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백(望百)의 시인 황금찬 선생을 찿아

양심의 소리를 절대어로 표현하는 시인

최세진 | 기사입력 2008/03/17 [01:00]

망백(望百)의 시인 황금찬 선생을 찿아

양심의 소리를 절대어로 표현하는 시인

최세진 | 입력 : 2008/03/17 [01:00]

© 최재원기자
슬하에 3남2녀, 둘째와 우이동 부근에서 거주

망백(望百)그를 만난 곳은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가 병풍같이 펼쳐져 있는 수려한 경관 아래 터를 잡은 황금찬 시인의 쌍문동 자택. 필자는 노 시인과 인사를 나누면서 의식적으로 선생의 눈동자와 행동거지, 악력, 말씨 등으로 건강상태를 파악해보려 했던 스스로가 무안해짐을 느꼈다.

이 분이 정말 1918년생 91세의 대한민국 최고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이란 말인가.
맑은 눈동자와 거침없는 몸놀림, 아름답고 감정어린 말씨,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우러나는 악력 등을 통해 느낀 선생의 신체적 연령은 대략 65세 정도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말문을 연다.

선생은 슬하에 딸 둘, 아들 셋을 두었는데, 큰딸은 74년에 운명하였다. 그 딸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란 제목의 그 영화를 아직도 보지 못했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큰아들 도제(島濟), 둘째 도정(島政), 막내 도원(島園)과 딸 애향(愛鄕), 현 인제대 교수인 사위 강강성씨가 그를 마치 병풍처럼 그의 마음에 울타리가 되고 있다. 현재 선생은 둘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둘째는 강원도 홍천에서 소를 키우는 목장을 하고 사업체 사무실은 마석에 두고 있다고.

문화 정책, 문화 네트워크가 없는 나라
그는 현재 우리나라 문단은 문화정책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의 시집 35권을 번역해서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 보내고 싶은데, 그것조차 안내해주는 곳이 없는 실정이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실제 선생의 시로 영어 시집을 냈는데도 어디로 보내야 할 지 모른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문화 정책이며, 문화 네트워크가 어디있느냐는 그의 호통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노기가 서렸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와 절친한 외국분이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라고 합니다. 책 3권 겨우 내고 문 닫는 출판사가 무수히 많은데, 망할 줄 알면서 또 출판사가 생기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답변도 바로 그 사람이 했습죠. 한국 사람은 그만큼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랍니다. 정말 훌륭한 질문과 답변이죠. 그런데 과연 그 말이 맞는 걸까요? 시인이 시 한 편을 써서 많이 받으면 10만 원 받습니다. 그것도 주는 데가 몇 군데 없어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아름다운 말
세계의 언어를 총망라하면 약 6000개. 그 중에서 우리 나라 말이 13번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첫 번째가 중국이고 다음은 미국, 일본은 9번째. 그들의 인구가 1억6천만 명인데 비해 남북한을 합친 인구가 겨우 7천만 명이니 정말 대단한 한글인 셈이다.


© 최재원기자
“다른 나라 말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말은 발음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나라 말은 과학적이고 문자화된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말입니다.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 말을 없애고 영어로만 시를 쓰자는 정신 나간 시인도 있더군요. 저는 그런 사람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원로시인의 자존심이 배어난다. 그즈음 그는 20살 때 읽었던, 이북에 두고 온 책 이야기를 꺼냈다. 베이컨이라는 영국의 선교사로 16개 국 언어를 연구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베이컨은 세계의 문자를 두 개로 축소해보면 한글과 로마자가 남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마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다고. 아마 세계의 언어가 하나로 통합된다면 한글은 과학적이고 우수성은 뛰어나지만 역사가 짧아서 로마자가 될 것이라고 했던 당시 기억을 되살려냈다.

“20년 전 통계입니다만,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배우는 과목이 12, 13과목입니다. 그 중에서 자기네 나라말을 36%를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우리말을 가르치는 전체 시간이 20% 이내입니다. 자기 나라의 모국어를 잘 안 가르치면 이름하여 후진국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우리가 우리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히 행복한 일. 일본에 의하여 1940년에 이름과 성을 빼앗겼으며, 1941년 4월에는 신문과 잡지를 말살당했다. 선생은 당시 얘기를 또 들려준다.

어느 마지막 신문이 폐간되면서 소년란에 ‘우리들의 차지’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영희야! 또 누구누구야…, 오늘로 우리는 끝난다…. 아주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는 또 만날 것이다”…, 인용 문구를 읊는 선생은 복받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말끝을 흐린다.

이런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말을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올곧은 신념이다.

문화 선진국이 되는 길
▲ 황금찬 시인의 오래되 보이는 돋보기가 인상적이다. © 최재원기자
선생은 외국에 나가면 제일 먼저 그 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에 들러보고 그 나라에서 발행된 책이 얼마나 되는가를 본단다.

그렇게 살펴본 결과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책을 제일 많이 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책을 많이 발행하는데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책읽기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재작년에 어느 교수가 신문에 발표한 것을 보니까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세계에서 27위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27위면 아프리카 수준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1년에 거의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래서 어떻게 문화선진국이 되겠습니까?”

선생은 책을 많이 읽는 운동, 특히 시를 많이 읽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 속에는 도적놈을 도적놈이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시도 있으니까.


선생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네버엔딩스토리 같다.
선생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는 또 어떤가.

시간은 평균 40분 정도, 먹는 장면이 꼭 두세 번씩 나온다. 그런데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고 만드는 장면은 좋지만 먹는 장면은 좀 피해야 한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다.

선생은 예로부터 밥을 씹어 먹고 숟가락으로 퍼넣는 것이 교양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장면 등은 최고의 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방송국은 문화를 전달하는 매체이므로 먹는 장면을 문화적 배경으로 바꿔서 방송을 하면 좀 더 대국민 계몽활동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즐거운 일과 슬펐던 일
언젠가 세계 시인대회에 참석해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노란 머리의 여자 두명이 와서 ‘한국에서 오신 황금찬 선생님이 아니십니까?’며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통역을 통하여 물어봤더니 두 사람은 미국의 시인으로 영어로 변역된 선생의 <심상>이란 시를 읽고, 또 읽고 밤새도록 울었다고. 그 얘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찡했다고.

선생은 남의 나라 가난한 이야기를 읽고 울었다는 것은 곧 시가 그만큼 감동적인 예술이며, 그 미국 시인들은 대단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라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독자들의 격려 편지 역시 많을수록 즐거운 법. 많은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것이라고.

90해를 살아오면서 슬펐던 일도 다반사.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1956년경 자유당 시절에는 <낙명>이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을 떨어지게 할려고 했다며 형사 3명이 잡으러 왔다고 회고한다.

“지금의 서울 외환은행 자리에 서울 특별경찰대가 있었어요. 아주 무서운 데지요. 그 때 거기는 시인이나 작가들의 사진 밑에 노란 봉투가 있었는데, 발표된 글이나 작품들이 봉투 속에 들어 있었고 집중 관리되었어요. 최후 당시 강릉경찰서장이 ‘황금찬이는 빨갱이가 아니고 반공주의자다’라고 증언까지 해야 했답니다.”

▲ 인터뷰 중인 황금찬 시인(좌)과 최세진 발행인(우) © 최재원기자
그리고 선생은 1962년 혁명정부시절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보릿고개, 가난했던 옛날 이야기를 잊지 말자고 썼는데, 혁명 정부에 반기를 든다며 작고하신 이범선 소설가의 <오발탄>과 <보릿고개>를 문제 삼아 또 다시 고난을 겪었지요. 그 때 야당에서 강력하게 반발하여 무마되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전두환 정권 당시의 이야기는 처음 공개하는 일화라고 했다.

때 그 괴로움과 좌절 협박 등 노이로제로 병원에 입원도 했습니다.

“제가 잡지사에 24개월 정도 연재를 했는데 숫한 검열로 잘려나간 부분을 채워넣는 일, 그것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는 내용으로 다시 글을 채워넣는 일, 그것은 또 다른 고문이지요. 그 뿐만아니라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이양되는 시점에서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강압적으로 생명을 위협해가며 강요한 글 ‘대통령자격론’을 썼는데, 그것이 당보에 실렸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것을 국민들이 알고 집으로 전화가 밤 낯을 가리지 않고…, 황금찬 야! 이 새끼야, 얼마나 쳐먹었느냐!, 니 가족을 몰살시켜버리겠다 등….

그래서 언어의 자유란 나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재작년 문예진흥원에서 원로 문인들을 몇 사람을 초청하여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8시간 동안 이야기 했는데, 지금 발표되면 안되는 것들이 있어서 나중에 발표하기로 했단다. 그 때 진행을 맡았던 교수가 그랬다고 한다.

“선생님 전두환 시절  ‘대통령자격론’이란 글을 쓰시고 받으신 원고료 말씀은 잘 하셨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그 때 한 2,3억 정도 받으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겨우 30만원 받으셨다니 이번에 정말 말씀 잘 하셨습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정말 꿈같은 시대입니다.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시 통해 지나온 삶 이야기할 터
이제 그는 삶의 모든 이야기를 시를 통해서 말하고 싶어한다.
“좀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이규호 박사라고 있었습니다”

이규호 박사는 전두환 정권 때 교육부장관을 지낸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언어철학을 전공한 인물. 어느 날 만나자는 요청에 의해 호텔에서 그의 부인하고 같이 만났다. 심한 수전증을 보이던 이 박사는 얼굴이 병고에 시달린 표정이었다.
 
“저를 보면서 황 선생님 저는 이제 오래 못살고 곧 죽음을 맞이하는데, 지금까지의 내 철학이 학문적으로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정리가 안 돼요. 그래서 시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좀 가르쳐 주세요. 이걸 하지 않으면 죽을 수가 없어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써서 주시면 제가 정리는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고, 손이 너무나 떨려서 못했다면서. 선생은 그 때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저는 제 인생의 정리를 시를 통해서 할 겁니다”

항간의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시집을 35권이나 냈는데 또 쓸 것이 있느냐고. 그럼 그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오늘 생각해보니까 오늘밖에 쓸 게 없었는데, 내일 살아보니까 내일 쓸 게 또 있어…”라고.

 <문화저널 21> 독자들에게
“문화예술 전문지 <문화저널21>, 참 생소한 신문사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사전을 놓고 보면 우리하고 친숙하게 마음을 통할 수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르누아르 그림처럼 이 신문사하고 좀 친하게 가슴 속 깊이 담아 두십시오. 여기 나오는 모든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럼 르누아르 그림처럼 여러분의 마음도 상쾌할 것입니다.

이 사회와 이 국가를 위해서 독자 여러분들과 이 신문사가 많은 활동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황금찬선생 서재에서 황금찬 시인(좌)과  최세진 발행인(우) © 최재원기자  

심상(心想)/황금찬 

욕구 불만으로 우는 놈을
매를 쳐 보내고나면
나무가지에 노래하는 새소리도
모두 그놈의 울음소리 같다.

연필 한자루 값은 4원
공책은 3원
7원이 없는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가 된다.

옛날에 내가
월사금 사십전을 못 냈다고,
보통학교에서 쫓겨오면
말없이 우시던
어머님의 눈물이 생각난다.

그런 날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도
반갑지 않다.
수신 강화같은 대화를 귓등으로 흘리고 돌아오면,
울고 갔던 그놈이 잠들어 있다.
잠든 놈의 손을 만져본다.
손톱 밑에 때가 까맣다.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

보릿고개에서
울음 우는
아버지는 종이 호랑이

밀림으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산 중에서 군주가 되라
아, 종이 호랑이여! 
 
황금찬선생의 동영상 메세지
☞우이동정착배경
☞성장배경 및 최근근황
☞문화선진국으로 향하는 길
☞시란 무엇인가?
☞시를 잘쓰는 방법
☞시 낭송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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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숙 2008/03/17 [10:18] 수정 | 삭제
  • 아직도 건강하신 목소리 정말 이 시대의 보배 원로시인이십니다.
    동영상말씀 감사드립니다.
    건승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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