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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음악평론가) 경이로운 연주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감동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13세 소녀의 쇼스타코비치 협연(제1번). 그것도 입양 소녀가. (9월 18일, 19:30분 kbs홀) 곡이 흐르는 동안 나의 뺨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마터면 복받쳐 흐느낄 뻔했다. 청중들은 극도의 긴장감에 빠져들면서도 악장 사이 손뼉을 쳤다. 그러나 이 가냘픈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고수지는 한치의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단단한 보석 같아 보였다. 깊고 깊은 절망 끝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푸른 별이었다. 아니 그건, 완벽한 쇼스타코비치였다. 수지는 입양 少女다. 어둠 속에 내팽개쳐진 처절한 핏덩어리. “데려온 지 6개월 동안 아이는 그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어요. 정말, 바보천치인가, 저능아인가 생각했어요. 늘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수지의 무반응을 검사한 병원 측은 집중결핍력(add)이라고 밝혔다. 그러던 수지가 우연히 바이올린을 만나면서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고, 선생이 갈 때마다 놀랐어요” 그렇다. 이 아이는 생후 바로 자기에게 가해진 저항할 수 없는 절대 고통의 무게에 짓눌렸던 게 분명하다. 인터뷰에도 그는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세상과 단절된 그런 무표정일 것 같았다. 자기만의 세계에 꼭 문을 잠그고. 그래서 몸으로는 교감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수지는 멘델스존처럼 행복한 음악을 싫어했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처럼 달콤하고 화사한 음악을 싫어했다. 그러나 수지를 잘 모르고 우리 청중의 대중성을 염려한 kbs 교향악단 측은 정중하게 레퍼토리 변경을 요구했지만 소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기는 절대 이 곡을 해야겠다는 고집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왜 수지가 쇼스타코비치를 택했는지 알았다. 그 영혼 깊은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수지를 안아주고 싶었다. 상처를 보석으로 만든 소녀가 위대해 보였다. 그것은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쓸 때 러시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정책이 강요되면서 억압을 했기 때문에 느낀 작곡가의 깊은 절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곡은 소녀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자기만이 행복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성역이자 특권이었다. 누가 이 자유를 뺐는 단 말인가. 누가 세상의 잣대로 곡을 바꾸라 할 것인가. 곡의 변경을 요청하자 지휘자는 ‘그건 오로지 수지의 권한’이라고 말한 것은 그래서 옳다.
수지가 기댈 세상의 유일한 언덕은, 희망은, 음악이다. 그래서 그는 가벼운 표정을 싫어한다. 그럴 마음을 생후 6개월 안에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13살 소녀의 저장된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을 보았다. 오늘 아빠는 수지에게, "수지야, 오늘 한국에 데뷔하는 이 날이 수지가 새롭게 태어난 생일 날이야, 이제 그 어둠의 고통은 다 잊어버려, 오늘 수지가 새로 태어났으니까“ 오빠(제이슨 18세) 까지 입양으로, 그리고는 자기 자식을 두지 않은 참으로 훌륭한 아빠(고세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총장)요, 미국인 엄마(세라)였다. 10개월 된 제이슨을 데려온 후 악성 신장염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 아이가 만약,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치료를 받지 못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그가 95년 예루살렘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6개월 된 수지를 입양한 것이다. 입양전도사로 불리는 고 총장은 “더 입양하고 싶었지만 수지에 몰두하느라 더 거둘 수가 없었어요, 제 어미가 아이 뒷바라지하느라 많은 고생 했지만 아이가 바이올린을 이토록 좋아하니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수지는 3살 때부터 이스라엘에서 교육을 받았다(최근 2년은 미국). “바이올린을 잡은 지 일주일 만에 정확한 음을 냈어요.”. 이곳에서는 공부 좀 하고는 마음껏 뛰어놀게 해요. 아이들이 놀 때 놀아야 나중에 그 체험이 녹아 음악의 자연스러움으로 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지는 지금 미국에서(시카고음악 영재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예능교육은 기술만 가르치는 암기식이어서 나중에 자라면 복제품같이 겉만 화려한 연주인 것과 정반대의 교육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이 천재 소녀의 연주를!. 연주 하루 전날에야 비로써 한 음악가로부터 휴대전화기로 긴급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약간은 화도 났고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음악회에 왔다. 그러나 오늘 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그 어떤 음악회보다 값지고 훌륭한 협연을 들었다. 처절하게 버려진 아픔의 고통을 끌어안고 이토록 값진 보석을 만들어낸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인 어머니가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6·25 이후 줄곧 고아 수출국이란 멍에도 벗어날 것만 같았다. 多文化 국가로 가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하고, 냉대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에 파문을 몰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아라!, 이제 우리도 수지 같은 입양소녀가 세계를 누빌 연주가로 성장했다. 일본의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13살의 미도리도 보았고 장영주의 소녀 시절도 보았지만 나는 수지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한다. 수지는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수지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례적으로 무대 좌우 측에 태극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서 있고 양국 국가가 울려 퍼진 ‘대한민국- 이스라엘’ 음악회. 젊은 지휘자 이스라엘의 아리엘 쥬커만은 무척 세련되고 음악 흐름이 좋은 지휘자였다. 나는 이 수지 음악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후반부 음악을 듣지 않고 음악회장을 나와 버렸다. 용서하시라. 후반부 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제7번. 베토벤 곡 중 유독 경쾌한 무도 음악, 나도 오늘만큼은 그 경쾌함이 싫었다. 끝나고 리셉션이 있다지만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수지가 쇼스타코비치를 고집한 그 마음 하나만을 꼭 껴안고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 연주영상보러가기[클릭] ☞ 삶의 향기가 가득한 문화예술전문분야의 선두주자“문화저널21” [저작권자(c)문화저널21 & www.mhj21.com.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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