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노동정책④] 비정규직, 정규직화 보단 ‘정상화’

박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27 [13:07]

[위험한 노동정책④] 비정규직, 정규직화 보단 ‘정상화’

박영주 기자 | 입력 : 2020/07/27 [13:07]

‘노동존중 사회’를 공약으로 앞세운 문재인 정부는 약속 만큼이나 곳곳에서 친노동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계속해서 나오는 친노동 정책은 노동자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나온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 일부가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열심히 일하려는 근로자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근로자들 사이에 ‘노노(勞勞)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된 갈등 속에 노사 간의 신뢰가 줄어들고 노동시장이 경직되자, 그 파장은 고스란히 선량한 노동자들 또는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노동권 안팎에서 문 정부의 노동정책이 위험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노동정책들을 분석해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잡아냄으로써 근로자와 사용자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건강한’ 노동환경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정규직 제도,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같은 노동에도 처우·월급도 열악한 비정규직 

'직장의 신' 속의 미스김, 대한민국엔 없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비정규직’ 제도. 비정규직이 어떤 일자리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칠 새도 없이 김영삼 정부에서 날치기로 노동법이 통과된 이후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의 주요 일자리 형태 중 하나가 됐다. 

 

비정규직 제도 도입 이후 2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은 어떤 일자리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용자들의 악용과 정규직 근로자들의 방임 속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정규직은 아닌, 부담 없이 뽑아 쓰기 좋-은 일회성 일자리로 자리 잡힌게 사실이다.

 

▲ 2013년 방영된 KBS 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장면. 현실에는 만능 비정규직 사원 미스김(김혜수) 보다는 정주리(정유미) 같은 비정규직 사원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계약연장을 위해 부당함을 감내해야만 한다. (사진=직장의신 캡쳐)

 

2013년 KBS에서 방영됐던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김혜수가 연기한 비정규직 사원 미스김은 항공기 정비사 자격증, 구조요원 자격증, 크레인 기사 자격증 등 124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엄청난 능력으로 회사와 업무를 위기 상황에서 구출해낸다. 

 

회사는 어떻게든 미스김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하지만 그는 “회사에 묶여있는 노예가 되기 싫다”며 거부한다. 정시출근, 정시퇴근, 정해진 업무 외 다른 업무는 일절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미스김을 보며 많은 직장인들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며 부러워하기 일쑤였다. 

 

미스김 같은 비정규직은 ‘전문계약직’이라 할 수 있는 특수분야다. 언제든 해고당할 위기에 놓여있으며, 정규직과 같거나 더 많은 양의 업무를 하지만 월급은 정규직보다 적으며, 각종 복리후생 조차 받지 못하는 ‘보통의 비정규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작중에서 배우 정유미가 연기했던 정주리가 대한민국의 흔한 비정규직이다. 삼류대학을 나와 어떻게든 계약연장을 하려고 온갖 잡일을 떠안고 아등바등 살지만 정규직과는 다른 차별적인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근로자가 일반적이다.   

 

원래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닌 모든 형태의 직종을 일컫는 말로 △간접고용 △파견직 △일용직 △특수고용직 △기간제 계약직 △파트타임 근로자 등을 포괄적으로 품고 있다. 

 

일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거나, 일거리가 몰리는 성수기에 잠깐 일할 직원을 채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비정규직인 만큼 목적에 맞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역할을 다한다는 특성이 있다. 순전히 단기간에 능력을 발휘해서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는 일자리지만, 쉬운 고용만큼 해고도 쉬워 소속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목적에 맞는 단기성 일자리라는 원래 취지보다는 정규직처럼 부릴 수 있지만 싼 일자리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혔다. 처우나 임금체계 등에 대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랴부랴 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장에서는 악용사례만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고용시장 내에서는 정규직과 동일한 상시·지속적 업무를 이행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금이 더 적거나 복리후생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팽배하다.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한다면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 비용이 덜드는 비정규직으로 이를 돌려막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9년도 기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6.4%에 달했다. 전체 근로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었다는 이야기다. 단순비교하면 1년 전보다 86만7000명(13.1%) 증가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 마저 커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상승률은 똑같이 5.2%였지만 금액으로는 정규직이 15만9000원 뛴 316만5000원, 비정규직은 8만5000원 오른 172만9000원이었다.

 

4차 산업혁명 등 기업생태 변화로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대우가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적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점은 상당히 좋지 않은 지표라 할 수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공공부문 만이라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문화저널21 DB, 이재명 페이스북)  

 

해외는 비정규직 차별 금지…'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재명 "동일노동 한다면 비정규직에 돈 더 줘야"

적은 월급 안정적 일자리 vs 불안정 하지만 많은 월급 

선택은 근로자에게 주어져야…기업도 Win-Win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우리 정부와 달리,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기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자체를 금지해왔다. 

 

유럽연합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할 경우에는 급여나 휴게시간·보험 등을 동일하게 제공하도록 의무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비정규직 계약기간이나 한도를 정해놓고 정규직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자동 정규직 계약이 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비정규직에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는 실험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는 “경기도가 공공부문만이라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게, 비정규직 중 고용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기로 했다”며 같은 일을 한다는 가정하에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안정한 소속과 적은 월급이라는 ‘중복차별’을 없앤다는 취지다.  

 

이 지사가 게재한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경기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 보상을 통해 고용안정을 제고할 목적으로 도 소속 및 공공기관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 2094명을 대상으로 이같은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스페인·프랑스·호주 등 해외사례와 경기연구원 연구결과, 임금상승률 등을 고려해 기본급의 5%를 지급금액 기준으로 삼았다. 프랑스는 불안정 고용 보상수당이 총 임금의 10%고, 호주는 15~30% 추가임금을 지급한다. 스페인은 근로계약 종료수당으로 근속년당 12일분의 임금을 지급한다. 

 

이 지사가 추진하려는 제도가 시장에 정착된다면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일을 하는 근로자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보다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가 자리 잡히고 직고용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사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역시 차츰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자들에게 있어서도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고용시장의 유연화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적은 월급이지만 안정적이면서 다양한 복리후생 제도를 누리고 싶은 근로자라면 정규직으로, 짧은 기간만 일하는 대신 능력에 따라 많은 월급을 받고 싶은 근로자라면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되기 때문에 무조건 정규직에 몰리는 기현상도 일부 개선할 수 있게 된다. 

 

경영계 등 일각에서는 해고가 어렵다는 정규직의 혜택을 문제삼으며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스페인을 필두로 관련 정책을 시도했던 유럽국가들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오히려 정규직 고용보호 혜택을 줄이는 것보다는 정규직을 고용했을때 기업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비정규직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불러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정규직을 뽑는 것보다 정규직을 뽑았을 때 더많은 혜택이 있다는 판단을 유도한 것에 따른 효과로, 이재명 지사가 시도하려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고임금 혜택 역시 비정규직을 뽑는 것보다 정규직을 뽑는 것이 더 낫다는 기업인들의 판단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옳은 해법 아니다

모두를 위해 비정규직의 '처우 정상화' 우선돼야

 

비정규직을 억지로 정규직으로 만들어 노노갈등을 초래하고 취업준비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문재인 정부의 방식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발상이 이재명 지사가 쏘아올린 제도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쏠린 과도한 혜택을 줄이거나 비정규직에 대한 혜택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를 공론화하긴 꺼려지니 아우성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행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해법은 빠르게 성과를 도출할 수 있고 달콤하게 보일진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공정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불합리한 처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난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부어야 하는 사측이나 기존에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꼼수로 채용된 것 마냥 죄인이 돼버린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이 되기 위해 좁은 채용문을 뚫으려 준비해온 취업준비생들 모두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물로 인식되고 말았다. 

 

노동존중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노사와 국민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규직 전환을 통해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만 급급한 모습만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신중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정규직으로 써야하는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쓰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고 동일한 노동을 했다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되 능력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형태가 시장에 우선 정착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닌 비정규직의 정상화라는 이야기다. 

 

문화저널21 박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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