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줄로 고소당한 사람들…성폭력 무고의 세계

이환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7/31 [14:54]

[기획] 한줄로 고소당한 사람들…성폭력 무고의 세계

이환희 기자 | 입력 : 2023/07/31 [14:54]

한 줄 문구로 고소당한 사람들

성폭력 무고 사건의 세계

 

간단히 쓴 한 줄의 고소장으로 증거나 정황 없이 범죄자가 될 뻔한 남자가 있다. 31일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한성무)는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상대 측의 악의적인 진술만으로 성범죄자로 처벌받고 평생 성범죄자 낙인을 찍을 뻔했던 사람이 여럿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는 측은 ‘O월 O일 O시 사이 OOO에게 강간을 당했다’라는 한 줄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 제출을 시작으로 그를 강간했다고 알려진 A씨는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아니라고 주장을 해도 경찰은 듣지 않았다. 대질을 해달라는 요청엔 2차 가해라는 답변을 받아야 했다. 

 

▲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전형적인 성추행 무고 사건을 보여준다. 만원 지하철에서 실수로 다른 사람과 신체가 닿은 주인공이 고소를 당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경찰은 합의와 사과를 하라고 종용하지만, 아무 죄도 없다고 믿는 주인공은 법정에서 끝까지 다퉈볼 것을 다짐하며 2년에 걸친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컷

 

고소인 A씨 한줄 문장으로 성폭력 사범이 되다

변호사 선임해 불송치 결정 받아 

무고 가해자에 민형사 소송 준비 중 

 

결국 A씨는 큰돈을 들여 변호인을 선임했고, 변호인이 조사에 입회하면서 피의자의 권리부터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전반적으로 조력해 차츰 경찰이 짜놓은 영역 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A씨는 운이 좋았다. 운을 만들었다. 한성무 김대현 대표는 “보통의 피의자들은 상대의 진술보다 자신의 무고함에 경찰이 귀를 기울여줄 것을 믿으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않고 혼자 대응함으로써 경찰 조사는 물론 검찰 송치에 이어 기소까지 가 실형을 선고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A씨 사건은 불송치(경찰에서 죄가 없다고 판단해 검찰에 보내지 않고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절차)결정이 났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대 여성을 상대로 민사소송과 무고죄 형사소송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최근의 법원 경향으로 볼 때, 무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고, 그와 동시에 법적 배상도 받을 수 있을 듯하다”라고 내다봤다. 

 

‘호텔서 강간당했다’ 고소장 받은 B씨 

피고소인 신분과 진술 중요하지 않았던 경찰 

계속되는 부인과 물증, 고소인 신빙성 부족해 불송치 결정 

 

B씨의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B씨를 성범죄 가해자로 두고 피해자라는 측이 고소장에 적은 내용은 ‘호텔에서 강간당했습니다’ 한 줄이었다. 이른바 육하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특정하고 적시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경찰 측은 이른바 ‘성인지감수성’에 기반한 수사 경향을 띠어 피해자의 정신적인 고통이나 현재 상황이 그 같은 진술도 고소 절차에 합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호텔에서 강간당했습니다’ 이 한 줄의 진술로 B씨는 역시 강도 높은 조사에 시달렸다. 아니라는 진술을 거듭했지만 경찰은 가해 사실을 다시금 묻고 또 물었다. 시인하라는 것이었다. B씨는 상담하려 한성무를 찾았고, 사건을 지켜보면서 구체적으로 움직여보자는 조언을 들었다. 최근 들어 성폭력 고소 사건이 남발되면서 경찰들도 피해 사실의 특정성이나 신빙성, 입증할 만한 증거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B씨는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한성무의 조언대로 카톡 자료와 통화내용 등을 확보해 제출했다.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의 심정에서 오고 갈 대화가 아니라는 판단을 얻었다. 사건은 불송치 결정이 났다. 1줄의 고소장(호텔에서 강간당했습니다)과 2줄의 불송치 이유서(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낮고,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자료가 없다/혐의없다)가 남았다. B씨는 무고죄 고소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간의 사건 조사에 지쳤다. 경찰이나 검찰, 법원 쪽으론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성추행 누명을 쓴 주인공이 합의와 사과의 쉬운 길을 마다하고 진실을 끝까지 주장하는 영화다. /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컷

 

한성무, 성폭력 사건 전수조사 강력 주장 

억울한 무고 피해자 없게 해야 한다는 판단 

김대현 대표 ‘한줄짜리 낙서 같은 고소장’ 에 여럿 고통받아 

 

성범죄 무고 사건들과 별개로 김 대표도 성범죄 사범의 처벌 수위는 지금보다 더 높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의 시선은 ‘억울한 피해자’들에 가닿는다. 그가 성폭력 범죄사건의 전수조사를 다른 강력범죄만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경찰서나 경찰청 및 검찰청은 살인이나 강도 사건만큼 전수조사를 철저히 하여 성폭력 범죄자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더욱 강하게 처벌해야 하며, 성범죄 무고죄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나 가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한 줄짜리 고소장과 같은 ‘형편없는 낙서 같은’ 같은 고소장 때문에 무고 피해자들은 수천만 원의 변호사비용을 지불하고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다. 큰 비용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라도 '혐의 없음'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기소되어 억울해도 큰 비용을 들여 합의를 해야 하거나, 합의가 안되는 경우 실형까지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 서울중앙지법(자료화면) / 문화저널21 DB     

 

법원의 변화, 무고죄 판결 늘어나기도 

원죄 대하는 사법부 태도 변해가 

 

그러나 최근의 법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거짓말로 남편의 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장을 낸 40대 여성이 무고 혐의 판결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 C씨는 지난 6월5일 오전 1시28분경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의 한 파출소에 전화해 남편의 지인 D씨로부터 성폭행 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C씨는 D씨가 평소 자신의 집에 자주 찾아와 남편과 술을 마시거나 돈을 빌려가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C씨는 친·인척들과의 술자리에서 “D씨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발언한 후, 경찰에 신고하라는 친·인척들의 권유에 따라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C씨에게 1년형을 선고하면서 “피무고인 D씨는 성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 받으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C씨가 피무고 사실로 가정에 불화가 생겨 배우자와 다투다가 음독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C씨의 책임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그간 대법원 차원에서 ‘성인지감수성’을 고려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판례를 마련해 놓았던 과거가 있었는데, 판사들이 그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사실’과 ‘증거’로 다시 재판을 주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가 작지 않다. 

 

문화저널21 이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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