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폐지론' 공은 떴다…정부 선택에 쏠린 시선

강도훈 기자 | 기사입력 2023/05/19 [15:51]

'전세폐지론' 공은 떴다…정부 선택에 쏠린 시선

강도훈 기자 | 입력 : 2023/05/19 [15:51]

“전세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다.

 

수도권에서 주택 1천139채를 ‘무자본 갭투기’로 보유하고 전세를 놓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던진 ‘빌라왕’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를 던졌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가 그것이다. 특히 지난 5년 저금리 기조에 부동산 광풍까지 더해지면서 집값과 동시에 전세가율이 급상승하는 효과를 보이면서 전세제도의 허점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 문화저널21 DB

 

빌라왕이라 불리는 A씨와 그 일당은 수도권 일대에서 무자본으로 집 수천 채를 구매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전셋값이 집값과 같아지면서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가정하에 추후 매물을 생각하면 돈이 되는 장사겠지만, 집값이 내려간다면 고스란히 피해는 임대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애초에 집주인이 임대인에게 돌려줄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제도는 풍부한 유동성을 전제로 시장에 안착되어 왔다. 예컨대 전세대출은 대출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음에도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방식으로 LTV, DSR과 같은 금융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워 과잉 대출을 유도하는 비정상적인 상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임대인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동시에 갭투자를 쉽게 만들어 주택가격과 거래 변동성을 높여 부동산 광풍과 같은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임차인에게는 가계부채 누적, 사회적으로는 거시경제적 충격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일부가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정부가 늦었지만 전세제도의 필요성과 취지를 재검토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이유다.

 

▲ 아파트 월세계약서와 아파트 전세계약서  © 문화저널21 DB

 

전세제도 장고에 들어간 정부

‘전세제도 재검토’ 공식화는 처음

 

전세사기 피해와 역전세난이 확산하자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세제도에 대한 검토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전세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전세란 것은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목돈을 빌린 것”이라며 “그런데 갚을 생각을 안한다는게 황당한 이야기다.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 못 돌려주겠다. 아니면 다음 전세계약 보증금이 그 이전 보증금보다 작으니까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라고 말한다”면서 “이 자체가 우리 전세 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저는 이렇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세제도는 워낙 오랜 생태계고, 뭘 하나 고칠 때 더 큰 문제가 나오면 안 되니 앞으로 공론화하고 모든 방안을 올려놓고 해야 한다”며 “임대차법은 어차피 개정해야 하는데, 이런 전세제도가 사기나 주거 약자에 대한 손해를 끼치는 걸 막을 방안으로 저희가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의 말처럼 전세제도의 문제점과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시기가 왔다는 점은 우리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다만 이미 형성된 시장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전세제도를 움직일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 지난달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 국토교통부 제공

 

정부, 에스크로 제도 만지작

3기관 보증금 예치 전세가격 급등 우려

자칫 전세시장 양극화 초래할라

중장기적인 접근 필요

 

전세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일치하지만, 이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은 제각각이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이 시점에 전세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시장 수요를 줄이는 형태로 서서히 소멸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세제도를 유지하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3기관에 보증금을 예치시키는 에스크로 제도도 대안으로 나온다.

 

이 중 정부는 에스크로 카드를 만지는 것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특별히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은 없었지만 원 장관이 처음으로 ‘에스크로 계좌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뉘앙스를 냈다.

 

에스크로 계좌 도입은 임대인이 임차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일정 금액 또는 전체비용을 제3기관에 예치시켜 놓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예치기관은 임대인에게 법정 이자 금리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겠다.

 

문제는 임대인들이 이러한 법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세거래는 분명한 개인과 개인의 거래인 만큼 국가개입이 자칫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금이 급등하는 부작용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부가 일정 금액의 예치를 제시한다면 해당 금액만큼 전세보증금을 높이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전세나 월세 전환 비중을 높일 수도 있지만, 수요가 받쳐주는 이상 전셋값의 상승으로 인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자금이 부족해 전세를 선택하는 가구가 있지만, 자금이 충분한데도 전세를 선택하는 가구가 있기 마련이다. 매달 허공에 뿌려지는 월세보다는 목돈을 넣고 지킬 수 있는 전세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임차인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전세정책에 대한 정부 정책이 제대로 된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 이는 자칫 부동산 지역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급진적인 핀셋 정책보다는 시장 전반에 정책이 스며들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 안목이 절실해 보인다.

 

문화저널21 강도훈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