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6/22 [09:00]

[이 아침의 시] 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서대선 | 입력 : 2020/06/22 [09:00]

 

다부원多富院에서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攻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치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戰士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

 

진실로 운명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6.25’ 70주년을 맞는다. 다부동 전투는 대구를 지척에 두고 남. 북 피아간에 총력이 투입되었던 처절한 격전지였다.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반격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 시 <다부원에서>는 다부원 전투 직후 종군문인으로 현장을 답사한 조지훈 시인이 쓴 이른바 종군 문학의 명편이다.

 

‘탐욕, 폭력, 교만’ 같은 것은 언제부터 우리가 자신의 종을 ‘슬기로운 사람(Homosapiens)'이라 칭한 마음의 영역 속에 들어앉게 되었을까. 인간이란 이름으로 지구에서 살아온 오 십 만년 이상의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 속에는 탐욕도, 폭력도, 교만도 인간들 사이에서 날뛰지 않았다고 한다. 수렵 채집인 사회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집단이 살아남아야 자신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적은 것도 남들과 나누었다고 한다. 부(富)를 필요 이상으로 탐내지도 않았던 것은 이동 할 때 짐만 되었기 때문이다. 양성(兩性)도 평등하였고, 자원(資源)을 공평하게 나누고자 애쓰는 집단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수렵 채집인들의 최고의 미덕은 ‘겸손’ 이었다고 한다. 만약 집단 속의 어떤 사냥꾼이 커다란 동물을 잡아와 지나치게 뻐기는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은 그의 교만을 깨닫게 하려고 ‘고기가 아주 질기고 맛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래도 교만한 태도를 보이면 그를 ‘외면’하고 투명인간처럼 대함으로써 무언의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가 ‘집단에 충성심을 느끼고, 특정 신념의 체계에 집착하고, 공감하고,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으며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 할 줄 아는 ‘슬기로운 사람’이 된 것은 소금 한 알의 1000조분의 1에 해당하는 원자 13개의 DNA가 약 99%의 유전자가 같은 침팬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작은 유전자 속에 오 십 만년 이상을 살아온 인류의 삶의 총화가 ‘암호화된 메시지’로 간직되어있는 것이다.

 

“조그만 마을 하나를/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제 목숨을 다 마치치 못했”다.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에서 시인은 전쟁이야말로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해치는 자해 행위임을 전언하고 있다. ‘적’은 누가 만드는가? 편을 가르고, 증오를 키우고,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팔고, 권력을 장악하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파괴하려는 폭력과 탐욕과 교만으로 ‘인류의 대멸종’을 앞당기려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6.25’ 70주년을 맞으며 밝고 맑은 역사로 가는 큰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