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애기메꽃 / 홍성란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5/18 [08:54]

[이 아침의 시] 애기메꽃 / 홍성란

서대선 | 입력 : 2020/05/18 [08:54]

애기메꽃

 

한 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 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

 

# ‘아픈 만큼 성숙(maturation)하는 걸까’, 성숙하게 되니까 현실이 아프게 느껴지는 걸까. 유모차를 미는 엄마 곁에서 “애기메꽃” 같은 여자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다. 세 돌이나 지났을까,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밀어주는 유모차 속에 있어도 될 분홍원피스의 여자아이가 조그만 발로 종종거리며 세상의 길바닥을 걸어오고 있다. 

 

상상할 수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을 누리던 자리에서 한순간 재투성이 하녀와 같은 위치로 굴러떨어져 내린 것 같은 심리적 박탈감을 엄마는 진정 알고는 있는 걸까? 동생이라는 조그만 생명이 엄마 곁에 오기 전까진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다. 엄마도, 아버지도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울면 슬퍼했으며, 내가 잠들어야 비로소 휴식에 들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느 날, 조그만 생명을 안고 온 엄마는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을 허락도 없이, 양해도 없이 조그만 생명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왕좌에서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내려와 ‘폐위된 왕’의 심정을 엄마는 알기나 하는 걸까. 

 

등을 돌린 채 아기에게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도닥여 주는 엄마가 서럽고, 동생이라는 조그만 생명체가 밉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질투와 미움과 서러움이 오가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면, ‘아픈 만큼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 등 뒤에서 외롭고 서럽게 훌쩍이고 있을 첫째에게 ‘속상하면 엄마한테 말해도 돼’ 라고 다독여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아이는 그 내면에 ‘놀라운 아이(Wonderful Child)’ 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애기메꽃” 같은 여자아이는 서서히 자신의 동생을 받아들이는 현실 속에서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애기메꽃" 같은 여자아이는 동생을 받아들이며, 첫째로서 누리던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확대되어가는 가족 구성원의 의미와 역할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터득한 감정의 관리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성숙하게 처리하게 될 것이다. 가족관계에서 부모와의 갈등과 형제자매간의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성숙’을 이루게 된다면, 성인이 되어 만나는 다양한 타인들과의 사회관계 속에서 ”세상이 자기만을 위해 돌고“있다는 미성숙한 태도로 타인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게 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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