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가마우지 / 강인한

서대선 | 기사입력 2023/12/04 [09:52]

[이 아침의 시] 가마우지 / 강인한

서대선 | 입력 : 2023/12/04 [09:52]

가마우지

 

물이 좋아

강에서 사는 새

 

황혼이 좋아

이강離江에 와서 살았네

 

가마우지

계림桂林의 가마우지

어부에게 붙들려서

 

발 묶이고 부리도 묶인 채

녹슨 유람선 타고

오늘은 사진 속의 배경이나 되어주네

 

가마우지

이강離江에 와서 늙었네.

 

# ‘민물가마우지가 왔네’ 곤지암천 옆을 지나는데, 냇물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물가에 민물가마우지 너댓 마리가 모여있었다. 기후의 변화일까, 아니면 목줄을 거부한 삶을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일까. 가마우지는 한번 노린 먹잇감은 잘 놓치질 않는다고 한다. ‘송곳 같은 부리, 칼날 같은 이빨, 까마득한 절벽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는 담력’을 가진 가마우지를 가리켜 정약전은 ‘물고기의 매’라고 표현했다. 가마우지 배설물은 한약재로도 쓰인다. 페루의 잉카인들은 농작물을 키우는 천연비료로 가마우지 배설물(구아노)을 사용하였으며, 외국에선 양질의 질소비료로 쓴다고 한다.  

 

가마우지는 기름샘이 없다. 기름샘이 있어야 온몸에 기름을 골고루 발라 깃털이 물속에서도 젖지 않을 수 있고, 체온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새들보다 열악한 조건으로 태어난 가마우지는 물속에 오래 들어가 있을 수 없다. 기름을 바르지 못한 깃털은 금새 물에 젖어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마우지는 기름을 바르지 못한 깃털의 약점을 강점으로 사용하여 더 빠른 잠수 능력을 키웠다고 한다. 그뿐이랴, 가마우지는 젖은 깃털을 활짝 펴서 수면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수면 위에 생긴 그늘 아래로 물고기들이 모여들면, 가마우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냥을 한다. 기름샘을 갖지 못했기에 물속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약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다른 새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깊게 잠수할 수 있으며, 물고기도 순식간에 잡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중국 계림(桂林)엘 갔었다. 관광 코스 중 하나로 계림 이강(離江)에서 어부들이 가마우지를 이용해 낚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상 위의 관람이었다. 저녁 무렵이었고, 대나무 뗏목에는 은은한 등불이 켜져 있었다. 조용히 흘러가는 이강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가마우지와 등불이 켜진 대나무 뗏목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어부 곁에 있던 가마우지들은 모두 목에 넥타이를 맨 것처럼 기다란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줄의 끝을 어부가 쥐고 있었다. 어부가 틀어쥐고 있던 가마우지 목줄을 느슨하게 놓아주자, 물속으로 뛰어든 가마우지는 조금 후에 물고기를 입에 물고 빠르게 헤엄쳐 대나무 뗏목 위로 올라왔다. 어부는 가마우지 주둥이에서 빼앗은 물고기를 관광객을 향해 들어 보였다. 아마도 커다란 물고기를 어부에게 넘겨준 가마우지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한 마리 얻어먹었을 것이다. 허기지고 고달픈 노동의 댓가로 받은 작은 물고기를 삼키는 가마우지의 삶을 보는 순간, 아름답게만 보였던 풍경 속에 숨겨진 ‘가마우지 경제’가 어른거렸다.     

 

펠리컨 경제(pelican economy)와 반대되는 개념인 가마우지 경제(cormorant economy)란 경제적으로 발전이 미흡한 지역의 경우, 정부 및 기업 등의 대규모 산업체가 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한 핵심 소재와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함으로써, 아무리 많은 제품을 팔아도 대부분의 수익은 결국 외국기업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가마우지 물고기잡이에 비유한 것이다. 그에 반대 개념인 펠리컨 경제(pelican economy)란 부리 주머니에 먹이를 담아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펠리컨처럼,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긴밀하게 협력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경제를 의미한다. 이는 기술자립도를 높일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부품 소재 분야에 있어서 시장은 크지만, 기술력이 높지 않은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펠리컨 경제를 위해선 우리나라의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자립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이 좋아/강에서 사는 새//황혼이 좋아/이강離江에 와서 살았네//가마우지/계림桂林의 가마우지/어부에게 붙들려서//발 묶이고 부리도 묶인 채” 어부와 함께 늙어가던 가마우지가 숨을 거둘 시간이 오면, 가마우지와 함께 낚시하며 살았던 어부들은 술잔을 들고 가마우지의 마지막을 지켜준다고 한다. 가마우지와 어부는 그들이 함께했던 이강(離江) 강물을 내려다보며 술잔을 나눈다고 한다. 가난한 어부의 삶의 한편에서 허기지며 고달프게 늙어갔던 가마우지는 어부가 부어주는 술 한 잔을 받아 마시고, 묶였던 삶을 끝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고 한다. 목에 줄이 묶인 채, 큰 고기는 빼앗기고 작은 물고기로 허기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이 이강(離江)의 가마우지에게만 주어진 삶은 아닐 것이다. 곤지암천으로 날아든 민물가마우지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목을 쓰다듬어 본다. 인간인 우리는 어떤 목줄을 목에 걸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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