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달팽이 / 김두안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8/03 [08:23]

[이 아침의 시] 달팽이 / 김두안

서대선 | 입력 : 2020/08/03 [08:23]

달팽이

 

달을 보며 걷다

길이 아삭 밟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신발에 달라붙은 달팽이 집 풀밭에 닦아 버

렸습니다

어머니 생각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풍뎅이 같은 천적을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로 당한 위험(danger)도 아니었다.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달밤이었고, 고요했고,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위험(risk)사회'에 노출되어 인간의 “신발”에 밟혔다. “달팽이”는 그 밤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달팽이도 가족이 있었을까. 달팽이에게 닥쳤던 위험은 달팽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달팽이”를 밟았던 인간의 “신발”은 자연에 의한 위험(danger)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으로 용도에 따라선 다른 생명체에게 위험(risk)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인간의 삶 속에도 자연재해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초래한 위험이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전 지구적인 생태환경과 관련된 위험, 전쟁으로 파생된 위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해마다 가축들을 덮치는 질병, 2020년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COVID-19)와 같은 대형 악재들은 인간에 의해 일어난 위험이라는 것이다.

 

위험(risk)은 산업사회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 요소는 증가한다. 인간이 만드는 위험은 인간의 결정행위(decision making)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자연재해보다 더 파괴적이고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각종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불확실한 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에 대한 불안을 줄여보고자 하는 대처 방안의 일환이다. 이제 위험은 어쩌다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우리 곁에 ‘일상적 위험’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험은 ‘이미 발생한 재앙(catastrophe)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그 무엇’인 것이다. 아직도 ‘총. 균. 쇠’로 촉발된 위험사회가 종식되지 못했으며, IT산업과 AI산업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게 될지 우리의 삶을 긴장시키고 있다. 달밤을 걷다가 무심코 “달팽이”를 밟아 생명을 앗아간 “신발”처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일상적 위험들을 통찰하는 자세를 키워야 한다. ‘위험사회’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마음을 쓰기보다는 ‘일상적 위험’을 막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둘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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