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악과 개혁 사이…‘주 69시간’ 근로가 온다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3/03/07 [16:40]

개악과 개혁 사이…‘주 69시간’ 근로가 온다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

박영주 기자 | 입력 : 2023/03/07 [16:40]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

경제계 “옳은 방향” vs 노동계 “사람은 기계 아니다”

‘공짜야근’ 포괄임금제는 근절키로 “오남용 발본색원”

 

‘주 52시간’ 제도로 묶여 있던 근로시간이 대폭 개편된다. 주 단위에 국한돼있던 연장근로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해 이른바 ‘몰아서 일하기’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경제계와 노동계는 극명히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상의‧경총‧벤처협회 등은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장시간 근로 조장으로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정부에서는 기존 52시간 제도로 인해 ‘포괄임금제’가 남용되며 오히려 근로자들이 야근을 하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개편으로 노사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건강권과 휴식권은 더 보장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사진=Image Stock

 

지난 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 52시간제의 현행 근로시간 제도를 대폭 개편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 △휴가 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까지 4가지 원칙 하에서 추진된다. 

 

이 장관은 “현행 1주 외에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운영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선택지를 부여하면서 근로자 건강권 보호와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단위기간에 비례해 연장근로 총량을 감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으로 주 최대 52시간인 근로시간이 최대 69시간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일견 근로시간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총량은 바뀌지 않는다고 고용부는 밝혔다.  

 

더욱이 근로시간을 주 단위로 하지 않고 연 단위로 확대하면 연장근로 가능 총량은 100에서 70으로 줄어든다. 주 12시간 연장근로 조건에 맞춰 분기별로 계산하면 총 156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지만 총량은 140시간으로 줄어들고, 반기별로는 312시간→250시간, 연별로는 625시간→440시간으로 줄어든다. 유연성이 커질수록 총량은 감소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유연성만 보고 연장근로를 많이 시키면 결과적으로 연장근로시간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무작정 늘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는 현재 돈은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포괄임금제도’에 대해서 “오남용을 발본색원 하겠다”고 예고했다. 주 52시간으로 경직성을 명시하는 바람에 개발자, 벤처기업 근로자들은 많은 경우 포괄임금제도 하에서 근로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추가 근무수당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근로 시스템에서 수당을 급여에 미리 포함하는 계약 형태를 말한다. 노사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하고 일정액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시스템인데, 현실은 ‘공짜 야근’으로 귀결된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포괄임금제도를 악용해 근로자들에게 장시간 무상 근로를 강요하고 있다. 

 

고용부는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은 기업이 근로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게 한다. 스스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며 현행 주 52시간 제도를 유연화 하면 경계선에 있는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도를 남용하지 않고 근로자들은 합당한 야근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근로자들의 건강권 강화를 위해 퇴근 후 다음 일하는 날까지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겠다며 이러한 내용은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이외에도 주4일제, 안식월, 시차출퇴근제 등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서 노사 모두가 만족스러운 근로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 집회를 이어가는 노조의 모습.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정부의 이같은 발표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정부가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사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정부의 개정안이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노사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 이번 근로시간 개정안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낡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성명을 통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이 기업의 업무효율을 높이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들 경제계 단체들은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11시간 연속휴식보장 등을 명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보호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추진돼야 할 것”이라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양대노총은 정부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아침 9시 출근해 자정까지 일해도 합법이 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라며 “주 64시간 상한을 제시했지만, 만성피로의 기준이 되는 12주 연속 60시간 노동에는 뭐라 답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노총도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면 근로시간이 특정 주에 몰릴 수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규칙적인 휴식을 보장하지 않으면 건강과 산업안전에 큰 문제가 생긴다”며 “노동부 장관은 더는 노동자를 기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언성을 높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이 상당 부분 경영자들에 유리한 형태로 구축된 만큼, 건강권 보호와 관련해서는 정부안이 더이상 후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내비치고 있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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