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하지 / 조창환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6/27 [08:38]

[이 아침의 시] 하지 / 조창환

서대선 | 입력 : 2022/06/27 [08:38]

하지

 

담쟁이덩굴이 벽이 끝나는 곳에서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빈 하늘이 보송보송하다

병아리 솜털 같은 바람이 불다 말고

새들이 만든 길을 가만가만 지운다

 

# ‘아직도 마늘들이 밭에 있네.’ 부지런하고 농사 잘 짓는 아랫집 김씨 아저씨네 텃밭 마늘들이 누르스름하게 말라버린 대궁들 끼리 웅기중기 모여 걱정스러운 듯,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김씨 아저씨네 집 앞엔 오늘도 재택 요양보호사 차가 서 있다. 두 해 남짓 대문 밖 발길이 끊어진 아주머니를 보살피느라 텃밭 마늘 농사도 뒷전이다. “하지” 때쯤이면, 김씨 아저씨네 마당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고 햇마늘 가득 넣은 토종닭이 끓었다. 지난겨울을 견디고 흙 속에서 또랑또랑하게 자란 육 쪽 마늘을 반 접씩 묶어 농협에 넘기고,  닭백숙 끓는 냄새가 골목길을 채우면 “하지”가 온줄 알았는데... 

             

“하지(夏至)”는 24절기 중 열 번째 해당하는 절기로 24절기 중 망종(芒種)과 소서(小署) 사이에 들며, 일 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시기다. 이 무렵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오의 태양 높이가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낮 시간이 일 년 중 가장 길어져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되기에 도시 사람들은 낮이 제일 긴 날로 알겠지만, 시골에서 “하지”는 일 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시기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농사짓는 시기를 잘 맞추어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닥쳐올 장마에 대비도 해야 하기에 제 때에 감자 수확, 고추밭 매기, 마늘 수확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끝내기, 늦콩 심기, 메밀 파종, 병충해 방재 등이 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옛 어르신들께선 일이 많은 “하지” 때, 육신의 균형을 잃기 쉽다고 보았다. 이때는 음식을 조심하며, 경솔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금기로 여겼다. “하지”를 전후해서 바쁜 농사일에 지친 육신을 보살펴야 한다는 조상의 지혜를 알고 있었던 김씨네 아주머니도 마늘 농사를 마무리 짓는 “하지” 무렵엔 가마솥을 걸고 토종닭을 고았나 보다.

 

“하지” 무렵, 우리 집 뒷산 숲도 바쁘다. 날개 근육을 다지려는 새끼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나는 연습에 골몰한다. “병아리 솜털 같은 바람이 불다 말고/새들이 만든 길을 가만가만 지”우면, 어미 새가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아기 새들에게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날아오라고 휘파람을 분다. “하지”를 건너며, 나도 나의 길 위에서 육 쪽 햇마늘 같은 정신을 키웠는지, 둥글게 둘러앉아 막 쪄낸 햇감자를 이웃과 나누는 마음의 농사를 지었는지 반성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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