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

임병식 | 기사입력 2025/08/27 [09:15]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

임병식 | 입력 : 2025/08/27 [09:15]

현대 사회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외로워졌다. 성취와 경쟁은 늘어났으나, 서로를 향한 신뢰와 관계는 줄어들었다. 우리는 어느새 ‘함께’보다는 ‘각자’를 강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 고립되고, 상처를 숨기고, 때로는 자기 존재의 의미마저 잃는다.

 

치유는 어디서 시작될까. 먼 미래의 계획 속에서도, 과거의 회한 속에서도 아니다. 치유는 오직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내가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바로 이 자리에서 치유는 움튼다. “지금 여기”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불안을 붙들지 않고 흘려보내는 자리다. 이 순간을 살아낼 때, 인간은 스스로를 회복하고 타자를 받아들일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치유는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관계적 존재다. 나의 상처가 타인의 공명을 불러오고, 타인의 눈물이 내 마음을 울린다. 불교의 말처럼 “한 송이 꽃이 피면 온 우주가 함께 웃는다.” 한 사람의 치유는 곧 우리 모두의 치유와 연결된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된다.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명상 지도자 존 카밧진이 남긴 이 간결한 말은 단순한 자기 계발의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실존적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장소, 다른 상황, 다른 관계로 이동하면 새로운 삶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떠나도, 결국 그 자리에는 변하지 않은 자기 자신이 있다.

 

사람은 고통을 피하려 한다.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잠시 잊기 위해, 더 나은 자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러나 아무리 달아나도, 불안과 상처의 근원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현존재는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이 던져짐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따라서 도피는 해결이 아니라, 자기로부터의 더 큰 소외를 낳을 뿐이다.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는 말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라는 초대다. 존재의 문제는 외부의 환경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도착하는가에 달려 있다. 메를로-퐁티가 강조했듯, 우리는 몸을 통해 세계에 접속하고, 그 몸은 지금 여기의 사건 속에서만 경험된다.

 

실존적 관점에서 이 말은 도피 대신 머묾을 요구한다.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한계와 불안을 끌어안는 것. 레비나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타자와 함께 윤리적 책임 속에서 마주하는 것. 바디우가 말한 사건(Event)의 언어로 말하자면, 바로 이 순간, 자기 존재를 새롭게 열어가는 결단이다.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운명론적 체념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치유의 출발점이다. 치유는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치유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내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것이 명상이 말하는 ‘마음 챙김’이고, 실존 철학이 말하는 ‘자기 자신에로의 귀환’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어딘가”를 꿈꾸며 현재를 회피한다. 하지만 카밧진의 말처럼, “어디를 가든, 거기엔 결국 당신이 있다.” 진정한 전환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사건이다. 이 실존적 자각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도피가 아닌 머묾, 소외가 아닌 치유와 회복의 길 위에 서게 된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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