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환 칼럼]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 장군

김충환 | 기사입력 2023/09/06 [10:43]

[김충환 칼럼]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 장군

김충환 | 입력 : 2023/09/06 [10:43]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68일 오후 4시 고려공산당의 양대 파벌인 이동휘의 상하이파와 오하묵의 이르츠쿠츠파의 갈등으로 볼세비키 적군이 사할린의용대의 무장을 해제하는 과정에 발포하여 140명을 죽고 970명이 포로가 된 사건이다.

 

일본군은 백군을 지원한다는 핑계로 1920년 4월 4~5일 야간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모든 볼셰비키 기관과 신한촌을 비롯한 한인 밀집지역을 습격했다. 볼셰비키 기관들과 적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피해 북방으로 후퇴하였고 한인 무장 독립군도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이 일어났다. 1920년 6월 6일부터 7일까지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의 연합부대, 신민단 1개 중대가 길림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일개 중대와 전투를 벌였다. 독립군은 4명 전사에 2명 부상하는 정도의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하고 200명이 중상을 입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는 서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 연합부대가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60명이 전사하였으나 일본군은 1200명이 전사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역사적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군은 독립군과 한인촌에 대한 대대적 보복을 감행하였다. 수만 명의 한인 농민들이 죽임을 당했고 수천채의 가옥이 불태워졌다.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등의 간도 한인무장부대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독립군 여러 부대들이 러시아와 만주의 국경 지역인 흑룡강성 밀산시에 집결하였다. 병력은 약 2천∼2천300명 정도로 추정된다.

 

대한독립군단은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려면 볼세비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1921년 1∼3월경 자유시에 도착했다. 이르츠쿠츠파 오하묵은 대한독립군단을 자유대대에 배속시킨 후 독립군을 통합하려고 했다. 상하이파 박 일리아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자유시 한인부는 오하묵의 자유대대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독립군을 상하이파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오하묵은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에 자유시 한인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탄원하였다. 코민테른 동양비서부는 오하묵의 탄원을 받아들여 임시 고려군정의회를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칼란다리쉬빌리, 부사령관에 오하묵을 임명하였다.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총사령관 칼란다리쉬빌리는 6월 7일 일리아 박에게 군대를 인솔하고 자유시로 들어오라고 명령하였지만 일리아 박은 거부한다.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부대는 명령에 따라 자유시로 들어왔다.

 

6월 28일 극동공화국 자유시수비대 제29연대가 사할린의용대 본부에 들어가 무장해제를 종용하였으나 일리아 박 휘하의 사할린 의용대는 끝까지 거부하였다.

 

그러자 6월 28일 4시 카린다리쉬빌리가 지휘하는 적군과 오하묵의 자유대대는 기관총을 난사하며 강제로 무장해제시켰다. 이 과정에서 140명이 독립군 장병들이 전사하였고 970명은 포로로 잡혔다.

 

혹자는 "홍범도 장군이 고려혁명군정의회 중심의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관으로 활동한 것 그리고 소련 적군 5군단 소속 '조선여단' 1대대장으로 임명된 사실"에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장군의 사상이나 행적에 대한 비판의 자료가 될 수 없다.

 

홍범도 부대는 볼세비키 적군의 법적 요구에 따라 무장해제를 한 것이고 이를 거부했다가 피해를 입은 동지들을 안타까워하며 땅을 치며 통곡했다.(윤상원 교수) 존경받는 애국자이며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을 명백하고 객관적인 근거없이 자의적으로 폄훼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충환 

평화통일연구원 이사장

북한종교와신앙의자유국제연대 공동대표

전 대한민국헌정회 사무총장

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원장

전 국회의원(17, 18대, 서울 강동갑) /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전 강동구청장(민선 1,2,3기)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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