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무인도 / 류흔

서대선 | 기사입력 2024/04/01 [09:09]

[이 아침의 시] 무인도 / 류흔

서대선 | 입력 : 2024/04/01 [09:09]

무인도

 

섬 하나를 사야겠다

지도에 나와 있거나

나와 있지 않아도 상관없는

섬을 사야겠다 로빈슨과

크루소처럼 알콩

달콩 이웃하여 사는 섬

지는 석양을 보며 크아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섬

죽음을 향하여

천천히 헤엄쳐가는 거북등 섬을 사야겠다

그러면 무인도는

무인도가 아니겠지

그래, 세상 인연 다 떼놓고 가야겠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현금인출기를 찾는 범인처럼

아무도 없는 모래톱으로

잠입하는 밀물처럼

 

# ‘실러캔스 닮았네요’. 청산(靑山)을 찾아가던 길, 땅끝마을 ‘토문재’에 잠시 닻을 내렸던 저녁에 촌장의 거실에서 만난 류 시인이 건넨 시집 속에는 너울성 파도가 일렁거렸다. “무인도”를 찾고 있던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깊은 눈으로 잠시 정박한 노 시인을 반가워하며, 오래전 문학의 바다에서 스쳤던 인연을 추억하며 다정했다.

 

향기로운 차 모임에 참여했던 문인들은 약 3억 7천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해 바닷속에 살면서도 생존에 유리한 지느러미로 진화되는 걸 거부한 채, 자신의 앞발로 헤엄치고 바닷가를 걷기도 하는 ‘실러캔스’를 자신의 시적 자아로 내재화한 노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멸종되었다던 실러캔스가 살고 있었던 데본기(Devonian Period)의 바닷가에서 함께 출렁였다. 꽃향기 가득했던 시의 바닷가에서 일어서는데, 시인이 건네준 시집 속에서 시인의 ‘로코보코(Rokovoko)’에서 가져온 붉은 단풍잎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게 정말로 산 채로 잡혔다고?’ 이스트 런던 박물관장이 보낸 물고기 스케치를 받아든 로즈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이자 어류학자인 스미스(James Leonard Brierley Smith, 1897-1968) 교수는 깜짝 놀라 부리나케 이스트 런던으로 달려갔다. 물고기 시체가 부패 되기 전 가까스로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던 물고기가 실러캔스인 것을 확인했다. 1938년 남아프리카 연방(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스트런던 칼룸나강 앞바다에서 애비니 존슨 어업회사의 어선에 우연히 잡혔던 물고기였다.

 

그 후 상금을 내걸었던 두 번째 실러캔스는 1952년이나 돼서야 잡혔다. 실러캔스의 서식지는 코모로 제도였고, 이후 2006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마나도(Manado) 인근 해역에서 종이 다른 실러캔스가 발견되었다고 보고되었으며, 현재 최소한 두 곳에서 아직도 살아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약 7천 5백만 년 전에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던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던 유악류(Gnathostomata) 물고기로 진화를 멈춘 지구상 가장 오래된 척추동물이다. 

 

실러캔스는 지느러미가 다리 비슷하게 밑동 부분이 뼈와 살로 되어있으며, 단지 요골에 해당하는 부위가 조금 지느러미의 일부로 되어있다. 원시적인 폐도 있지만, 심해에서 살기에 기름으로 차 있다. 척추동물로는 특이하게 척삭이 발달하고 생체전기 감지기관을 가지고 있다. 번식방법은 난태생으로 비교적 성숙한 상태에서 새끼를 낳는다. 2021년 연구결과에 의하면 실러캔스 수컷은 40세, 암컷은 58세가 되어야 번식을 시작하며, 새끼는 5년 동안 어미 뱃속에서 성장한 뒤에 태어난다고 한다.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던 실러캔스는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으로 진화를 거부한 채, 오늘날도 아주 가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의 존재가 건재함을 알린다고 한다. 노 시인이 자신의 시적 자아로 내재화한 실러캔스의 삶이 시인의 길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류 시인에게서도 실러캔스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섬 하나를 사야겠다/지도에 나와 있거나/나와 있지 않아도 상관없는/섬을 사야겠다”던 시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셨고, 누이는 슬퍼했으나, 어머니는 맛있는 절편을 만들어주며 침묵하셨다고 했다. 아내는 자신의 간을 떼어 주며 시인의 길에 용기를 주었고, 딸은 아버지를 지지했다는 고향인 ‘로코보코’를 떠나온 시인.

 

자본의 욕망에 맞추어 진화시킨 지느러미로 매끈하게 헤엄치며 비트코인에 코를 박고, 주식이 뛰는 널 위에서 다리에 금이 가고, 아파트 투기로 아파트 숲에서 길을 헤매고, 권력에 줄을 서려 두 손을 조아리고, 충혈된 눈으로 눈치를 보는 대신, “무인도”를 사고 싶어 하는 시인.

 

그곳에서 “세상 인연 다 떼놓고” “로빈슨과/크루소처럼 알콩/달콩 이웃하여” “지는 석양을 보며 크아/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섬/죽음을 향하여/천천히 헤엄쳐가는 거북등 섬을 사야겠다”고 전언하는 시인에게선 세속적 욕망 충족을 위한 진화를 거부한 채, 자신의 등뼈에 각인된 기억의 고집인 시의 앞발로 삶의 해안가를 뒤뚱거리며, 정신의 깊고 넓은 바닷속 길을 보여주는 ‘실러캔스’ 모습이 어른거렸다. 밤새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던 바람도 물러가고, 너울성 파도에 묶였던 배들이 닻을 올리는 미명(未明)의 새벽, 노 시인 부부는 청산(靑山)가는 배에 올랐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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