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끼적] 드라마 '지옥'의 정진수, 현실의 '전우원'

이환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3/17 [14:42]

[끼적끼적] 드라마 '지옥'의 정진수, 현실의 '전우원'

이환희 기자 | 입력 : 2023/03/17 [14:42]

▲ 드라마 지옥 스틸컷(사진=넷플릭스)

 

정진수는 알고 있었다. 누가 고지를 받고 심판에 이르게 될지를. 새진리회 교주였던 그를 두고 단순한 사이비 종교 교주라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그의 예언에 의해 심판 받는 자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그는 순식간의 메시아가 돼 버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여러 언론에 비춰진다. 그 자신 역시 20여 년 전 고지를 받게 됐고 심판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드라마 ‘지옥’ 속에서 유아인이 분했던 정진수가 유독 떠오르는 며칠이다.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의 행보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면 정진수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두환 씨의 손자라는 위치로 세상에 자신을 공개하더니 단숨에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됐다. 

 

뿐 아니라 전두환 씨 가족의 비자금과 은닉 재산, 범죄 혐의까지 백일하에 공개해 언론들에 기삿거리를 제공한다. 마치 심판의 대상과 날짜를 지정해 예고하던 정진수 같다. 언론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그의 SNS를 통해 접촉해 전우원 씨가 쏟아내는 정보들을 여과나 검증 없이 공개해버린다. 특히나 그의 조부모 전두환, 이순자 씨에 관련된 일이라면 추가 취재 없이 이야기만을 듣고 쓰고 있다. 

 

물론 나름의 추가 취재와 2선에서 검증 작업을 병행하고 있을 테지만 언론의 행보는 보기에 무척이나 성급하다. 일반적인 취재원이라면 검증, 여과 작업이 우선이고 보도나 방영은 며칠 후에 이뤄졌을 테지만 전우원 씨는 실시간이다. SNS에 소식 하나 올리면 그걸 그대로 받아 기사화한다. 공영방송 KBS부터 어느 이름 모를 인터넷 언론까지 행태가 다를 바 없다. 

 

▲ 전두환 씨 손자라고 알려진 전우원 씨(사진=전우원 씨 유튜브 캡처)

 

특종이나 단독도 좋지만 취재의 기본은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두환 씨의 피붙이가 되었든 무명씨가 되었든 취재원의 말을 검증하고 취재를 반복하며 고갱이를 만듦으로써 보도가 되야 하는 게 아닌가. 전우원 씨의 말, 그리고 그의 영상과 일방적인 주장들로만 이뤄진 보도를 보며 독자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까닭은 아마 이런 이유일 테다. 

 

전우원 씨는 오늘(17일) 새벽 SNS라이브 방송을 하던 도중 마약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자신의 몸에 마약을 투약해 쇼크 반응으로 자신을 구인하러 온 현지 경찰 당국(NYPD)의 손에 이끌려 치료 시설로 입소하게 된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로 "죄송합니다. 무섭다. 살려주세요"라며 횡설수설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흐느끼는 등 환각 증세를 보였다고 전해졌다. 

 

이에 앞서선 SNS 계정에 “본인이 사회적 저소득층인 것을 증명하는 모든 분에게 페이팔로 100불(한화 10만 원 이상)씩 보내겠다. 최소 몇백 명에게 간다”라는 글을 올려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의 SNS만 봤을 땐 정신이 가지런하지 않고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아 보였다. 믿을 수 있는 취재원은커녕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현지 병원에서 재활 중이라고 알려졌고, 기자들이 하나하나 받아 쓴 취재의 보고처럼 존재했던 SNS 계정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삭제돼 버렸다. 전 씨는 현재 기자들의 공식 취재경로에서 증발해버렸다.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도 결국 자신이 받은 계시에 따라 심판의 대상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정진수와 전우원이 교차되는 시간이다.

 

문화저널21 이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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