”면서 스스로 묘비명(墓碑銘)을 짓는다면 뭐라고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담쟁이처럼 살았던 도종환”이라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담장이 같은 끈질긴 의지의 삶이 그를 역경에 처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위대한 시인이기보다 정치인으로서 재상(宰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게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과거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승부를 정치에 걸 것인가? 아니면 시인으로 남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두 가지를 견준다면 자신은 후자 쪽이다“라면서 “의원이 된 뒤 등 돌린 독자들이 많다. 예상대로 시인으로서 손해 막심한 시간이지만 주어진 시간에 공익근무하듯이 의원(議員)하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생각할수록 ‘궤변’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치 시인으로서 막심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공익(公益)을 위해 의원으로 헌신하겠다는 뉘앙스다. 만일 필자와 인터뷰를 했다면 ‘시를 사랑하는 국민을 상대로 말장난하고 있느냐?’고 힐난(詰難)이라도 했을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도종환은 대한민국의 시인, 정치인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필자의 상식으로 ‘시인과 정치인’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시와 정치는 꽃을 피워내는 토양이 각기 다르다. ‘정치의 토양은 뻘밭’이지만 ‘시의 토양은 영감’이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의 혼탁한 토양에서는 ‘검은 꽃’이 피지만, 맑고 순수한 ‘영성(Spirituality)’의 토양은 ‘순백(純白)의 꽃’을 피워낸다. 뻘밭에서 피어난 악취 나는 검은 꽃을 우리는 이제 기대하지 않는다.

 

누군가 필자에게 ‘시인과 정치인의 실재적 관계를 서술하라’고 한다면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답할 것이다. 

 

“흰 접시꽃이 정치인을 보자 얼굴이 검어졌더라”

 

과연 이 검은 접시에 어떤 순수함을 담을 수 있겠는가?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Kreutzer Sonata)’에서 "검은 꽃을 보았는가? 검은 꽃을 만들지 않은 신(神)은 시인이다."라고 했다.

 

지난날 부러진 생채기에서 흐르는 그리움의 수액이 담긴 ‘흰 접시꽃’은 이젠 잊혀진 ‘옛 시인의 노래’가 된 듯하다. 이러한 정신적 공허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이런과 같은 진정한 시인이 흠모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기고 ,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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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sical 배우 2023/06/27 [10:38] 수정 | 삭제
  • 100% 동감합니다. 흰색 접시꽃이 도종환의얼굴을보자 검은색 접시꽃으로 변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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