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내 마음은 내거다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2/05 [09:39]

[홍사라의 풍류가도] 내 마음은 내거다

홍사라 | 입력 : 2024/02/05 [09:39]

며칠 전 걷다가 불현듯 떠올랐던 작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가끔씩 ‘마음의 감옥’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타인에 대한 부러움, 직장에서의 질타, 가깝다 여겼던 누군가의 비난이나 배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현재와 미래처럼, 우리를 순간 ‘나락’으로 보내버리는 일은 늘 멀지 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어떤 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 만큼 조금만 나의 발목을 잡아끈다. 그러나 어떤 사건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몸에 힘을 주어 버둥거려 보지만, 결국 그 힘으로 인해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려 들어갈 때도 있다. 그런 일은 때때로 나의 전부를 빨아들여 어느새 나를 통째로 잠식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다시는 이 감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어쩌다 내가 나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나 하는 자책감에 한없이 깊은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수술 후 3개월 운동 금지가 풀렸다. 이제 조금씩 운동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관성의 법칙인지 꼼짝도 하기가 싫었다. 그 좋아하던 걷기도 귀찮고 헬스나 필라테스처럼 근육을 쓰는 움직임은 더더군다나 싫었다. 잠시 시도해 보았지만 온몸에 있던 근육은 어디로 떠난 건지 같은 동작도 전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한주, 두주가 흘러가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어 있는 얼굴을 보고 ‘아 안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귀찮은 마음과,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싸우기를 수십 번, 눈곱만큼의 차이로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이 이겨, 억지로 내 몸뚱어리를 이끌고 근처 오름을 걷기로 했다. 오랜만의 걷기. 어색하고 낯선 공간이어서 일까? 처음엔 예전 같은 상쾌함이나 기분 좋은 느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날씨 덕분이었는지 무언가 모르게 스산한 기분도 들었고. 긴장을 한 채로 걷기를 수십 분,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역시 걷기의 위력. 편안한 마음이 드니 근래에 했던 고민이나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최근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속상한 일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가끔씩 찾아오는 일상적인 마찰 같은 것이지만 때때로 그런 문제들은 돌연 나도 모르는 사이 심각한 문제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런 감정에 빠져 있을 때는 극심한 외로움이 덮치기도 하고,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보고 세상천지에 나 하나구나 하는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걷다가 그 일이 떠올랐을 때는 무수한 원망의 말들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맴돌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같은 숱한 말들이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대략 5-6천보 정도 걷는 동안은 도돌이표같이 계속 비슷한 문장들만 떠올랐던 것 같다. 꽤 오래 걸었음에도 생각이 그곳에서 한 발자국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부의 자극으로 생긴 일이긴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쩌면 내가 만든 감옥에 내 스스로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음의 감옥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남이 만들어 준 감옥과 내가 만든 감옥. 같은 감옥이지만 두 감옥은 확연히 다르다. 남이 만들어 준 감옥은 필연적으로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한동안은 어쩌지 못하는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 타인이나 상황으로 말미암아 생겼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한동안은 나를 괴롭힐 수 있다. 내가 만든 감옥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내가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감옥. 그렇다 보니 그 올가미가 남으로 인한 감옥보다 더 견고하다. 나의 논리 속에 탄탄하게 지어올리다 보니, 빠져나갈 구멍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이 만든 감옥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만든 감옥으로 변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웃기지 않나. 내가 만든 감옥이라는 공간에 날 가두고 앞도 뒤도 옆도 볼 수 없게 단단하게 쌓아 올린 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내 모습이.

 

이쯤 되니 생각이 미치는 곳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만든 감옥에 스스로 갇혀있지는 말자는 생각. 내가 만든 감옥임을 알아챘다면, 그곳에서 한 발짝, 아니 반발자국만이라도 내밀어 틈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조금씩 틈을 넓히다 보면 내 다리가, 내 팔이, 몸통이 빠져나올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만든 감옥에 빠졌다면 나 스스로를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출하고 싶다고 바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만든 ‘감정’이라는 감옥에 빠져 산다. 내가 나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면, 스스로 나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힘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지금 당장 빠져나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늪에 빠졌을 때 빠져나오려 힘을 주고 버둥거리면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법이다. 그러니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천천히 조금씩 그곳에서부터 멀어져보자. 어떤 이유로든 그곳에 스스로 들어가기까지 힘들고 고난 했을 모두에게, 오늘은 손가락 하나라도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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