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다

재개발로 문화 다양성 사라질 위기... 해법은?

배문희기자 | 기사입력 2010/05/17 [09:45]

이태원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다

재개발로 문화 다양성 사라질 위기... 해법은?

배문희기자 | 입력 : 2010/05/17 [09:45]
ⓒ박현수기자

[주간 문화저널] 이태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이태원은 문화의 다양성과 자생력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곳에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태원은 극단과 극단을 포용하며 다른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태원은 한국의 최고 부자들이 모인 고급주거지이면서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을 이루는 이주노동자들의 보금자리다. 게이바, 트렌스젠더바 등 쾌락적인 문화가 조성된 거리 위로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이 지나가는 풍경은 이태원에선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다.
 
또 이곳은 서울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국가의 권위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적용되는 탈영토화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태원은 유행에 가장 민감하면서, 한편으로는 촌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한 이태원에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태원을 포함한 용산 일대가 서울 도시공간 구조의 재편과 함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이다. 용산구 이태원, 보광, 한남, 동빙고동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한남뉴타운이 개발되면 지금의 이태원관광특구는 절반이 잘려나가 섬처럼 남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문화저널21은 지난 11일 이태원을 찾아 이태원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 보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해봤다. <편집자 주>
 
한국인이 낯선 이방인이 되는 곳 "여기는 이태원 역입니다"
이태원역 출구에서 나오니 공기부터 확연히 다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간판들 대부분이 외국어다. 이태원 대로를 따라 녹사평역 방향으로 걸어가니 큰옷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부터 각 나라의 전통의상과 장신구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마트 안에는 각종 향신료부터 과자, 잼, 과일까지 ‘물 건너 온’ 물건들이 가득해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이곳을 지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다른 도시에서 숱하게 봐왔던 외국인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다른 도시에선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이방인의 모습이라면, 이곳에선 마치 자신의 그라운드를 누비듯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이다. 오히려 한국인이 낯선 이방인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태원 곳곳을 누비다 저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여기 정말 한국 맞아?”
 
ⓒ박현수기자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여 이루는 다채로운 빛깔
이태원은 이태원대로를 중심으로 각 권역별로 다중적 특징을 나타낸다. 이러한 다중적 특징은 자본과 노동력에 의한 서열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해밀톤호텔 주변권역은 거리가 고급화되면서 고급음식점, 술집, 옷가게 등이 자리 잡았으며, 해밀톤호텔 반대편은 무슬림 문화와 게이힐, 한국의 저소득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슬램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남동 주변으로 가면 고급주택가와 더불어 미술관, 고급 부띠끄 등 상류층 문화가 나타나며 최근에는 경리단길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문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태원의 골목길엔 좀더 진솔하고 자유로운 일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태원 골목길 중 아프리카 골목이라 불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프리카 골목은 이태원역 3번출구에서 나와 골목길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골목에 들어서니 아프리카인을 위한 음식점, 옷가게, 아프리카인의 곱슬머리를 전문적으로 다듬어주는 미용실이 눈에 띈다. 카페 테라스에서 한가로이 술을 마시는 흑인들의 묘한 분위기는 분명 이태원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아프리카 골목을 지나 나오는 언덕길부터는 ‘게이힐’이다. 각종 게이바와 트랜스젠더바가 순대국밥집, 허름한 분식집 옆에 버젓이 있는 광경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더 재미있는 것은 게이힐을 지나면 이슬람 사원이 나오고 그 주변으로 무슬림의 문화가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금욕적이고 보수적인 무슬림 문화와 게이 문화가 공존하는 풍경은 문화적 관용성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슬림 언덕 너머에 자리한 보광초등학교에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친구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제2의 고향' 뺏기게 될 외국인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프리카 골목과 게이힐, 무슬림 골목 일대는 지구단위계획에 묶여 재개발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 일대를 한강과 남산의 조망경관을 고려한 구릉지형 주거단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곳이 재개발되면 지리적으로 교통이 유리하고 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강남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발지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아프리카인들과 무슬림들의 자생적인 문화와 그들의 보금자리는 재개발과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안고 있다. 또 보광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 중 많은 숫자가 재개발 바람에 쫓겨 다른 곳으로 떠돌아야 한다.
 
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재개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방글라데시인 샤프라는 “재개발이 되면 돈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며 “지금이 좋다. 재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년째 아프리카 거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구수(60) 씨는 “재개발이 되면 집값도 오르고 도시가 깨끗해지긴 하겠지만 수십년째 형성해온 문화가 다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거액의 보상금을 준다해도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것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일하고 있는 홍정길(70) 씨는 “이태원의 문화는 돈과 힘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독특한 문화인데 재개발이 되면 없어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재개발이 결정된 지역은 아프리카인, 무슬림 등 극빈층이 살고 있는 곳인데 결국 이들을 내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외국인들은 삶터를 뺏길까봐 걱정하면서도 힘이 없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의 미래를 말하다
이태원의 미래에 관해 가장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는 누구도 이태원의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용산에는 이태원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개발계획이 세워지고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이태원 일대가 재개발되면 남산을 타고 흘러내리던 나지막한 동네가 높은 빌딩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묘한 분위기로 관광객들을 매료시켰던 골목문화가 사라지고, 수많은 문화가 섞여 만들어낸 다채로운 빛깔도 현대적인 모노톤으로 바뀌게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개발을 중단할 수는 없더라고 개발의 방식을 변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도시는 변화하는 속에서 지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영범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태원을 둘러싼 거대한 개발 속에서 좀더 신중하고 섬세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계획해야 한다”며 “관광특구 조성 등 행정적인 틀로 제도화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자율성을 해치지 않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저널21 배문희 기자 baemoony@mhj21.com 1>
대한민국 대표 문화언론 주간 문화저널 & 문화저널21
기사제보(보도자료) 02-2635-0100 / master@mhj21.com
본 기사의 저작권은 <주간 문화저널> 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 태풍 2010/09/24 [02:25] 수정 | 삭제
  • 기사 좋군요. 때려부시고 공구리 발라서 세우는 식의 도시개발은 시대 저편으로 사라져야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돈맛을 최고로 치는 건설족들이 용납할까요..ㅎ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