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 칼럼] 우리시대의 우화(寓話)

강인 | 기사입력 2023/07/03 [09:46]

[강인 칼럼] 우리시대의 우화(寓話)

강인 | 입력 : 2023/07/03 [09:46]

오늘 불현듯 ‘우화(寓話)’가 생각난다. 키가 작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솝(Aesop,)’이 지은 그런 우화 말이다.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신포도], [황금알을 낳는 암탉] 등으로 유명한 이솝(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우화작가의 효시)의 우화는 대개 어린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서 가장 쉽고도 친근한 형태로 축약된 이야기다. 한편 17세기 이후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의 [시골 쥐와 서울 쥐], ‘이반 크릴로프(Ivan Krylov)’의 [크릴로프의 우화], ‘안데르센(Hans Andersen)’의 [벌거벗은 임금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 ‘생떽쥐베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어린왕자]‘, 우리나라 개화기에 ‘안숙선‘이 출간한 신소설 [금수회의록] 같은 우화는 단순히 아이들의 교육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악이나 권력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특히 고도의 정치적인 함축이 민중의 생동하는 언어로 담겨있다. 

 

이렇듯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며 문예부흥 운동과 함께 꽃을 피운 우화 문학은 ‘언어의 칼’, ‘지혜의 거울’ 등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촌철살인(寸鐵殺人)’, ‘양날의 칼’을 가진 우화를 정치적 연설법, 곧 수사학적 예시법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바오밥 나무’

 

아무튼 위에 소개한 작가를 위시한 수많은 거인(巨人)들의 공로로 우화가 문학역사의 한 페이지를 힘있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생떽쥐베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어린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그동안 출판된 책 중 16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가장 많이 팔린 책(1억 4천만 부)으로 근대에 탄생한 것 중 가장 뛰어난 우화 작품으로 인정 받고있다. ’어린왕자‘는 저 광활한 우주를 날아다니며 별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바오밥(Baobab)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별을 파괴해 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장미가 말을 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 어린 왕자는 그렇게 해 준다. 이들의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 현실 속의 암투처럼 배반하고, 거부하고, 외면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우화는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속에는 웃음이 있고 냉소가 있고, 풍자와 야유가 있다.​​ 또한 우화에는 모든 것이 그 대상이 되고 모든 사물이 등장할 수 있다.​ 이솝 우화에서처럼 여우가 말을 하고, 꾀를 부리고, 우둔한 머리를 가진 당나귀가 골탕을 먹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 동물 때문에 목숨을 건지기도 하며,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굶어 죽는가 하면, 사막에서도 여우를 만나는 세계가 바로 ‘우화의 세계’이다.

 

우화는 공상의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터무니없는 공상 그 자체는 아니다. 현실을 늘 주시하고 반영하면서 자기 세계를 유동적으로 변모시키곤 한다. 이것이 우화의 따뜻한 속성이다. 비록 그 이야기 속에서는 여우가 잔꾀를 부리고, 까마귀가 망신을 당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밝은 인간세계에 기여하고, 또한 인간세계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삭빠르고 우둔하고 때론 처량하기까지 하지만 결코 그들을 증오할 수는 없다.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우화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우화는 ‘시대정신(時代精神)’으로부터 그 싹이 트게 되었다. 우화는 중국의 요순시대(堯舜時代)와 같은 태평성대의 시대에서는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우화는 진실을 진실 그대로 말할 수 없을 때, 또한 그런 경로가 차단되어 있을 때 생겨난다. 그것은 일종의 비유(比喩, Allegory)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비유는 고도의 섬세한 테크닉을 지니고 있다.

 

우화는 촌철살인의 좁지만 통렬한 효과와 그 배설을 심리적 치유제로 자랑삼아도 좋은 것이다. 우화는 삶이 나태해지고 윤기를 잃어갈 때, 배덕과 악이 거리를 활보할 때 어둠 속을 조용히 밝히는 반딧불처럼 피어난다. 타오르거나 뜨겁지 않은 그 빛은 어둠 속에서 무지와 몽매에 의해 눈 가리어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한 것이다. 우화의 생명은 얼핏 당대에만 국한될지 모르지만 사회정의가 구현되지 아니하고, 사회 지도층의 부정 부패와 무지(無知)로 인해 사람이 사람에 의해 혐오스러워지거나 불신이 지속되는 한 꺼져들 줄 모른다.​

 

최근 금품로비 의혹인 ‘50억 클럽’,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코미디 같은 정치적 사법행위 의혹,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냉장고 영아 시신유기, 묻지마살인, 민주당 돈 봉투 의혹, 국회의원의 가상화폐(코인) 투기 의혹, 정치세력에 편승한 불법 노조와 주사파, 전교조 활동 등, 우리는 마치 과거 자유당 말기를 능가하는 타락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극도로 부패한 오늘날에도 우화는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현대의 기계문명이 가져다준 저 쇳소리와 금속 먼지에 질식된 우리들의 꿈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가진 자에 의해 억압받는 못 가진 자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강한 자에 의해 희생당하는 약한 자의 안녕(安寧)을 위해서라도 [우리시대의 우화]는 곱다란 화분 위에 키워져야 한다. 적어도 신랄하거나 통렬하지는 않더라도 그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는 그런 이야기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는 그러한 우화가 필요 없는 공평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 외부필진의 기고 ,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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