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막수유옥(莫須有獄)

송금호 | 기사입력 2023/09/19 [11:10]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막수유옥(莫須有獄)

송금호 | 입력 : 2023/09/19 [11:10]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莫須有)는 것을 죄로 삼아 처벌을 한다는 뜻으로, 모함을 해서 정적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공세를 가하는 것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다.

 

중국 남송 때 명장인 악비(岳飛)는 당시 나라를 침략해 온 북방의 금나라에 맞서 연전연승을 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에 금나라의 장수 올출(兀朮)은 남송의 재상인 진회(秦檜)에게 “화친을 원한다면 악비를 죽여라‘라는 밀서를 보냈다. 금나라에 맞서 싸우기를 주장하는 악비를 적대시했던 진회는 화친파인 일부 신하들과 짜고서 악비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쓰게 해서 그를 모함했다.

 

또한 기습적으로 군제를 재편해서 악비를 포함한 군벌들이 갖고 있던 지휘권을 박탈해버렸다. 이후 악비와 그의 아들까지 소환해서 감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으로 반역의 죄를 물었다. 충신인 악비는 끝까지 거짓 자백을 하지 않고 버텼다.

 

죄가 없는 악비를 억지로 죽이려는 진회에게 어느 날 무장인 한세충(韓世忠)이 찾아와 따졌다.

 

“도대체 악비 장군이 죽을 이유가 무엇이요?” 그러자 진회가 “막수유(莫須有)”라고 짧게 대답했다. 어이가 없던 한세충이 “고작 그 세 글자로 악비를 죽인다면 천하가 납득하겠느냐?”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악비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진회는 악비를 죽인 뒤 자신의 뜻에 반하는 수많은 충신들을 가혹하게 죽이는 공포정치를 벌였다. 이후 남송은 화친을 명목으로 금나라에게 수많은 공물을 바치는 것은 물론 금나라 황제에게 남송의 황제가 신하의 예를 갖추어야 하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이처럼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서 억지로 처벌하는 못된 짓을 가리켜 막수유옥(莫須有獄), 또는 막수유지옥(莫須有之獄)이라고 한다.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섭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히 무소불위라고 할 만한 검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검사탄핵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견제장치가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행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수개월 전에 발의한 4명의 검사탄핵에 대해서 최근에서야 발의요건인 100명을 겨우 넘어섰다. 민주당 소속 의원은 170명이 넘는데도 말이다. 검찰이 무서워서인가.

 

검찰권의 행사가 정당하지 못하고 표적 수사를 벌인다면 이 세상에서 당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대통령 후보였던 야당 대표를 기소하기 위해 1년 6개월이 넘도록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수차례의 소환 조사, 구속영장 청구는 과해도 너무 과하다. 전직 야당 대표도 본인을 비롯해 젊은 여비서, 주변인들까지 포함해 1백여 건에 가까운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검찰이 ‘아마 있을 것이다’(莫須有)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표적이 거꾸러질 때까지 수사를 벌이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검찰의 이 같은 행태를 ‘인디안 기우제식’ 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민화합은커녕 정치적 편 가르기가 심회되고, 민생에 허덕이는 국민들은 점차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묻지 마 흉기 난동도 이 같은 사회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900년 전 막수유옥(莫須有獄)을 벌인 진회는 어떻게 됐을까.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시호(西湖) 기슭에는 악왕묘(岳王廟)라 불리는 악비의 사당이 있다. 애국 명장 악비를 기리는 곳으로, 진회로부터 함께 죽임을 당한 큰아들 악운(岳雲)의 묘도 함께 있다. 그런데 이 사당 앞에 기이한 모습의 철제 상(像) 4개가 있다. 이들은 두 손을 뒤로 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진회다. 옆으로는 악비를 빨리 처형하라고 부추긴 진회의 아내 왕씨, 그리고 함께 악비를 모함한 만사설, 장준이다.

 

충신을 모함해 죽인 진회와 그 일당들이 철(鐵) 형상이 되어 악비의 사당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8백년이 넘는 동안 이 역사의 죄인들에게 침을 뱉고, 욕설을 하면서 머리통을 갈겨왔다.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 치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 막수유옥(莫須有獄)의 죄를 어찌 감당하리요.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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