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지록위마(指鹿爲馬)

송금호 | 기사입력 2023/09/04 [10:59]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지록위마(指鹿爲馬)

송금호 | 입력 : 2023/09/04 [10:59]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는 말로, 뻔한 거짓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아래로는 권세를 휘두른다는 뜻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11년 만에 지방 순시 중 갑자기 병사(病死)했다. 수행을 하던 환관 조고(趙高)는 승상 이사(李斯)와 함께 황제의 조서를 위조해서 큰아들 부소와 몽염 장군을 자결하게 하고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2대 황제로 옹립했다.


조금 우둔한 호해를 황제에 앉혀놓고 조고는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황제에게 도전이 될 만한 진시황의 자식들 24명을 죽이고, 함께 공모했던 승상 이사마저 죽이고는 자신이 승상에 올랐다. 호해는 말만 황제였지 사실상 모든 권력은 승상 조고가 쥐고 있었다.

 

조고는 황제를 방탕에 빠트려놓고 모든 정사를 자신이 주관했으며, 자신의 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는 신하들은 색출해서 가차 없이 처형했다. 

 

어느 날 어전회의를 하고 있는 자리에 조고가 사슴(鹿)을 들여놓고는 “폐하, 훌륭한 말(馬)이 있어서 바치옵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를 비롯한 모든 신하들은 어리둥절했다. 분명히 말이 아니라 사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 호해가 “승상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자, 조고는 “이것은 분명 말이옵니다.”라고 우기면서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조고의 무소불위 권력에 공포를 느끼고 있던 신하들 대부분은 금방 눈치를 채고 “폐하, 승상(조고)의 말이 맞사옵니다.”라고 말했고, 일부 곧은 신하들 몇 명만이 “말이 아니고 사슴입니다”라고 답했다.

 

거의 모든 신하들이 ‘말’이라고 하고, 분위기도 살벌하니 황제인 호해도 마지못해 ‘그렇구나.’라고 수긍했지만 어전회의장은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이후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을 추려내서 죄를 뒤집어 씌어 모두 죽여 버렸다.

 

천하의 주인인 황제를 농락해 허수아비로 만들고, 사슴을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은 모두 처형을 해 버렸으니 진실은 팽개쳐지고 거짓과 선동만이 남은 공포정치가 계속됐다.

 

이후 조고는 아예 호해 황제를 죽이고 다른 황제를 옹립했지만 조고 역시 그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러다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은 지 불과 4년 만에 멸망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부불호부(父不呼父),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는 것으로,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찌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는 말인가.

 

전자는 거짓을 참이라고 우겨대는 권력과 그 위세에 눌려 꼼짝 못하는 세상을 풍자하는 것이요, 후자는 잘못된 제도와 관습을 꼬집는 말이다.

 

오늘에 빗대볼까요. 통일왕국 진나라의 황제는 천하의 주인이니 오늘날로 말하면 천부인권(天賦人權)을 가진 국민이요, 조고는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이니, 오늘날의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과 여권의 실제들이라 할 수 있다.

 

승상인 조고는 자신이 받들어야 할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면서 능멸을 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절대 권력자가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거짓을 진실이라거나, 또는 진실을 거짓이라고 우기면서 억지를 강요하고 있는 꼴인 것이다.

 

황제를 능멸할 정도의 권력을 가진 조고의 위세에 눌려 찍소리도 못하고, 입 한번 뻥긋도 못하면서 ‘사슴을 말’이라고 말한 당시의 신하들은 요즘으로 치면, 비겁한 언론과 일부 공직자들일 것이다.

 

우리의 동해(東海)를 뺏기고도 감히 항의조차 못하고, 대한민국의 엄연한 영토인 독도를 침탈당하고 있는데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는 비굴한 신하들임이 명백하다. 후쿠시마 핵 폐기수를 ‘오염수’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처리수’로 부르게 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사슴’을 ‘말’이라 부르라고 강요하는 진나라의 무소불위 권력자 조고와 다름없어 보인다. 민주국가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부불호부(父不呼父) 대신에 동해를 동해라 부르지 못하는 오늘의 이 절통(切痛)한 마음으로 동해불호동해(東海不呼東海)라 외쳐본다.

 

아, 그래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사슴을 사슴’이라고 한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런 분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희망이 스러지지 않게 하려면 침묵하지 말고 박 대령 같은 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주권자들의 응원과 성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끈거리는 행동도 있어야 한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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