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알고 보니 도시개(city dog)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1/17 [08:41]

[홍사라의 풍류가도] 알고 보니 도시개(city dog)

홍사라 | 입력 : 2024/01/17 [08:41]

  © 홍사라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산 사람들이라면 계몽사에서 출간한 60권짜리 디즈니 명작동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 책 중에서도 몇몇 작품은 나의 최애도서였는데, 그중 하나가 ‘시골쥐와 서울쥐’다. 시골에 사는 애브너와 도시에 사는 몬티의 이야기.

 

간략히 이야기해보자면, 도시쥐인 몬티가 시골쥐인 애브너에게 도시생활을 권유한다. 먹을 것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다면서. 애브너는 도시생활을 하러 시골을 떠나게 되는데, 막상 도시에 가보니 위험한 일도 많고 계속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불안한 도시의 삶이 힘든 애브너는 다시 시골로 돌아오고 시골생활이 자신과 꼭 맞아 행복하다는 결말을 가진 동화책이다. 그림이 너무 귀엽고, 색감이 예뻐 디즈니 명작동화 중에서도 손에 꼽게 좋아했던 책이다.

 

왜 갑자기 동화책 이야기냐고?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이 동화책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9살 난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번에 제주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강아지들도 제주로 오게 되었다. 처음 제주로 오려고 생각했던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강아지를 위해서’ 였다. 이제까지 답답한 공간에서 생활했던 강아지들이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뛰어놀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과 달리 매우 빠르게 흐른다. 요즘에는 강아지들도 관리를 잘 해주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수명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도 오래 사는 강아지들의 수명은 15~18년 정도이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들도 오래 산다고 해도 저 정도가 아닐까 가정해 본다. 9년 동안 도시 생활을 했으니, 강아지들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전원생활을 해보자 싶었다. 강아지들이 신나게 웃는 얼굴로 넓은 벌판을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제주로 내려왔다.

 

강아지들에게 이사는 굉장히 큰 스트레스다. 3살 무렵인가 한번 이사를 했는데, 그때도 새집에 적응하는데 한달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당시 이사 스트레스로 인한 강아지들의 행동은 다음과 같았다.

 

1. 내가 나가려고 하면 몹시 불안해한다.

2. 원래는 잘 짖지 않는데 유난히 날카롭게 짖는다든가, 안 하던 하울링(늑대의 후예인 강아지들이 늑대의 습성처럼 자신의 위치를 알리거나 무리끼리의 의사소통을 위해 울부짖는 것을 말함)을 한다.

3. 아무 데나 배변을 한다. (원래는 화장실에서 배변함)

4. 주변의 소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끔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을 한다.

 

이번에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 반응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여기는 시골. 제주 중에서도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이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마도 소수의 동네 분들밖에 없을 거고, 앞마당도 널찍하고 서울보다 날씨도 따뜻하니 지난번 이사때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적을 거라 생각했다. 이사하고 일주일간은 유난히 흥분도가 높고 불안해 보여도 그려려니 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중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2주가 되고 3주가 지나가는 데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도시에 살 때보다 더 많이 짖고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중 아주 특징적인 행동이 하나 있는데, 온종일 창밖을 살핀다는 거다. 이사 온 집은 거실이 통창으로 되어있다.

 

커튼이 있기는 하지만 밖이 그대로 보이는 구조다. 창밖은 마당이라 잔디밭과 나무 말고는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 집 강아지는 밤이고 낮이고 창만 바라보고 앉아서 주위를 감시한다. 동네 사람이 지나가도 짖고, 옆집 개가 지나가도 짖고. 바람 소리가 나도 짖고,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려도 짖고, 아무것도 없어도 짖는다. 아주 하루 종일 경비견처럼 창문에 탁 붙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시한다. 고층에서 살다가 단층집에 살게 되니 보이는 게 많아 그런 것일까? 강아지들에게 너무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 낮에도 커튼을 쳐 두었다.

 

암막커튼까지 쳐서 밖이 안 보이게 해주면 좀 낫겠거니 싶어서 그런 것인데, 처음엔 살짝 효과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할 일을 하다 돌아보니 강아지들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부르며 찾아보니, 세상에나, 커튼을 열고 그사이에 들어가 떡하니 앉아서 밖을 보고 있었던 거다. 닫혀 있는 커튼을 어떻게 연 건지 모르겠는데, 앉아있는 뒷모습이 웃겨서 한참 웃었다. 아 진짜.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하이에나가 따로 없었다. ‘뭐라도 걸리기만 해봐라. 짖어줄 테다.’ 같은 모드랄까. 결국 강아지용 울타리로 통창의 아래부분을 어느정도 가리고 나서야 24시간 경계모드는 일단락되었다. 

 

강아지를 위한다고 시골로 왔는데, 와보니 우리 개는 시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넓은 마당이 좋아 보여 고른 집인데, 막상 와보니 생각지 못한 문제들도 있었다. 시골은 강아지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많아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도 많고,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 하던 것 같은 산책도 쉽지가 않다. 옆집 개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볕을 쪼이며 쉬다가 가는 일도 다반사다. 사방이 시야가 탁 트여 좋기는 한데, 그게 강아지들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것도 같고. 그 외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슈들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강아지들은 넓은 공간에 풀어놓으면 그저 즐거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집 강아지들은 시티독(City dog) 이었던 것 같다. 시골쥐가 도시에 가서 불안에 떨며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우리 꼬마들도 아직은 적응이 어려운가 보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그저 인간인 나의 바람이었던 걸까? 시골이 즐거운 시골개가 되려면 아마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하긴, 사람도 사는 장소가 바뀌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오늘도 우리 집 강아지들은 창문에 붙어 밖을 보며 경비를 선다. 그 모습을 본 조카가 시티독이라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도시개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시골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이 노력해보자. 여기 사는 동안 이 공간과 자연을 최대한 즐기면서!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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