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철밥통 선관위의 추락

최재원 기자 | 기사입력 2023/05/31 [11:32]

날개 잃은 철밥통 선관위의 추락

최재원 기자 | 입력 : 2023/05/31 [11:32]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63년 설립된 헌법에 명시된 독립기관이다. 어떠한 외풍에도 견고한 조직력을 자랑하며 부정선거, 소쿠리 투표 이슈에도 꼿꼿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너무 고요했던 탓일까. 자녀세습까지 손을 뻗친 선관위는 결국 날개를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동반 퇴진했다. 이들 박 총장과 송 차장의 자녀는 각각 광주광역시 남구청과 충남 보령시청 지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22년과 2018년 선관위 경력직으로 채용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과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윤재현 전 세종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 총무과장 등 전현직 고위 간부 6명 외에 4·5급 직원의 자녀까지 10명 이상의 부정 채용 의심 사례가 나왔다. 

 

이마저도 전수조사가 마무리되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화저널21 DB

 

독립성이 만든 썩은 고인물

외부 감사는 ‘거부’ 대응은 한 발 느리게

‘자정능력 상실했다’ 비판 목소리↑

 

선관위는 외부의 감시에서 자유로운 조직이다. 그만큼 정치적 외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문제는 조직에 바람이 불지 않는 만큼 기대할 만한 변화나 개혁이 없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사례로 비추어 지난 2022년 3월 사전투표 부실 관리 책임이 나온 ‘소쿠리 투표’ 논란에서도 선관위는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원에 자료 제출 등을 거부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시도 관련 보안점검을 거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은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다며 보안점검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장제원 의원이 선관위 고위층의 자녀세습 문제를 거론했고, 그러자 선관위는 뒤늦게 특별감사와 후속대책을 발표하겠다며 움직임에 나선 모습이었다. 

 

문제는 선관위가 내부적으로 자녀 채용과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 쉬쉬하다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로 자체 조사에 돌입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선관위는 문제가 된 박 총장과 송 차장에 대한 면직을 결정할 전망인데, 의원면직하면 공직 재임용이나 공무원 연금 수령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우태 국회부의장이 말한 “제 식구 봐주기 특혜 면직”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외부 감시의 사각지대에 안주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풍지대 선관위에 바람불까

권익위 합동조사 검토까지

 

채용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외풍을 극도로 꺼려하던 선관위가 스스로 외부의 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지난 30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자녀 특혜 채용 논란에 대한 합동 실태 전수조사를 제안한 것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이날 두 시간가량 긴급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도적 개선에 관한 것들”을 논의했다고 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선관위는 이미 5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자녀의 재직 여부를 조사 중인데, 국민권익위원회와의 조사를 받아들인다면 해당 조사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것으로 스스로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국민적 눈높이에 수준을 맞추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앞서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선관위를 향해 “선관위가 헌법 기관이고 정치적 독립성을 가진 기관인 만큼 권익위에서 선관위의 협조가 없으면 사실상 실태조사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셀프 조사보다는 객관적인 (권익위의) 채용비리 통합신고센터를 이용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외부 조사를 촉구 한 바 있다.

 

▲ 선관위는 지난 25일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의 사퇴 보도자료를 냈다.

 

차기 사무총장 자체 청문회 검토

사무총장 추천위 설치 등 검증 개선책 내놔

 

위상이 나락으로 떨이진 선관위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내부적으로 자체 개선책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제가 된 사무총장 직은 추천위를 설치해 검증하고 자체 청문회를 설치하는 등의 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중앙일보는 선관위가 차기 사무총장에 대한 자체 청문회 개최 등 검증 장치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선관위 핵심 관계자는 “차기 총장을 뽑을 때는 자체적인 청문회를 통해 검증 과정을 거치자는 의견이 있어 이를 검토 중”이라고말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외부 인사 수혈론으로도 연결되는데 그간 내부승진으로 총장직이 결정됐던 관행에서 벗어나 언제든 외부에서 인사가 영입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조직에 불어넣는 효과기 있다.

 

실제로 박찬진 총장은 2018년 조사국장(2급)으로 시작해 2020년 사무차장(차관급)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3월 자진 사퇴한 김세환 전 총장도 2016년 조사국장으로 작 총장과 비슷한 과정으로 총장까지 승진했다.

 

 

여당 “권익위 수사 진정성 의심”

“검찰 수사”, “사퇴” 두 키워드면 충분

 

야당 "국민의힘 독립기관 흔들기 점입가경"

“내년 선거 대비한 시나리오 쓰기”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자체 수사, 권익위의 수사로 사태를 넘기기에는 사안이 엄중하다며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31일 논평을 통해 “노태악 위원장의 입장발표는 ‘검찰 수사’와 ‘사퇴’ 두 개의 키워드면 충분하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특혜 속에서 부패했고 공정 가치의 상징 집단에서 가장 불공정한 그들만의 집단으로 추락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선관위의 셀프 전수조사를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 수석 대변인은 “전수조사로 뭉개보려거나, 어쭙잖은 공수처 수사의뢰 검토 카드로 어물쩍 넘겨보기에 사안은 심각하다”면서 “지난 2년간 ‘체포·구속 0건’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며 수사기관으로서 ‘심각한 무능’을 보여줬던 공수처가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선관위를 과연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권익위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난데없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선관위와 합동으로 전수조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며 “이쯤 되면 권익위 수준의 조사로 끝내기에 정도를 넘었고, 임기를 한 달여 앞둔 위원장의 일방적인 결정에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독립기관 흔들기가 점입가경이라며 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정부와 여당의 방통위, 선관위 등 독립기관 흔들기가 점입가경”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한 번 찍으면 검찰과 경찰의 수십 차례의 조사와 압수수색이 판을 치고 악마화하기 위한 작업이 즐비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선관위 장악을 위한 국정원에 서버 점검 요구에 이어 선관위 사무총장·차장을 압박하여 사퇴시키더니, 노태악 선관위원장까지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면서 “내년 총선을 대비한 유능한 국정운영보다 선관위, 방통위 장악 시나리오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립성과 중립성은커녕 무능의 끝을 막장 정치로 가리려는 것”이라며 “헌법을 무시하고 부당한 탄압과 법 위반을 일삼는다면 국민께서 면직처분을 내릴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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