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이전투구(泥田鬪狗)

송금호 | 기사입력 2024/04/05 [14:34]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이전투구(泥田鬪狗)

송금호 | 입력 : 2024/04/05 [14:34]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이다. 자기 이익을 위하거나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옛날 우리나라의 8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서 유래되었다.

 

어느 날 태조 이성계는 조선 개국공신 중 핵심인 삼봉(三峯) 정도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성계가 물었다. “삼봉, 우리 조선 8도의 사람들에 대한 각각의 특징을 말한다면 무어라 하겠소?”

 

“예, 전하(殿下). 어찌 한마디로 평(評)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말씀드릴까합니다.” “말해보시오”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입니다. 곧 거울속의 미인이라는 뜻인데, 실제 활용되기는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충청도와 전라도는 어떻소?” “충청사람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다고 봅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와 같다고 사료됩니다.” “풍전세류라는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줏대가 없다는 것이오, 아니면 선비가 도포자락을 너울대며 춤을 추는 풍류(風流)가 있다는 말이오? 내 생각엔 부드럽고 영리하다는 뜻으로 들리기는 하오만.”

 

출신은 함경도지만 선대의 본향(本鄕)이 전주(全州) 이(李)씨인 이성계가 물었다. 이에 정도전이 더 이상의 대답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경상도와 강원도, 황해도는 어떻소?” “예, 경상도는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느긋한 품성을 지녔습니다.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이 조용하게 대응하는 품성입니다.”

 

“그럼 평안도와 함경도는 어떻소?”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 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이 기질이 무섭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는 의미다.

 

이에 함경도 출신인 태조의 안색이 붉어졌다. 임금의 기색(氣色)을 알아차린 정도전이 금방 말을 바꾼다.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태조는 기분이 조금 누그려졌다.

 

정도전이 전국 8도의 사람들 각각의 품성을 한마디로 평(評)한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억누르고 다스려야 하는 왕조시대 권력자의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어서 후대 사람들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악의적인 평을 하려는 소인배(小人輩)들은 곧잘 들추고는 한다. 마치 조작된 훈요십조(訓要十條)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든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원래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악착스러운 성격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총선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 때면 항상 그렇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혼탁함을 넘어 물고 뜯는 그들만의 추태는 여전하다. 선거전을 평하는 것으로 이전투구라는 말을 쓰는 것도 이제는 식상(食傷)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맘에 드는 좋은 후보가 없다면 덜 나쁜 후보라도 선택해서 투표장에 가야한다. 그놈이 그놈이라면서 정치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항상 못 된 정치인들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국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으니, 유권자들의 추상(秋霜)같은 권리행사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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