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의 안보이야기] 국군의 날

김종철 | 기사입력 2023/10/04 [11:24]

[김종철의 안보이야기] 국군의 날

김종철 | 입력 : 2023/10/04 [11:24]

지난 9월 26일 제 75주년 국군의 행사가 웅장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은 성남공항에서, 시가행진은 서울 한복판 광화문 등에서 10년 만에 거행됐다. 10년 만에 이뤄진 시가행진에서는 수많은 최첨단무기가 공개되어 위용을 나타내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국군의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최고 군 통수권자와 주요 정부 인사, 일반 국민, 참가한 국군 장병이 함께 걷는 모습은 주적인 북한의 도발에는 총력전으로 응징 하겠다는 표현이며 주한 미군이 참가한 것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화되고 한국과 미국은 영원한 동맹으로 함께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 지난달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행사가 10년 만에 대규모로 치러졌다. / 대통령실 제공

 

국군의 날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됐다. 

 

국군의 역사는 대한민국 수립 이전에는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이 대한민국의 군사 조직 최초로 창설 되었다. 1946년에는 조선 해안경비대로 개칭하여 해상 치안 활동과 어로 보호 작전 등을 수행 중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칭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육군은 1946년 1월 15일 미군정 주도하 남조선 경비대로 창설 되어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 국군으로 개칭 되었다. 공군은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는 육군 항공대로 운용 되는 중 대한민국 건국 후 공군 창설 근거로 국군 조직법에 근거를 마련하였지만 창설 되지 못하다가 대통령령에 의거 1949년 10월 1일 창설 되었다. 

 

해병대는 대한민국의 지리적 여건과 여수·순천 반란 사건 등의 불안한 정세를 본 당시 해군 창설의 선각자들이 수륙양면 작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 되어 오늘까지 수많은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각 군의 창설과 함께 또 다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38도선 북쪽으로 진격의 날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의 날이라는 것이다.

 

6.25 전쟁 시 인천 상륙작전 후 서울을 수복한 유엔군과 국군은 38도선 이북으로 진격을 주저할 때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국군이 통일을 위하고 북녘 동포를 구하기 위해 38도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 날이다. 또한 6.25 전쟁 후 불안한 대한민국을 위해 당시 최고 권력자의 용단으로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된 날이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한미 동맹의 핵심 요소로 대한민국의 안보의 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국군의 날은 10월 1일리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군의 역사를 두고 대한민국 국군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 한반도가 일본 강점기에 있을 때 독립운동의 한 조직인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거나 대한민국의 주적의 한무리 또는 공산당을 위해 일한 자를 뿌리라고 망언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의 공통된 점울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의 주적이고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화를 없애려는 북한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무조건 지원이나 하려고 하고 사상과 이념이 완전히 틀린 데도 평화 운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안함 북침이나 연평도 포격전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제외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군 등은 군사 조직은 일본에 항거 했다면 지금 국군은 북환 이라는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북한과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을 외면하거나 못 본체 지나갔다. 이것이야 말로 전형적인 이중성을 나타낸다. 

 

광복군이나 국군이나 똑 같은 항거 정신인데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진정한 국군의 출발이요 뿌리를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국군은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일어난 4.3 사건, 여수 순천 사건, 6.25 전쟁과 이후 수많은 북괴의 도발에 대한민국을 굳건한 안보태세로 부강한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광복군 등이 대한민국의 뿌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광복군 추정 인원은 최대 600여 명으로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유가 김원봉이다. 김원봉은 김구 선생도 김원봉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두 번째는 임시 정부도 중국 장제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광복군 또한 중국군으로부터 수많은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광복군 장제스의 중국군의 명령과 지휘를 받아 임무를 수행 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이것은 국군 장병들의 정체성을 혼란을 주어 전투력을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면 네가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국군의 날은 국군의 위용을 만방에 널리 알리고 국민에게는 교육 및 무기체계 발전 등을 포함한 전투준비 태세를 표현하고 국민으로부터 점검을 받는 기회이며 적에게는 도발 시 강력하게 격퇴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이러한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 

 

2023년 국군의 날 행사는 어느 국군의 날보다 훌륭하고 멋지고 안보 면에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국군의 날 행사에 교통 혼잡 등을 일으켜서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고 방송에서 보도됐다. 그러나 9월 26일 기념식과 시가행진을 시간과 장소(구간)까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도되어 전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데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불편도 며칠이 아니라 겨우 몇 시간인데 일류 국민이면 그 정도는 불편은 참을 수 있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잊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로 가는 길은 강한 국군과 튼튼한 안보를 통한 힘에 의한 평화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김종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 연구위원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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