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몰락①] 문해력, 요즘 애들이 문제일까요?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3/01/17 [11:12]

[텍스트의 몰락①] 문해력, 요즘 애들이 문제일까요?

박영주 기자 | 입력 : 2023/01/17 [11:12]

심심하지 않은 ‘심심(甚深)한 사과’ 논란, 영어로 랍스터인줄 알았다는 ‘가제(임시제목)’ 논란, 오늘을 뜻하는 ‘금일(今日)’을 몰라서 금요일에 과제를 제출하려 했다는 이야기나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영화 기생충 평론에 대해 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사용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진 것까지. 

 

단순히 커뮤니티에서 웃고 지나가는 수준을 넘어 아예 국정감사에서도 “왜 이렇게 질척거리냐”는 여당의원의 질타에 한 국무위원이 “굉장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가 국립국어원이 성적의미를 담은 표현이 아니라고 확인시켜주는 등 문해력 논란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 래퍼가 노래 가사에 ‘하루 이틀 삼일 사흘’이라고 썼다가 또다시 문해력 논란에 불을 붙였다. 

 

▲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자료사진)  © 문화저널21


대한민국의 문해력 논란은 명백히 ‘현재진행형’이다.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문해력 논란을 살펴보면 주로 특정 단어를 아느냐 모르느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의 단어가 ‘문어체’(글에서 주로 쓰는 말투, 숙회로 먹는 그 생명체가 아닙니다)거나 ‘한자어’일 경우 논란이 더 많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논란은 언제나 “그것도 모르냐”, “참으로 무식하다”는 비난과 함께 “똑똑한척 해도 젊은 사람들 참 문제가 많다”, “MZ세대의 민낯” 등등 특정 세대를 겨냥한 혐오로 끝난다. 이렇다 할 해법이나 개선방안을 찾기는 힘들다. 

 

본지가 만난 전문가들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지금 화두로 떠오른 ‘문해력’에 대해 단순히 특정 어휘를 아는지 모르는지만 놓고 위기를 논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뿐더러 제대로 된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일례로 디지털 세대로 불리는 10대‧20대는 장문의 글을 긴 호흡으로 읽고 이를 요약하는 일에는 어려움을 표하지만, 특정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는 부분에는 탁월함을 보인다. 실질 문맹률 75%라는 일각의 수치가 무색할 만큼 기성세대 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습득‧처리하고, 영어나 제2외국어 능력 및 신조어를 빠르게 내재화해 사용하는 점에서는 기성세대를 능가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MZ세대로 통칭되는 소위 ‘요즘 것들’의 문해력을 지적할 때 주로 사용돼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 문항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고 들여다볼만 하다. 

 

전문가들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이 비단 청소년 뿐만 아니라, 이미 나이 먹을만큼 먹은 어른들에게서 더 부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넘치는 숏폼 콘텐츠와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사실이라 맹신하고 이른바 ‘가짜뉴스’에 얼마나 잘 휘둘리는지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 또는 사실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배척하고 되려 화를 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오죽했으면 ‘가족 간에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게 국룰’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실제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국어교사들 역시도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원인으로는 디지털 매체의 활성화로 인해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분위기,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고 질문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적 사회 분위기가 꼽혔다.

 

아무리 학교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해도 당장 가정에서 어른들부터가 독서를 하지 않는데다가, 긴글을 읽고 쓰는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고스란히 문해력 저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많이 읽고 접하지 않다 보니 어휘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나아가 글을 이해 못하는 수준을 넘어 타인의 생각에 대한 몰이해로까지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단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상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과정에서도, 남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습득해 나열할 뿐 사실과 가짜 정보를 구별해 접한다거나 믿을만한 근거를 기반에 둔 것인지 검토하는 과정조차 거치지 않는다. 이른바 ‘카더라’에 휘둘린다는 점도 큰 틀에서 보면 결국 문해력 부족에서 나오는 문제인 셈이다. 

 

한 교사는 일련의 문해력 논란은 어른들이 만든 문제라며, 최대한 빨리 정답을 찾아내는 것만 훈련시키는 입시제도 하에서 아이들이 ‘느린’ 속도로 ‘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것이 일련의 사태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교사는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않다. 식사할 때만 봐도 아이들이 시끄러우면 눈치가 보이니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나. 청소년기에도 영상 말고는 학생들의 놀거리나 취미가 부족하다”며 “어렸을 때부터 간편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영상에 노출되는데 누가 책을 읽겠느냐”고 반문했다. 

 

텍스트가 무너진 시대, 읽는 것을 싫어하고 나아가 읽지 못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지금.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을 넘어 더욱 큰 범주의 정보를 접하고 이용하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1년 유네스코는 “디지털 리터러시 구현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문맹과 다를 바 없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문해력 보다 확장된 의미인 ‘리터러시(literacy)’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해력 논란’은 더이상 MZ 등으로 대변되는 요즘 것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에 본지는 문해력, 나아가 리터러시의 부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움직임이 필요한지 등 전문가들과 함께 방향성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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