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적십자와 녹십자의 끈적한 '혈(血)맹'

입찰조건 바꿔도 혈액백은 ‘녹십자MS’ 제시규격도 '일치', 국가계약법 자의적 해석 위법 논란

최재원 기자, 박영주 기자, 임이랑 기자 | 기사입력 2017/09/27 [16:45]

[단독] 적십자와 녹십자의 끈적한 '혈(血)맹'

입찰조건 바꿔도 혈액백은 ‘녹십자MS’ 제시규격도 '일치', 국가계약법 자의적 해석 위법 논란

최재원 기자, 박영주 기자, 임이랑 기자 | 입력 : 2017/09/27 [16:45]

헌혈을 하기 위해 헌혈의 집을 방문하면, 간단한 검사를 거쳐 채혈을 진행한다. 채혈된 피는 혈액을 보관하는 용기인 ‘혈액백’에 모인다. 주혈액백에 보인 혈액은 혈소판이나 백혈구를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 뒤 보조백에 보관된다.   

 

실온에서 굳어버리는 피의 특성상 혈액백에는 항응고제가 들어있다. 채혈부터 수혈까지, 혈액유통의 전 과정에서 ‘혈액백’이 빠지지 않는 만큼 헌혈에 있어 혈액백은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다. 

 

▲ 자료사진   © 문화저널21 신광식 기자

 

입찰조건 바뀌어도 혈액백은 ‘녹십자MS’

적십자, 국가계약법 자의적 해석에 위법 논란

‘녹십자 뒤봐주기’ 하나…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혈액을 관리하는 대한적십자사가 혈액백 계약을 ‘녹십자엠에스(녹십자MS)’와만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적십자사는 국민건강, 국방부의 권고 등을 이유로 입찰 참가자격을 계속 바꿨지만, 이상하게도 매년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녹십자MS였다. 

 

과거 적십자는 혈액백을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았지만, 해당 제약사가 국내에서 철수하면서 2000년부터는 녹십자MS가 독보적으로 혈액백을 공급하고 있다. 

 

적십자의 최근 3년간 수의계약 현황을 분석해본 결과, 2015년 수혈세트 공동구매 단가계약금액은 약12억3500만원, 항응고제 (ACD-A) 공동구매 단가계약은 약14억7000만원이었다. 2016년에는 같은 항목으로 약15억원, 2017년 2월에는 약14억2000만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적십자 관계자는 “현재 혈액백을 공급하는 업체는 녹십자MS와 ㈜태창뿐이고 비율은 7:3 정도다. 때때로 비율이 5;5가 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지만, 수의계약 내역에서 태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혈세트와 항응고제는 오직 녹십자MS가 공급하고 있었다. 

 

적십자와 녹십자의 이러한 밀월(蜜月)관계는 언뜻 대기업의 자회사 일감몰아주기와 유사한 모습이다. 적십자는 “시장구조상 자신들이 제시한 혈액백 요건에 맞는 곳이 녹십자MS 밖에 없다”며 담합이나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은 적십자가 녹십자MS의 뒤를 봐주기 위해 일부러 입찰제한요건 등을 수정했다고 반발해왔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혈액백 제조업체인 ‘프레지니우스 카비’는 지난해 “적십자가 입찰공고에 새로운 조항을 신설하면서 의도적으로 본인들을 탈락시키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급원을 녹십자와 태창으로 줄였다”며 “대한적십자사의 이같은 반복적 조치는 해외업체를 국내업체와 차별해 입찰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적 행위로 추단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적십자에 반박하기도 했다.

 

실제로 본지 확인결과 2013년 4월 적십자 해당 입찰공고에는 ‘국내 직접제조가 가능한 자’라는 제한조건이 신설됐다. 이로 인해 국내에 제조소를 두지 않은 ‘프레지니우스 카비’는 자연스럽게 2014년과 2015년 입찰경쟁에서 탈락했다.     

 

문제는 대한적십자사가 신설한 국내 직접제조 조항은 국가계약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국가계약법 어디에도 국내 직접 제조를 규정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WTO 권고사항에도 혈액 자체에 대한 자급자족을 권고할 뿐, 혈액백에 대한 권고사항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혈액백 입찰에 ‘국내’라는 제한을 붙인 것은 적십자사가 국가계약법이나 WTO권고사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대한적십자사 장진성 팀장은 “국내라는 조건을 붙인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1조나 시행규칙 제25조에 따르면 물품의 특성을 고려해 발주기관이 조건을 붙일 수 있게 돼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특수성을 이유로 녹십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그는 “시장상황이나 사업특수성도 있고, 혈액백의 경우 전시물자인 만큼 국내외 정세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방부도 혈액백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게 하라고 권고했는데, 이를 위해 국내라는 조건을 넣은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대한적십자사가 국방부의 권고사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범부처인 ‘국가필수의약품 안전공급 협의회’에 따르면 필수약 등에 대해서는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위탁제조나 특례수입 등의 적정 대응을 추진하도록 돼있다. 혈액백을 국내 기업인 녹십자MS를 통해서만 공급받는 것은 ‘공급선 다변화’라는 요건에 정면으로 반한다. 

 

국민건강 외치지만…보조혈액백만 비프탈레이트계로 ‘꼼수’ 논란

혈액백 담합 정황, 적십자 제시 혈액백 규격 녹십자 규격과 '일치'

 

적십자사는 2016년 6월에도 일방적으로 입찰조건을 바꿨다. 적십자는 이 기간 입찰제한조건에 ‘혈액저장용기의 보조혈액저장용기에 한해 가소제가 비(非)프탈레이트계로 명시된 품목 허가증 포함’이라는 조항을 새로 넣었다. 

 

적십자는 해당 조건을 넣은 이유에 대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측면에서 추가한 것”이라 설명했지만, 이는 여러가지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우선 조항을 신설한 시기다. 적십자가 조항을 신설하기 불과 2개월 전인 2016년 3월31일, 녹십자MS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혈액백 제조과정 중 가소제로 많이 사용되던 프탈레이트 성분이 없는 DINCH혈액백을 개발해 허가를 앞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녹십자MS는 2017년 5월말에서 6월초 사이 비프탈레이트계 혈액백 제품허가를 받았다. 

 

적십자는 녹십자로부터 주혈액백과 보조혈액백이 함께 포함된 ‘혈액백 세트’를 구입하기 때문에 녹십자가 주혈액백에 대한 제품허가를 받자마자 적십자가 조항을 신설한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절묘하다.

 

녹십자 관계자는 “사전에 제품허가를 받는다는 것을 적십자에 알리거나 하진 않았다. 담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적십자에서 비프탈레이트계 혈액백을 만드는 업체를 알아봤을 수는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적십자가 신설한 조항 탓에 입찰제한조건에 부합하는 업체는 녹십자MS와 (주)태창으로 좁혀졌다. 태창은 중소업체였기 때문에, 적십자가 필요로 하는 물량과 가격을 맞출 수 있는 업체는 결국 녹십자MS 하나밖에 없었다. 녹십자로 귀결되는 입찰과정에 적십자가 ‘녹십자MS 뒤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민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적십자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인체에 해롭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맨처음 혈액을 모으는 '주혈액백'에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헌혈의 집에서 피를 뽑으면 우선 주혈액백에 피를 담고, 보관된 피를 혈장분획센터 등에서 용도에 따라 분리한다. 이렇게 분리된 피를 보조혈액백에 담는데 아무리 보조혈액백이 비(非)프탈레이트계라 할지라도 최초에 전혈을 보관했던 주혈액백에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사용된 이상 환경적 영향을 피하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건강을 고려했다는 적십자의 답변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국민건강을 고려했다면 보조혈액백 뿐만 아니라 주혈액백도 비프탈레이트계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혈액백과 혈액백을 연결하는 튜빙라인에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쓰고 있는데 오직 보조혈액백에 대해서만 ‘비프탈레이트계’를 명시한 것은 아무런 학술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적십자 관계자는 “국민불안이 심해지다보니 보조혈액백에 대해서만이라도 비프탈레이트계를 사용하자고 정했다. 이는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적십자사가 머리를 짜내서 내놓은 결정”이라며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면서도 “혈액보존을 위해서는 주혈액백에는 프탈레이트계를 쓰는 것이 낫다는 분석이 있다. 녹십자가 비프탈레이트계 주혈액백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입찰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해 향후 녹십자와의 거래를 계속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뿐만아니라 적십자가 제시하는 혈액백 규격은 △채혈바늘 길이 35mm 이상 △채혈바늘 바깥지름 2mm 이하 △채혈관 길이 800mm 이상 △혈액백 비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사용으로 정해져 있다. 이는 기존에 혈액백을 공급하던 녹십자의 규격과 동일하다. 

 

국민건강을 앞세운 적십자가 지금의 입찰조건을 계속 유지하는 한, 혈액백을 둘러싼 녹십자와 적십자의 ‘혈(血)맹’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박영주 기자, 임이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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