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의 그림자…‘돈’ 싣고 달리는 철마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2/06/29 [16:06]

민영화의 그림자…‘돈’ 싣고 달리는 철마

박영주 기자 | 입력 : 2022/06/29 [16:06]

SR, 황금노선 SRT 끼고 비용 부담은 코레일에 다 떠넘겨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철도 민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는 “민영화 추진 의사가 없다”고 말로는 못을 박았지만, 철도차량 정비시장 민간개방이나 철도 유지‧보수 및 관제권의 철도공단 이관 움직임 등으로 은근슬쩍 ‘코레일-SR 분리’ 체제를 유지하고 민영화에 힘을 싣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탄생한 SR이지만, 실제 운영실태를 살펴보면 분리 체제가 국민 편의 증대로 이어졌는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SR이 알짜노선을 중심으로 수익은 챙기고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들은 모조리 코레일에 떠넘기는가 하면, 정기권 제한 등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분리 운영 지속을 염두에 둔 정부의 움직임에 국민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민영화 없다’는 尹정부, 슬금슬금 민영화 움직임

차량정비 업무 민간 개방, 관제권도 철도공단에 이관

민영화 신호탄 ‘코레일-SR 분리’ 해결에는 묵묵부답 

 

SR, 황금노선 끼고 비용 부담은 코레일에 다 떠넘겨

SRT ‘정기권’도 제한적 운영…시민들 “이럴거면 통합해라” 

시민의 발 철도, 기업 이익보다는 이동권 확보 중시해야

 

지난 28일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집회를 통해 코레일‧SR 통합을 촉구하고 정부의 철도 민영화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철도 민영화의 신호탄으로 꼽히는 ‘코레일-SR 분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SR 확대 운영에 더 힘을 실어주고 아예 차량정비 업무마저 민간기업에 맡기겠다는 국토부의 행보에 대해 “은밀한 민영화가 시작됐다”고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에서는 SR이 올해 SRT 14편성을 발주하면서 코레일 차량 기지 용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비 업무를 차량제작사인 현대로템에 맡길지 여부를 검토하고 나섰다. 

 

국토부는 “차량 정비의 민간 제작사 참여는 KTX 탈선 사고 이후 안전대책의 일환으로 민영화와 관계없다”고 반박했지만, 민간 제작사가 정비 업무를 맡게 되는 것부터가 민영화의 시작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토부는 2027년 오송 제2철도 교통관제센터 운영을 앞두고 철도 유지‧보수와 관제운영 등의 업무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아예 국가철도공단으로 이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한국철도공사나 국가철도공단 모두 공공기관인 만큼 민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조금만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관제권 이전은 지금의 ‘코레일-SR 분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일종의 시그널임을 알 수 있다. 

 

▲ KTX 서울역의 모습. (사진=문화저널21 DB) 

 

과거 여러차례 진행된 여론조사 등에서 다수 여론은 코레일과 SR을 분리 운영하는 것보다 통합 운영이 필요하다는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분리 체제 이후, SR 측에서는 열차요금이 인하되고 서비스가 개선 되는 등의 긍정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코레일 측에서는 철도 분리로 비용만 중복 지출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SRT는 수서-동탄-평택지제-천안아산-오송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동탄‧지제‧천안아산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면서 인구가 늘고 있는데다가 출퇴근족까지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SRT 노선은 한마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수 있다. 

 

SRT가 돈이 될 수밖에 없는 알짜노선을 중심으로 운영을 지속하는 것과 달리 KTX는 지역간선열차인 새마을·무궁화 등 적자노선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수도권 거주자 입장에서는 새마을‧무궁화 노선이 꼭 필요한가 생각할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지역간선열차가 없으면 철도 자체를 이용할 수 없게 돼 이동권 보장이 어려워진다. 

 

지방 이동권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KTX 운영체제와 황금노선만 오가며 수익을 올리는 SRT의 운영체제는 분명히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SR은 차량정비, 역 운영, 시설 유지보수, 관제 등의 업무를 대부분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다. 요약하면 SRT를 운용하고 있는 SR은 황금노선을 끼고 수익은 챙겨가면서 정작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은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에 떠넘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지 코레일이 2020년 1조2114억원, 2021년 상반기 4885억원의 손실을 볼 동안 SR은 2020년 234억원, 2021년 상반기 148억원의 적자에 그쳤다. 

 

▲ 수서역에 정차한 SRT 열차. (사진=문화저널21 DB)

 

시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불만이 제기되는 ‘정기권’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SR이 시민 편의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SRT의 정기권 시스템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승객 편의는 사실상 뒷전”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기권은 입석을 타는 대신 원래 표값의 절반 정도를 할인해주는 제도로, SRT와 KTX 모두에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두 기차의 정기권 시스템은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KTX 정기권이 수량과 시간 등에 제약을 두지 않는 것과 달리 SRT 정기권은 열차당 최대 54장, 정해진 열차만 타야 하는 등의 제한을 두고 있다.

 

SRT 노선이 출퇴근족들의 주요 코스인 동탄‧지제‧천안아산을 거치고 있음에도 정기권 수량이 한정된 탓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은 매달 ‘티켓팅’ 전쟁을 벌여야 한다. 1분 만에 매진돼버리는 정기권 티켓을 구매하지 못하면 정가를 주고 기차표를 끊어야 해 출퇴근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SRT 정기권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시간대의 기차만 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근시간대인 오전 6시30분부터 8시30분 사이의 기차표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천안아산역을 통해 출퇴근 하는 한 시민은 “출근할 때 정해진 열차를 타야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일하다 보면 야근할 때도 있고 조금 일찍 퇴근할 때도 있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도 정해진 시간에만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정기권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표를 사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야근이 잦은 직장이라면 돈주고 산 정기권이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셈”이라 지적했다. 

 

정기권을 늘려 달라, 시간대를 풀어달라는 요구는 계속되고 있지만 SR 측은 “지나치게 많은 입석 인원을 태우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다른 승객이 불편해하기 때문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SR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KTX는 SRT처럼 제한 없이 정기권을 이용할 수 있다. SR의 논리대로라면 KTX는 안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운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승객이 불편해한다는 것 역시 KTX 대비 쾌적한 객실환경을 자랑하는 SRT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로 풀이된다.  

 

SR에서는 분리운영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코레일과 SR을 통합 운영하게 된다면 KTX가 수서를 통과할 수 있게 돼 자연스럽게 정기권 문제도 해결되고 적자문제 역시 일부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2018년 국토부의 철도산업구조 평가용역 중간보고서에서도 코레일과 SR 분리로 연간 559억원의 중복 거래비용 발생한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철도 통합운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가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공공재임을 감안한다면 결국 적자냐 흑자냐의 자본논리보다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편의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윤석열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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