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봉 상훈, 장삼을 고쳐 입고 음악을 전하다

5월 초파일(27일) 제39회 불락사 산사음악제 열려

이환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4/27 [10:31]

휴봉 상훈, 장삼을 고쳐 입고 음악을 전하다

5월 초파일(27일) 제39회 불락사 산사음악제 열려

이환희 기자 | 입력 : 2023/04/27 [10:31]

세상에 관심이 많았던 휴봉 상훈 스님  

평생의 벗 혹은 업이었던 음악 

 

휴봉(休峰) 상훈(尙勳)스님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연원, 종교의 의미, 인류의 향배, 예술의 구실까지 무언가가 늘 의문이었다. 의문은 깊은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동, 서양의 종교부터 인류 역사까지 들입다 팠다. 계속되는 의문은 그를 산문 앞으로 데려왔다.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불락사, 상훈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상을 들여다본다.

 

▲ 휴봉(休峰) 상훈(尙勳) 스님    

 

음악은 평생의 벗이었다. 업이었다. 그는 우리 음악에 깊이 천착해갔다. 한국적인 것, 보다 더 한국적인 것, 문화를 공부하고 음악을 공부했다. 고저장단, 강약이 분명한 남도의 사투리 속에서도 음악을 느끼고 만졌다. 

 

“경상도 사투리 같으면 ‘니 밥 묵었나. 어데 가노’ 같은 말들 속에 묻어있는 성조와 강약이 다 음악처럼 느껴집니다” 

 

그의 기억이 닿는 지점, 옛 할아버지들이 타령처럼 책을 읽는 소리와 스님들이 염불하는 소리는 유사하게 맞물린다. 아니 할아버지들이 책 읽는 소리에 목탁을 두드리면 그게 곧 염불이다. 

 

1990년 이래 매년 개최했던 산사음악회

코로나19 이후 접었던 날개 새로 펴다 

 

스님은 올봄 이벤트 하나를 준비 중이다. 이름하여 산사 음악회. 군(郡)단위 고장에서 계속해오던 이벤트로는 규모가 크다. 국악 오케스트라 몇 팀이 내려오고, 각종 세션과 스태프들이 총동원된다. 4월 초파일(올해는 27일)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날 펼쳐지는 공연. 

 

“굳이 불교 음악을 들려드린다기보단 순수한 한국음악을 절 안에서 연주한다고 해야 할까요. 이 음악회를 구경하려 전국 각지에서 다 모여듭니다. 그들이 모두 모여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날 한국음악의 절이 곧 불락사로 명명될 겁니다.” 스님은 산사음악회란 형식이 처음 시작된 곳이 불락사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산사음악회는 스님이 1986년 쌍계사 국사암 감원으로 재임할 당시 중앙대 국악과 박범훈 교수와 함께 제1회 ‘부처님 오신날 봉축음악제’를 개최한 이래 국사암 및 쌍계사에서의 산사음악제를 비롯해, 1990년부터 매년 현 불락사에서 산사음악제를 열어왔다. 

 

장르는 다종다양하고 출연진은 화려하다. 마당극의 베테랑 김성녀 씨가 사회와 창을 하고, 국악인 신영희 씨가 공연을 펼친다. 국악예고에서 특별공연을 준비하는가 하면 남도민요와 서도민요가 겨루듯 공연된다. 판소리와 가야금, 기타(실용음악)의 병창이 이어진다. 절집이 시끌벅적해지고 사람들은 흥겹게 어우러질 전망이다. 스님의 얼굴에 염화미소가 번져간다.

 

“총연출은 중앙대 총장을 지냈던 박범훈 씨가 지휘합니다. 오랜 인연이죠. 지음(知音)이라고 할까요.” 

 

산사음악회 총연출 박범훈 총장과의 인연 

도올 김용옥과 더불어 세 사람의 오래된 지음(知音)

 

두 사람의 인연은 5공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도올 김용옥과의 조우였다. 그가 쌍계사 국사암에서 머무르고 있을 무렵, 도올은 시대 그리고 정권과 불화해 쫓기듯 국사암에 내려왔다. 그때 두 사람이 만났고 이윽고 의기투합을 하며 평생의 연이 되었다.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성장에 자극을 주는 관계라고 했던가(敎學相長). 그를 만날 즈음 박 총장은 일본 무사시노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청년 학자였고, 음악만으론 부족했는지 더 깊은 탐구를 위해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박 총장은 그에게 우리 음악(국악)과 불교 음악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깨우쳐줬다고 한다. 스님은 당시를 회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세 사람의 교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의형제를 맺은 박 총장과 스님의 음악 활동 역시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국악과 불교음악의 무경계성과 어우러짐은 40회를 향해 달려가는 산사음악회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다.  

 

스님의 종교 철학 “종교란 소통과 어우러짐이다!”

포용의 불교를 닮은 음악회 개최를 소망 

 

“종교의 근본 목적은 뭐냐,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알려주는 거라는 말입니다. 죽을 때 회개하고 참회해서 끝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어우러져서 소통하고 하는 걸 알려주는 걸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야 한단 말이에요."

 

▲ 불락사(佛樂寺) 경내 전경 / 사진=불락사 

 

스님이 생각하는 종교의 구실은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스님이 몇 년간 산사에서 음악회를 연 이유다. 많을 땐 2천 명의 관객이 찾아와 음악과 공간, 시간에 어우러져 가는 날이 있었다. 코로나19가 공연과 관객을 앗아갔을 때 스님은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의 오랜 부담을 내려놓고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참이다. 

 

“불교는 포용의 종교입니다. 처음 이 나라에 가톨릭 사제들이 들어왔을 때 박해를 피해 절집으로 숨어들었고 승려들은 그들을 숨겨주었죠. 사제들을 잡으러 온 관군이 그들과 스님들의 목을 베어갔죠. 이것이 의미 없는 죽음이었을까요. 더 나은 삶으로의 이행, 종교란 죽을 때까지 정말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오랫동안 종교와 인간에 천착해 온 스님이 사부대중에게 포교하고 싶은 바는 이렇다. 압제에 핍박받던 다른 종교를 장삼으로 품어 주었듯 그러한 포용의 정신, 그것이 음악의 꼴로 화(化)하여 연잎 향기처럼 세상에 닿기를. 스님은 그렇게 절집에서 5월을 기다린다. 

 

#휴봉 상훈 스님은

 

현 불락사(佛樂寺) 주지. 불락사는 상훈 스님이 불교음악의 진흥을 위해 창건했다. 불락사는 부처님의 낙원을 뜻한다고. 스님은 오고산 큰 스님을 은사로 모신 후 출가하고 해인 승가대 및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졸업,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포교원 포교국장과, 쌍계사 포교 호법 재무 교무 총무직 및 쌍계사 주지를 지냈다. 현재는 범패를 도입한 진감국사가 불교음악을 창시한 국사암을 기틀로 불교음악의 재부흥을 도모하며 현 불락사에서 전통 불교음악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문화저널21 이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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