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연극의 시대가 아니다

원로 평론가 한상철 선생 연극평론집 출간 인터뷰

김기수기자 | 기사입력 2008/09/12 [09:57]

이 시대는 연극의 시대가 아니다

원로 평론가 한상철 선생 연극평론집 출간 인터뷰

김기수기자 | 입력 : 2008/09/12 [09:57]
ⓒ김기수기자
 
원로 연극평론가 한상철씨의 연극평론집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 출판기념회가 지난 11일 대학로에서 열렸다. '문화저널21'은 한상철평론가를 만나 오늘의 연극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탁계석(논설주간): 이번에  내놓으신 선생님의 평론집 ‘현대극의 상황과 한국연극’은 1974년부터 2008년까지의 우리 연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의 연극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상철(연극평론가): 한마디로 좋은 연극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좋은 연극의 기준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드라마의 약점이기도 한 문학성, 철학성이 배재되고 오락성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죠. 뮤지컬의 강세도 그 한 예입니다. 공연의 절반 이상이 이미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어요.
 
탁: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요? 그런 내적인 자정 능력이나 돌아가려는 힘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한: 어렵다고 봅니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거나 한국사회가 바뀐다면 모르죠. 현재 인문학적 분위기가 모두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예전에는 생활이 어려워서 집을 팔아서 하는 그런 열정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열정을 기대하기는 어렵지요, 목숨 걸고 연극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대신 지원이 없으면 안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요.   
 
탁: 연극의 흐름이 바뀐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 그동안 연극이 뭔가 정치적, 사회 이슈를 해소하는 꺼거리로서 일관되어 왔어요. 일제때부터, 독립운동 시절, 해방이후는 남북문제, 60년대는 군사정권의 정치 탄압 등 강렬한 투쟁의 대상이 있었지요.  연극이 이데올로기에 봉사해 온 셈인데 그런 투쟁의 대상이 80년대 접어들면서 소위 민주화 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우리나라 사회가 88 올림픽을 거치면서 완전히 변해 버리면서 연극이 투쟁할 게 없어진 것입니다. 급기야 2000년 이후 연극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극을 왜 하느냐는 물음, 자기 성찰 같은 게 상실되어 버린 겁니다.
 
탁: 그럼, 연극은 무얼 말하고, 뭘 이야기해야 합니까? 왜 이런 타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한: 연극은 결국 삶의 문제, 진지한 삶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피상적인 쾌락, 욕망을 다루었어요. 소위 벗기기 연극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만 것도 이 시기 연극의 한 사례입니다. ‘미란다’나 ‘매춘’도 다 그런 것이지요. 연극 공간은 더 늘어났고 연극 관람인구도 실제 크게 늘어났습니다. 또 10 손가락에 꼽던 연극과도 이제 전문대학을 포함해 100개가 넘습니다.
 
그 엄청난 연극 인구들이 뭔가 해야 하니까 극장이 늘어나고 어디선가 매일같이 행위가 일어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좋은 작품, 요즘말로 좋은 상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한마디로 삶의 진지하고 깊은 성찰이 사라진 겁니다.
연극을 왜 하느냐를 물음이 사라진 것이지요, 그건 결국 사람이 왜 사느냐 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탁: 그렇다면 연극 비평은 어떻습니까?
 
한: 연극 자체의 가치가 타락하니까 비평도 함께 죽는 것이지요. 작품이 없는데 무슨 비평을 합니까. 지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풍토가 되어야 비평이 존재하는데 우리 전반의 정서가 싸구려로 변했고, 무조건 하기만 하면 모두가 문화인 것처럼 되버렸어요, 즉 눈에 나타나는 것을 전부로 여기게 된 것 같아요.
 
탁: 그럼 대학에선 도대체 뭘 가르쳤답니까?
 
한: 대학은 테크닉만 가르쳐요.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깊은 삶의 세계를 가르치지 않아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필요한 동료의식이나 연극을 강인하게 하려는 의식 같은 게 부족하니까 그만큼 연극의 에너지가 약한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일본은 좀 우리와 다른 것 같아요. 자기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극에 애착이 대단해요. 동호인 활동이 프로가 되어 있어요. 동구권 등 유렵 국가의 연극은 지금도 뿌리가 튼튼하게 잘 가고 있어요. 우리의 사회의 경박 구조를 바꾸려 한다면 정말 진지한 연극이 살아나야 합니다. 연극의 존재가치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고 하겠습니다. 
 
탁: 문화부나 정부는 이런 연극의 상황에 대해 뭘 할 수 있을까요? 
 
한: 연극이란 문화 현상의 질적 우수성을 확보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대학로에 100 여개의 소극장이 있는데 정식으로 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극장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보니 작품의 축소, 왜곡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래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지요. 정부에서 최소한 중극장 등 제대로의 시설을 갖춘 극장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탁: 그래요. 좋은 연극을 찾아 주고 좋은 연극이 무엇인가도 끊임없이 일깨워 주어야 할 것 같아요. 문예진흥원(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한: 연극의 질을 높이는데 까지는 못 미쳤지요. 가난한 연극 시절을 생각해서 지원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었고, 주었다 하는 것에 그치다 보니 쓰레기 같은 작품만 양산하는 역기능도 적지 않아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 되어 버렸어요.
 
탁: 농사를 지어 보면 잡초를 뽑지 않고 비료를 주면 잡초가 더 빨리 자라 식물에게 큰 장애를 일으키는 이치와 같은 것 같습니다. 'culture' 가 ‘경작’인데 풀 뽑고, 보살피는 비평의 기능을 아직도 우리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왜 일까요?
 
한: 한마디로 후진성이죠.  인식이 낮아서 그래요. 언론도 자기들이 정해놓은 비평의 잣대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전문가들의 견해보다 기자들이 귀동냥해서 그저 적당히 대중 눈높이에 맞게 리뷰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고도의 심미안이란 오랜 현장 경험과 그 분야 전공의 바탕과 깊이에서 나오는데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감상적으로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비평이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우수 작품을 골라내야 질적인 풍토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 차원 높게 격을 올리려면 엄정한 비평의 잣대와 저울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질적인 것의 가치 기준이 비평이 되어야 하는데 비평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엉터리냐고요.
 
이처럼 전문성을 왜곡하는 인식이 도처에 깔려 있는 사회란 그만큼 비효율적 운영이 불가피 해요. 국력 손실입니다. 실용정책에서 가장 앞세워야 하는 것이 바로 ‘비평’아닐까 합니다.  뭘 알아야 빼고, 줄이고 할 것 아닙니까. 그걸  애써 외면하고, 왜곡하면 시장의 혼돈을 겉잡을 수 없어요, 오늘의 혼돈도 모두 비평을 홀대한 자업자득이란 측면도 크다고 보아요.   
 
그래요, 비평의 사회화가 전혀 안되어 있어요. 이상한 평준화 의식이 퍼지면서 결국 공공지원 자체의 정체성도 의심받고 있지 않나요. 오늘의 연극계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탁: 엊그제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새 정부의 문화 목표를 ‘품격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만....
 
한: 양질의 문화없이 품격 있는 나라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천박하고 도처에 넘쳐나는 게 싸구려 문화인데 어떻게 품격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비평의 기능이 뭘하는지도 모르는 나라 아닙니까. 한 때는 기금 지원에 아르바이트 평가단 까지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간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습니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우리는 ‘품격 상실 시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걸 회복시키려면 비평가들을 앞세워야 해요. 또 이런 인터넷 매체의 무한정한 지면과 속보성을 활용해  이런 혼돈을 해소할 수 있는 깊이 있는 , 좋은 안목과 지혜를 나누는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면 품격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국민적 합의도 빨라지지 않겠어요.  나는 인터넷 잘 모르지만 좋게 쓴다면 한없이 좋은 기능이라 봅니다. 

‘문화저널21’ 이란 사이트가 있는 것, 탁선생을 통해 오늘 처음 알았지만 문화소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건강한 것들이 자꾸 하나씩 생기면서 새살이 돋아나는 새 풍토를 만들면 전체 분위기가 업그레이드 되지 않겠습니까.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를 알리고, 좋은 것을, 좋은 문화를 몸에 익히도록 해야지요. 양질의 문화육성 취지가 묵살되니까 혼돈스러운 기류가 휩쓸고, 전체 물이 되리는 것 같아요.

탁: 긴 시간 대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선생님의 비평집 서문을 소개하면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정리 : 김기수기자)

ⓒ김기수기자

 
序 文
내가 첫 번째 평론집을 낸 것이 1992년 12월이었으니 지금으로부 16년 전이었다. 그 동안 세상도 물론 변화가 많았지만 정말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정도로 바뀐 것이 연극과 연극 문화 환경이었다. 옛날의 훌륭한 연극으로 평가될만한 기준이 현재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거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진지하고 심각한 연극은 뒷전으로 물려나고 쉽고 가벼운 연극만이 활개를 치며, 전체 공연작의 절반 이상이 뮤지컬로 채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연극이 사회의 담론이 될 만한 주제와 화제를 제공하였으나 이제는 평론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계제가 제공되지 않고 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예전에는 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정부와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웠으나 요즘에는 지원 없으면 공연도 없다는 식의 지원 풍년이 되었다. 이처럼 지원금이 풍부하다 보니 공연 건수가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어 월평균 대학로 소극장 공연이 70개나 된다.
 
이처럼 공연 건수는 차고 넘치지만 오래 기억할만한 우수 공연은 거의 없다. 1년에 한 두 편 찾기도 힘든 형편이다. 과거에는 국내연극제에서 한 해의 대표 작 몇 편은 꼭 찾을 수 있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그마저 찾기가 힘들다. 심지어 국제연극제에서 조차탄복할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확실히 오늘의 시대가 연극의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연극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고는 있지만 이 시대정신의 정수(精粹)는 찾지 못하고 삶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이 우울한 연극 풍토에서 연극을 사랑하는 심정은 여일하여 과거 70년대 중반에서 올해 2008년도까지의 글을 모아 한권의 책을 묶어 낸다.
 
첫 평론집 출간에서와 같이 현대 미학사의 김태원 교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의 배경과 숨은 힘이 되어준 모든 연극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연극평론가 한상철(韓相喆)
 
1936년 서울 생
연세대학교, 동 대학원 영문과 졸업.
한림대학교 영문과 교수 역임. 뉴욕 컬럼비아 대학 방문교수.
국립극장 레퍼토리 자문위원 역임.
‘연극평론집’ 편집주간.
한국 극작가 워크샵 지도.
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원.
‘공연과 리뷰’ 운영위원
저서: ‘한국연극과 젊은 의식’
‘한국현역연극작가론’ ⅰ,ⅱ(공저)
‘한국의 공연예술’(공저)
‘한국연극의 쟁점과 반성’(연극평론집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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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21 김기수 / 문화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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