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소탐대실’…윤심 잃고 정치력 주춤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3/01/25 [17:15]

나경원의 ‘소탐대실’…윤심 잃고 정치력 주춤

박영주 기자 | 입력 : 2023/01/25 [17:15]

보수 여전사→배신 프레임, 정치적 날개 꺾인 나경원

당권 욕심내다 저고위 부위원장직 잃고 정치생명 흔들

 

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의 꿈을 결국 접기로 했다.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며 ‘윤심(尹心)’과 멀어졌다는 지적을 한몸에 받았던 그가 끝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불출마 선언문에는 통상적 표현인 ‘선당후사’가 등장하긴 했지만, 그 내용이나 질의응답 발언들을 꼼꼼히 뜯어보면 윤핵관을 향한 은근한 ‘뒤끝’이 담겨 있었다. 

 

한때 보수적통 정치인, 보수 여전사로 불렸던 나경원 전 의원 입장에서는 윤심에 이반하는 행보로 전당대회 출마는커녕 기존의 장관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도 잃고 향후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 지금 상황이 말그대로 ‘낯선 정치현실’일 수밖에 없다. 

 

▲ 나경원 전 의원. (사진=문화저널21 DB)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저는 한번도 숨지 않았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오늘 이 정치 현실은 무척 낯섭니다.”

 

25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모습을 비춘 나경원 전 의원은 이같은 문장으로 불출마 선언을 시작했다. 그는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며 선당후사와 인중유화 정신으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낯선’ 정치현실. 그도 그럴 것이 나경원 전 의원은 한나라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보수정당에서 무려 4선이나 한 보수 중진 정치인이다. 지난 2019년 4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빠루’를 들고 있는 사진으로 일약 보수 여전사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랬던 나경원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윤‧비윤을 넘어 배신 프레임에 휩싸인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때 출마선언을 하지도 않았는데 당내 지지율 1위를 자랑하며 유력 당대표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나경원 전 의원이었던 만큼, 지금의 상황은 본인 말대로 ‘낯선 현실’ 그 자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잃은 것은 전당대회 출마 티켓 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을 잃은데 더해 때아닌 ‘배신’ 프레임으로 향후 정치생명까지 위태로워졌다. 

 

기자회견을 마친 나경원 전 의원은 김기현·안철수 의원 등 다른 당권주자를 도울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물음에 “앞으로 전당대회에 있어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할 공간이 없다. 어떠한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 이준석 전 대표와의 정면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3‧8전당대회를 계기로 정치적 재도약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나경원 전 의원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구상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어떤 역할을 할 공간이 없다’는 말은 이에 대한 불만 표출로도 해석된다.

 

나 전 의원은 불출마 선언문에서도 에둘러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정당은 곧 자유 민주주의 정치의 뿌리다. 포용과 존중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서정연한 무기력함이 윤심(尹心) 앞에 한목소리를 내며 반윤‧비윤 세력은 철저히 배척하고 윤핵관 중심으로 당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현재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경원 전 의원은 추가적인 해석에 대해 함구했다. 

 

“솔로몬 재판의 진짜엄마 같은 심정으로 결정했다”라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 중 가짜엄마는 아기를 둘로 쪼개더라도 갖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진짜엄마는 아기의 목숨을 우선해 자신은 친모가 아니라며 포기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진짜엄마’라면 ‘가짜엄마’는 당이 둘로 쪼개지더라도 당권 등에 욕심을 내는 이들로 볼 수 있다. 그 가짜엄마가 친윤계를 칭하는지를 놓고는 해석이 분분한 실정이다. 아기를 반으로 쪼개라는 다소 잔인한 판결을 내린 왕, 솔로몬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자칫 대통령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소지가 다분하다. 

 

이처럼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문과 질의응답에서는 대통령실‧윤핵관 등과의 갈등, 권력에 줄서기로 끝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 대한 다소 불편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나 전 의원이 “최근 저의 발언, 특히 저에 대한 해임 결정이 대통령님 본의가 아닐 것이라 말씀드린 것은 제 불찰”이라며 “대통령님께 누가 된 점, 윤석열 대통령님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음에도 끝내 퇴로가 열리지 않았던 것도 불출마 선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련의 사태는 나경원 전 의원이 당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군말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믿고 맡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충실히 수행하기만 했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했더라면 내년(2024년) 있을 총선에서 공천이라도 받을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례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우도 당대표 출마설, 총선 차출설 등에 휩싸인 바 있지만 당사자가 앞장서서 “얘기하는 것은 자유지만 거기에 단 1도 관심이나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현재 원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합을 맞추며 해외순방에 동행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원 장관이 장관직을 무탈하게 마치고 국회로 입성한다면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올라설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당권에 욕심을 냈던 나경원 전 의원은 윤심으로부터도 완전히 멀어지고, 차기 정치행보에도 먹구름이 꼈다. 조금 더 높이 날아보려던 이카로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추락한 것처럼 당권에의 욕심이 나경원 전 의원의 정치 날개를 꺾은 셈이다.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나경원을 잘라내야만 했느냐며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개입을 문제 삼는 야당의 목소리부터, 진작부터 살신성인·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였더라면 좋을텐데 아쉽다는 여당 내 친윤계의 목소리까지.

 

그의 불출마가 윤석열 정부 및 친윤을 자처하는 차기 당대표에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어찌됐건 이번 전당대회와 앞으로 있을 총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의 역할은 사실상 끝이 나는 모양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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