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①

[제1기] 전기통신의 뿌리(1870~1896년) 전기통신 역사가 시작되다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3/12 [17:19]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①

[제1기] 전기통신의 뿌리(1870~1896년) 전기통신 역사가 시작되다

이세훈 | 입력 : 2020/03/12 [17:19]

[편집자 주] 본지는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한국의 전기통신을 주제로 우리나라 전기통신의 뿌리에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쳐, 미군정 및 대한민국정부수립 등 혼란의 시대,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한국전쟁 피해 복구 및 재건에 이르는 우리의 전기통신 기술기반과 수준을 조명해 총 7개 섹션 41부에 거쳐 연재한다. 필자는 1979년부터 현재까지 KT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KT 시니어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기] 전기통신의 뿌리(1870~1896년) 전기통신 역사가 시작되다

 

통신이라 함은 궁극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옛날에는 북소리나 횃불 등 청각과 시각에 의해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또 문자에 의한 정보전달 수단으로 우편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통신방법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었다. 이러한 제한사항을 해결하는 정보전달 수단으로 전기적 기술을 이용한 전기통신 방법이 발명되었다.  

 

전기통신은 1844년 사무엘모스가 전신을 발명함으로써 시작되었고, 1876년 그레이엄 벨에 의한 전화의 발명으로 대중화의 중요한 기틀을 잡았다. 1885년 헤르츠가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구성된 파동의 전자파를 발견하고 1895년 마르코니는 이와 같은 전자파(주파수)를 통신의 매체로 실용화하였다. 마르코니는 전자파를 무선통신에 이용하여 현대 장거리 무선통신의 기초를 이루었다. 

 

1904년 최초로 진공 속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진공관을 발명했고, 그 뒤 1914년 진공관을 이용한 증폭회로의 발명으로 장거리 통신이 실현되었다. 1960년대 들어 트랜지스터의 생산으로 통신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19세기에 조선은 근대국가로 발전하였다. 특히 전기와 통신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효자산업으로 불린다. 1800년대 말 조그마한 전구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것을 '도깨비불'이라고 불렀다. 통신기술은 19세기와 20세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1885년 8월에 한성과 제물포간에 전신시설을 개통함으로써 전기통신 역사가 시작되었다. 1885년 전신시설과 1896년 자석식 전화기 개통이 시작점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16일 주파수 690KHz로 첫 전파를 발사한 호출부호 JODK 경성방송국 개국은 라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미디어를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초기 통신방식의 시작은 아날로그 방식에 의한 전송이었다. 아날로그 방식은 통신과 방송 등에 실용화되어 100여년 이상 아날로그 전성시대를 누렸다. 전기통신 역사상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반도체기술 진보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전송하기 위한 변조방식의 일종으로 펄스부호변조(PCM, Pulse Code Modulation)방식의 실용화로 본격적인 디지털 전기통신기술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

 

통신기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발전에 기여 한 광통신은 유리섬유(Optical Fiber)를 매질로 빛을 이용한 통신방식으로 전기적인 신호를 빛으로 바꾸어 전송한다. 광통신은 1960년 레이저광의 발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저 손실 광섬유의 제조로 현대의 통신망에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광 통신기술은 대륙 간을 연결하는 장거리 통신은 물론이고 전송기술 및 반도체 기술의 발달과 함께 크게 발전하였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통신망 이용을 효율화하고 단말기에 고도의 지능 도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단말의 지능화는 고도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좀 더 다양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원하는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 상호간을 연결시켜 주기 위한 우리나라 교환기술은 1896년에는 전화 송·수화기를 들면 곧바로 교환수에게 신호가 가도록하여 연결하는 초기의 수동식 전화시대를 맞이하였다. 

 

1907년 서울 중앙우편국에서 공전식 전화시대를 시작하였다. 1935년에는 기계식에 의한 자동식 전화시대를 거쳐 1970년대 들어 전자식 교환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대는 전화망과 같은 회선 교환망 대신에 사용자의 음성 또는 데이터를 디지털 및 패킷 형태로 전송하는 IP교환시대가 실용화 되었다. 이렇듯 통신의 발전은 짧은 시간에 빠른 발전을 이어왔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근대시대 에서 한국전쟁 후 재건에 이르는 동안 전기통신 기술의 발전사를 되돌아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휴전선에서 울리기 시작한 한국전쟁의 포성은 우리나라 산업의 암흑기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6.25사변잔흔 서울시 파괴 현장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일제강점기에서 광복된 이후 서서히 싹트는 산업의 움직임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불행을 몰고 왔다. 한국전쟁으로 80% 이상의 통신시설이 잿더미가 되어 국가의 중추신경이라 할 수 있는 통신수단은 마비사태로 빠지고 말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부터 혼란기를 거쳐 1960년까지 전쟁피해 복구활동에 이르는 우리의 전기통신 기술기반과 수준을 조명하여 보고자 한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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