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상추가 이상해

홍사라 | 기사입력 2025/07/24 [23:56]

[홍사라의 풍류가도] 상추가 이상해

홍사라 | 입력 : 2025/07/24 [23:56]

  © 홍사라

 

작년 이맘때쯤엔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얼마나 계속 내리던지 축축한 땅바닥만큼 기분마저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6월이 오기 전(제주는 6월 중순쯤 장마가 시작된다), 봄이 다 지나갈 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게다가 뉴스에서는 올해 역대급 장마가 올 거라고 했다. 폭우와 폭염이 심할거라고도 했다. 폭염은 폭우가 지나간 다음에 올테니, 일단 나는 기사에서 말한대로 ‘역대급 폭우’ 에 대비하기로 했다.

 

사실 비가 와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마 기간이 되면 제습기를 잠시만 꺼두어도 계기판의 숫자가 ‘85’을 가리킬 만큼, 제주 날씨는 매우 습하다. 1년 내내 습도가 높은데, 여름 장마철이 되면 특히나 심해져서,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그 숨이 막히는 습기에 ‘헉’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런데 이런 습기를 아주 좋아하는 생물이 있다. 바로 ‘벌레!!!’.

 

제주의 벌레는 육지의 벌레와 다르다. 일단 바퀴벌레는 날개를 달고 날아다닐 정도로 치수가 컸고, 집안으로 가끔 놀러 오는 지네는 큰놈은 길이가 15센티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뿐인가. 얼마나 살기 좋은 땅인지 벌레들 등껍질이 정말 하나같이 빤딱빤닥하게 빛난다. 개미만 봐도 그렇다. 개미를 보고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반짝거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여기 개미는 그렇더라. 얼마나 잘 먹었길래 저렇지 싶을 만큼 오동통한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생전 처음 보는 괴생물체 같은 노래기도 그 수많은 다리로 반짝이는 몸을 여기저기 끌고 다닌다. 해가 쨍쨍할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녀석들도, 습도가 높은 여름엔 대낮에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장마는 그들을 위한 축제 기간이다. 그러니 나는 이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방역하고,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최대한 손을 써 두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이상했다. 6월 20일이 넘어가는데도, 비가 오기는커녕 날씨가 건조했다. 육지보다는 습도가 높은 편이지만, 제주치고는 상당히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7월 말은 되어야 볼 수 있었던 그 뜨거운 날씨, 정오가 되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씨가 6월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비가 올 것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나는, 장마를 기다리며 매일 일기예보를 챙겨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주쯤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다.

 

‘25년 장마, 사실상 소강상태, 서울 한낮기온 35도를 웃도는 역대급 폭염.’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비는 오지도 않았는데 장마가 끝났다니…. 친구랑 통화하다 ‘거기도 그러냐?’, ‘이게 진짜냐?’ 며 몇 번씩 되묻곤 했다. 매일매일 정말 엄청난 더위가 이어졌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뙤약볕인 시간을 피해 강아지랑 30분씩 산책을 한다거나, 낮에 마트에 잠깐 들른다거나 하는 아주 일상적인 행동만으로도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집에 오면 샤워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나는 원래 땀이 거의 안 나는 체질이다).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햇빛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두 팔에 온통 좁쌀 같은 아이들이 두두두두. 가렵기도 하고, 따갑기도 한데, 조금이라도 햇볕에 닿으면 더 심해졌다가 자고 나면 조금 나아지는 증상을 반복하고 있다. 아주 잠깐씩 약간의 비가 오긴 하는데 더위는 가시질 않는다. 더위가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니.

 

나만 이렇게 불볕더위로 고생하는 게 아니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작년과 달리 같은 시기에 심은 작물들이 잘 자라지 않았다. 작년과 심은 시기가 비슷한데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식물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했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열매가 자라지 못하고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작년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이름 모를 해충들이 떼거지로 줄기에 붙어 그 자리에 계속 새끼를 낳으며 식물을 죽이기도 했고, 작년에는 너무 잘 자라서 먹느라 바빴던 루꼴라나 고수, 바질 같은 잎채소들이 올해는 너무 빠르게 꽃을 피워 잎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날씨가 작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매일 놀라는 중이다. 그중에 제일 문제인 녀석은 상추다. 작년에는 한 달을 넘게 먹고도 한참을 지나 꽃대를 올리던 상추가 심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잎을 키우지 않고 꽃대를 올린다.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뜻이다. 살기가 힘드니 오르지 씨앗을 만드는 데만 모든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니 잎은 좀처럼 잘 자라질 못한다. 그 사이클이 빨라진 것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서 기후 관련 콘텐츠들을 보기 시작했다. 사실 앞으로의 올해 날씨가 궁금해 찾아본 거였는데, 한숨이 나오는 내용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것은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질 거란 기사였다. 사과는 지금도 비싸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비싸졌는데, 2050년이 되면 금사과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사과가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사과뿐만 아니라 김치의 민족인 우리에게 배추같이 늘 옆에 있던 작물들까지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큰일인지 실감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양반이다. 올해 인도와 파키스탄은 50도를 웃도는 더위에 많은 사람이 질병을 얻거나 사망했다. 2050년이 되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람이 생존하기 힘든 기후를 가진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다. 2050년이라고 해봐야 이제 고작 25년이 남았을 뿐이다. 10살인 내 조카는 2050년이 되면 겨우 35살이다. 우리 세대보다,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게 더 문제가 될, 어쩌면 지구상에 많은 사람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일이다.

 

이미 지구가 변해가는 속도를 늦추기엔 늦었다고 한다. 여러 학자들이 변해가는 날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그럼 나는 무얼 해야 하나, 무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해 봤다. 개개인이 관심을 가진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거기에 기름을 붓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에어컨을 덜 켠다던가, 차량운행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던가, 물건을 사는 빈도를 줄인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라도 하며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을 계속 생각하는 중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들었을 때, ‘아’ 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일단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에 태어났잖아요. 이왕 태어난 거, 내가 이 별을 떠날 때 적어도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어디 한 구석은, 작게라도, 조금 더 좋게, 낫게 바꿔놓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과연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부분을 눈곱만큼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조금, 티가 안날만큼 적게’ 바꾸더라도 그거라도 하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시대 이후로 지구는 사람을 오랫동안 참아준 것 같다.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사람들은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말한다.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조카가 살게 될 세상이, 지금보다 더 숨 쉬며 살아가기 힘든 세상은 아니길 바란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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