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⑬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국경 북쪽 군사 요충지에 최신 자동식 전화 우선개통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4/28 [09:13]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⑬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국경 북쪽 군사 요충지에 최신 자동식 전화 우선개통

이세훈 | 입력 : 2020/04/28 [09:13]

[제3기] 일제강점기(1910~1945년) 국경 북쪽 군사 요충지에 최신 자동식 전화 우선개통

 

일제강점기에 전화자동교환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조선 땅에서 자동교환기가 제일 처음 설치된 곳은 경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산이나 평양도 아니다. 조선 최초의 자동교환기는 1935년 3월 국경 북쪽의 주요 군사도시인 함경북도 나진에 설치된다. 이어 경성, 그리고 역시 군사 요충지인 함경북도 동해안 청진에 설치된다. 또한 당시로서는 가장 앞선 시설을 가지고 있던 경성의 구식교환시설도 군사 요충지 원산과 신의주로 이전 설치한다.

 

자동교환기의 도입을 둘러싼 정책은 군사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군 주둔지, 대륙 진출의 전략적 가치가 높은 북쪽 지역의 도시에 우선적으로 최신시설을 공급했던 것이다. 자동교환기의 설치에 따라서 폐물이 될 경성 중앙전화국의 공전식 교환기도 수선하여 군사 요충지 원산과 신의주에 이전하여 설치했다. 

 

1905년 당시 조선에 시내용으로 자석식 100회선 단식교환대 17대, 벽걸이 교환대 11대가 이용되었다. 시외용으로 자석식 시외 교환대 4대가 있었다. 자석식 100회선 단식 교환대의 경우 가입자 80회선을 수용하고 나머지 20회선은 중계선용으로 사용한다. 1907년 전국에 자석식 단식교환대가 51대로 증가되고, 1910년에는 단식교환대 80대와 시외교환대 1대로 늘어났다.

 

한편, 1908년 6월 최초로 공전식 교환기 4대를 12좌석 규모로 설치했고, 1921년에 용산분국에 공전식 교환기 4대 12좌석을, 1923년 광화문 분국에는 공전식 교환기 4대 15좌석을, 1924년 원산국에 공전식 교환기 5대 15좌석을 설치한다. 또한 경성국을 자동식으로 변경함에 따라 그곳에서 철거된 공전식 교환기 5대 15좌석을 1936년에 신의주국에 개통한다. 그러나 부산국은 1911년, 평양국은 1920년에 구형 자석식 복식교환기로 바꾸었다. 

 

1930년대 들어서 전화 가입자 수가 증가하여 수용한계를 초과한다. 일제는 1935년 10월 1일 수도 경성중앙전화국 본국의 교환시설을 공전식에서 6000회선 규모 스트로우저식 자동교환기로 교체한다. 이에 앞서 조선 최초로 개통된 자동교환기는 1935년 3월 개통된 SH(Siemens Halske)식 교환기로 함경북도 나진국에 설치된다. 400회선 규모의 교환기로 국경 북쪽 나진이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일제는 설치를 서둘렀다. 1935년 11월 군사 요충지 함경북도 청진국에 SH식 자동교환기 1000회선을 설치한다. 그 이후 1945년 8·15 광복까지 자동교환시설로 변경한 전화국은 없었다. 

 

  • 침략의 수난 무선통신 

 

광제호에 이어 무선시설은 일본 해군이 1910년 9월과 1911년 2월 사이에 처음으로 시설한다. 월미도의 무선시설은 서해를 항행하는 중국 대연항로의 중계국이다. 무선시설은 기상관측. 등대통신. 해안경비. 해난구조 등의 특수 업무에 사용한다. 그러나 공중무선통신은 취급하지 않았다.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의 중요 수단이 되는 선박의 항행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일제의 대륙침략이 활발해짐에 따라 경성. 목포. 제주. 부산. 청진. 원산. 나진무선국 등이 건설된다. 

 

▲ 부평송신소 송신기에 사용된 고출력 진공관 (kt사료) 


조선-일본 간의 무선통신은 일제 육군의 작전지시 통신의 목적이었다. 1922년 12월 10일 조선의 경성육군무선전신소와 일본의 금택육군무선전신소 간에 전보소통을 그 효시로 한다. 경성육군무선전신소를 경성무선전신국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공중무선통신을 최초로 취급한다. 1926년 경성무선전신국은 도쿄무선국과 오사카무선국에 각각 전보를 소통시킨다. 부평송신소에 500W 단파송신기 1대를 설치하고, 1939년 6월 1일에 경성과 중국 천진간의 무선통신로를 개설하여 전보의 소통을 시작한다. 이 시설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계기로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통신시설 중 하나이다. 

 

무선통신량의 증가에 따라 용산송신소를 경기도 부천군 부내면으로 확장 이전해 부평송신소라 개칭하고 1939년 9월 1일부터 송신업무를 개시한다. 1939년 7월 시작한 기상방송과 제주, 울릉도 및 어청도와의 무선통신로 개설한다. 1941년 3월에 부평송신소. 청량리수신소 및 경성중앙통신소에 송신기 1대, 수신기 2대 및 고속도통신석 2석을 준공한다. 이 시설은 중일전쟁을 계기로 항공기와 선박의 안전한 항행에 이용했다. 군부가 기상통신설비와 항공무선설비의 정비 확장공사를 강력히 요구하여 3개년계획 계속사업으로 1938년부터 시행했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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