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길을 잃는다는 것은, 신이 우리를 이끄는 또 다른 방식

임병식 | 기사입력 2025/11/14 [16:57]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길을 잃는다는 것은, 신이 우리를 이끄는 또 다른 방식

임병식 | 입력 : 2025/11/14 [16:57]

타고르가 말했다. “당신에게로 가는 가장 먼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다.” 이 말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그것이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길 잃음 속에서 오히려 나를 바꾸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얻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정도(正道)’라 믿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때로 그 길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길이거나,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 길일 때가 있다. 그렇게 걸어온 길 위에서 문득 발을 멈추고 돌아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잃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었을 때, ‘보이지 않던 길’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자만이 묻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그 물음의 도상(途上)에서 우리는 뜻밖의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한다. 삶은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연속’ 속에서 우리를 길러낸다.

 

우연성, 갑작스러움, 개연성—이 세 단어는 마치 신이 인생이라는 주사위를 던질 때 사용하는 언어 같다. 신은 우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주사위를 던질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주사위의 숫자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주어진 눈을 탓하기보다, 그 수로 어떤 놀이를 만들어내느냐가 인생의 기술이다. 만약 신을 필연적인 인과법칙의 속성으로 간주한다면 신도 인간도 비극이다. 그 자리에는 정형화된 형식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는 ‘원하는 길’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길’을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결단에 있다. 삶이란 우리가 설계한 길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삶은 뜻하지 않은 우연 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신이 우리를 불러 세워 “멈추어라, 이제 네가 어디에 있는지 보라”고 속삭이는 신호이다.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가야 할 곳’보다 ‘지금 여기’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가장 먼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 되는 이유다.

 

가을의 바람은 늘 길의 끝과 시작을 함께 품고 불어간다. 낙엽은 소멸이 아니라, 순환의 예고다. 인생의 길 위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길을 잃었다면, 이제 당신의 길을 찾을 시간이다.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 그 길은 이미 당신 안에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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