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자주 가는 책방이 있다. 그곳은 집고양이 두 마리와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같이 살고 있어서 늘 북적거렸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cat person(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 dog person(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예전에 고양이에게 냥펀치를 세게 맞은 적이 있어서 고양이는 내게 뭔가 좀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도 거기에 사는 고양이는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그런지, 좀 덜 겁이 났다. 단지 내가 고양이를 잘 모르고 책으로 배우다 보니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라서 멀리서 바라만 보거나, 다가오면 한 번씩 조심스럽게 만지는 정도가 나의 친밀함의 표시였다. 강아지와 달리 나이가 있다는 데도 털이 정말 부드럽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책방에 가려고 집에서 나서는 길이었다. 걸어서 5분이면 닿는 거리라 높은 하늘도 보고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하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내 앞으로 쌔~앵하고 나타나서 내 발길을 막았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하마터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밟을뻔했다. 발아래를 보니 회색 얼룩이 있는 고양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바라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 앞에 배를 보이고 누워서는 다리를 요렇게 저렇게 움직이며 야옹야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무척 좋은지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는 계속 내 발 앞에 누워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내가 보기에도 고양이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고양이는 무아지경, 정말 행복해 보였다.
왜 이 넓은 곳에서 굳이 내 발아래 자리를 차지하고는 저렇게 행복해 하는건지... 가만히 좀 서서 기다려도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계속 서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고양이를 피해 갈 길을 가려고 몇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내가 앞서 걸어가니 그 회색얼룩이는 내 뒤에서 계속 야옹야옹 울어대더니 또 쏜살같이 내 앞으로 슉~ 내 발앞을 막는다. 그리고는 또 발라당 누워서 온갖 애교를 다 부린다. 마치 더는 원하는 게 없는 것처럼, 세상이 다 자기 것인 양 행복한 표정으로. 이런 게 고양이에게 간택 당했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냥이의 행동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여워서 한참 서서 쳐다보다가 물었다. “너 집이 어디야? 누군데 자꾸 따라오니?”
나에게 엄청 호의가 있어보이니, 조심스레 살짝 쓰다듬는 척하면서 목 부분을 봤다.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거기에는 집사로 보이는 사람의 전화번호와 산책냥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아 산책하는 고양이인가 보다.’ 왜 고양이가 이렇게 여기서 돌아다니면서 인간에게 귀여움을 피우나 했더니 산책을 하는 녀석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을 하듯 야옹야옹, 쓰다듬으려고 손을 대면 또 야옹야옹. 아마 세상에서 그 순간 그 고양이만큼 행복한 생명체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며 걷다 보니 오 분이면 갈 곳을 3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가는 발걸음마다 고양이가 막아서는 바람에.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까지 갑작스레 마주한 이 행복한 얼굴도 좋고, 그 행복한 얼굴이 나를 좋다고 따라오며 애교를 피우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무해하고 사랑스럽던지.
그날 처음 알았다.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얼마나 매력적인 생명체인지. 고양이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더니, 강아지의 그것만큼이나 너무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 고양이란 동물은. 그 아이는 이름도 이쁜이였다. 얼마나 딱 어울리는 이름인가. 그날부터 나는 이쁜이의 팬이 되었다. 그 잠깐의 뜻밖의 동행에 내가 행복해져서, 책방에 가면 내 눈은 늘 이쁜이를 찾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쁜이가 보고 싶어 들른 책방에 이쁜이가 없었다. 어? 이상해서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쁜이는 어디 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며칠 전에 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들어보니 평소처럼 산책하러 밖에 나간 것 같은데, 그 후로 감감무소식이란다. 원래 나갔다가도 집에 잘 돌아오는 녀석인데 이상하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책방에 가서 여쭤봤는데 이쁜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집을 나간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사고를 당한 걸 수도 있다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한참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난 이쁜이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세상에서 젤 행복해 보였던 이쁜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는 거면 아마 사고가 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별 말고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냥이랑 살고 있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다른 고양이랑 눈 맞아 집을 나간 건 아닐까 싶어, 동네를 돌아다닐 때 유심히 새끼고양이들을 살펴본다. 혹시나 이쁜이 아가인가 싶어서. 하지만 그 뒤로도 이쁜이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내 맘속에 예고도 없이 훅하고 들어왔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 고양이가 보고 싶다. 내 발아래서 야옹야옹, 귀찮게 해줬으면 좋겠다. 5분이면 갈 거리를 동네 마실 하듯 30분 동안 걷게 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던 그 얼굴이 보고 싶다.
그 이쁜 냥이는 정말 어디로 간 걸까? 분명 사라지기 전날도 산책길에서 만났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지 벌써 두어 달이 넘은 것 같다. 이렇게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마도 고양이 별로 떠난 거겠지.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를 두고 며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모두 언젠간 모두 이 지구별에서 사라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자 순리이다. 그 언젠가가 10년 뒤일 수도 있고, 30년 뒤일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일 수도 있다. 그게 나일수도, 내 가족일 수도, 내 옆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속이 상해 싸우기도 하고, 오해가 쌓여 서로 미움을 간직하기도 한다. 힘들어서 투덜거리기도 하고 서로 너무 안 맞는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이 아닌 ‘내일’,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 간단한 사실을 인지한다면, 나의 ‘오늘’이, 지금 ‘함께’가 갑자기 엄청 소중해진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사라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그 소중한 오늘, 나 스스로, 또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란 거다.
현자들이 말하는 ‘오늘을 살라’는 게 이런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요즘 나의 오늘에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매일 나에게 행복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매일이 행복하기만 하고 감사할 일만 가득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정말 조금은 더 행복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그렇게 살았다면 후회가 좀 덜 남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면 좋겠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 여러분도, 여러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도 조금은 의도적으로 행복해하기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의도하지 않아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르니까. 오래전 배우 최강희 씨가 라디오 끝에 늘 했던 말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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