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웃음 스티커 / 이서화

서대선 | 기사입력 2020/09/07 [09:27]

[이 아침의 시] 웃음 스티커 / 이서화

서대선 | 입력 : 2020/09/07 [09:27]

웃음 스티커

 

다양한 표정에서

웃음 하나를 떼어 낸다

갇혀 있던 웃음의 자리가 드러난다

매끈한 표현,

세상에 웃음보다 쉽게 떨어지는 것도 없다

다이어리 겉장에 혹은 악수에

살짝 떼 내어 붙인 웃음 스티커들

문구점이나 선물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웃음들

그러나 그 떼어 낸 빈자리마다

다시 씁쓸한 표정이 있다는 것

너무 쉽게 떨어지는 웃음이 있다는 것

 

표현하기 어려운 낱말의 이모티콘

사용설명서 없이 떼고 붙이는 동안

생략된 말들이 언제 저렇게 끈적거리는

뒷면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어떻게 매끈한 감정에 붙어 있었던 것인지

 

봉지를 뜯는 순간

다 써야 하는 모둠 스티커들

하트 몇 개는 여전히 붙일 곳이 없다

순간의 감정을 뗀 빈 곳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웃음보’는 우리 몸 어디에 들어 있을까? 고단백질과 도파민으로 형성된 4cm²⁲크기의 웃음보는 우리의 뇌 속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웃을 때 웃음보에서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호르몬이 스물한 가지나 방출된다고 한다. 크고 유쾌하게 웃으면 암과 세균을 처리하는 NK세포, 감마 인터페론, T세포, B세포, 등이 증가하여 면역기능이 높아지고, 심장 박동 수가 2배로 늘어나 폐 속에 남아 있던 나쁜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빨리 바뀐다고 한다.

 

웃음은 긴장이 갑자기 무너지고 즐거움과 여유, 대상을 비판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가 생길 때 발생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무리 지어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물이다. 웃음은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하는 감정적 배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일부러 웃는 웃음도 자연스런 웃음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기 일 수록 웃음보 속에 있는 “웃음 스티커”를 떼어내 사용해 보자. ‘5분간 웃으면 5백만 원 상당의 엔도르핀이 몸에서 생산되고, 10분 동안 배꼽을 잡고 깔깔 웃으면 3분 동안 힘차게 노를 젓는 것과 같은 운동효과가 있다’.

 

아직도 우리의 삶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팬데믹으로 곳곳에서 심리적 방어 전선의 임계점이 한계에 이른 소식도 들려온다. 인간도 심각한 위협상황에 처하게 되면 가장 원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가 활성화되어 적과 나를 구분하려 하고, 적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해 공격성이 분출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지적받으면, 순간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느껴 상대를 공격하거나 혐오스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상하부의 원시적 명령을 슬기롭게 넘기려면, 우리의 뇌 속에 있는 웃음보 속에서 “웃음 스티커”를 떼어내 마음에 붙일 수 있는 유머 감각을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1년 존 힝클리에게 총을 맞고 병원에 실려 가며 부인에게 한 말이다. “여보, 총알이 날아올 때 납작 엎드리는 걸 깜빡했어. 영화에선 잘했는데 말이야”.    

 

“다양한 표정에서/웃음 하나를 떼어” 환하게 웃으면, “매끈한 표현”으로 상대에게 편안함과 호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웃음을 떼어낸 빈자리엔 “다시 씁쓸한 표정이 있”을 수 있고, “생략된 말들이 언제 저렇게 끈적거리는/뒷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삶 자체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맞서 이기는 게 아니라 가볍게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은 눈앞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루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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