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21] 대선자금 수사의 사실적 역사와 교훈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2/10/27 [10:23]

[저널21] 대선자금 수사의 사실적 역사와 교훈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2/10/27 [10:23]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지난 22일 구속됐다. 구속 이후 검찰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측에 정치자금이 흘러갔는지 등을 연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2003년 당시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 이후 근 20년 만에 다시 도래하는 대선자금 수사가 오버랩되는 시점이다. 대선자금 수사결과 여하에 따라 엄청난 정치적 빅뱅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 문화저널21 DB

 

  • 20년 만에 재등장한 대선자금 수사
  •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선자금 수사의 역사
  • ‘DJ친인척 378억’부터 ‘차떼기사건’까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수많은 정치적 파란 속에서도 대선자금 수사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까지는 전 정부나 상대 후보 등을 겨냥한 대선자금 등과 관련된 수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이 당시까지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는 일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다 제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중순경 ‘DJ 친인척 명의 378억’이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정치비자금 수사가 예고되기는 했다. 하지만 같은달 검찰은 ‘김대중의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하면서 이후 검찰에 의한 정치비자금 수사는 한동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정치자금파동’의 본격적인 이슈는 제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수수파동으로 일명 ‘차떼기 사건’이 시작이다. 정치를 몰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차떼기 사건’은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이 삼성, 현대차, LG, SK 등의 주요 대기업들로부터 총 823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대검중수부(부장 안대희) 수사를 통해 밝혀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사건의 여파로 박근혜 대표 체제가 등장했고 당시 한나라당은 한동안 천막당사 생활을 하며 자숙의 시간을 거쳤다.

 

‘차떼기’ 파동 이후 대선자금 국고지원 체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로부터 강압적으로 거액의 대선자금을 모으는 일들은 표면적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반면 사업적 이해관계인들이나 지방선거 공천 등을 미끼로 공천헌금을 받은 일이 벌어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근간 이재명 후보의 대선자금 수수(收受)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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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판단은 국민의 몫
  • 역사의 교훈 명심해야  

 

지난 19일 체포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2일 발부되었고, 김 전 부원장은 연일 검찰에 소환되어 고강도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그가 전달받은 돈이 이재명 대선 캠프 쪽으로 흘러갔는지와, 이재명 후보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다. 이를 밝혀낸다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을 자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검찰은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에는 '대장동 3인방'으로 불렸던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현금을 마련한 남욱 변호사, 그리고 전달자로 알려진 유동규 전 본부장을 한꺼번에 소환하여 8억여 원의 불법자금을 만들고 전달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사에서 유동규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정황증거와 함께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각종 폭로 전을 이어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핵심당사자인 김용 전 부원장은 초기의 수수사실 부인에서 민주연구원 압수수색 이후에는 아예 진술 자체를 거부하면서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김용 전 부위원장이 현시점에서 진술자체를 거부하고 있기에 내달 7일까지는 자금 사용처를 밝혀내야 하는 검찰로서는 초조감이 엄습 할 수밖에 없다. 유동규의 진술을 뒷받침할 보강증거 확보가 사건의 승패를 가르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다각적으로 각종 증거 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장동 (자금) 사건’을 이재명 대표의 대선자금 수사로 보기 시작했다. 때문에 수사 결과에 정치생명이 달린 이재명 대표로서는 격렬한 저항은 물론 단식투쟁 등을 통해서라도 국면전환을 시도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정치적 운명공동체로 보이는 김용 전 부위원장은 진술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만약 김용 전 부위원장이 끝끝내 사용처를 밝히지 않으면 이재명 대표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정치권은 사생결단식의 극한 대립에 돌입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1948년 정부 수립 후 5․16 정변, 5․17 비상계엄 확대 등,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는 없었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제1야당 대표를 표적으로 한 듯한 이런 긴박한 수사가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다. 수사의 폭발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특별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검찰은 빈번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수많은 (수사) 자료들을 확보해 놓은 것으로 보이며, 향후 더욱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이런 기조는 내년까지 유지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정부·여당으로서는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 정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적폐 청산 수사를 통해 여론의 물줄기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총선을 넘어 차기 정권 재창출까지 염두에 둔다면 최종 과녁은 일견 이재명 대표로 좁혀진다. 이 대표가 차기 유력한 대권 후보이기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제1야당 이재명 대표를 법정에 세우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김용 전 부위원장 등이 끝내 함구한다면 김 전 부위원장 선에서 꼬리가 잘릴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측의 격한 반발은 물론 여론 또한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쉽사리 예단되지 않는다. 험난한 지난 헌정사는 이를 절절히 증명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수사 또는 정치 공방은 어찌 보면 국력을 소진하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변 등의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유력정치인들을 정치정화법 등으로 일순간 발을 묶은 적은 있었지만, 종국적으로 해금 또는 사면·복권 등으로 풀어 주었고, 이들 또한 마침내 대권을 쟁취하여 평생의 염원을 이루기도했다.

 

어찌 보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각종 사법적 판단의 궁극적 몫은 사법적 잣대를 넘어선 국민적 판단이다. 형수 욕설 등 일부 부적절한 언동은 이미 공개되어 선거에서 나름의 판단을 받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가 이재명 죽이기냐? 아니냐? 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할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 싸우고 뭐할 시간조차 없다. 세계적 경제위기에 힘을 합쳐도 부족할 상황인데, 정치판은 정말 아수라장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 상황에 대해 전 정부 털어내기 및 차기대권주자 망가뜨리기란 여론의 부담도 있다. 돌고 도는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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