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담론의 기술, 상대 부정(否定)의 메시지를 인지하자

박항준 | 기사입력 2020/02/04 [16:08]

[박항준 칼럼] 담론의 기술, 상대 부정(否定)의 메시지를 인지하자

박항준 | 입력 : 2020/02/04 [16:08]

파일럿인 아들이 비행을 위해 출근할 때마다 그의 노모는 “오늘은 낮게 천천히 날거라”라고 하신다. 아들의 안전운항을 당부하는 말로 ‘본질’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이를 과학적으로만 해석할 경우 노모의 말씀대로 낮게 천천히 나는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말에서 과학적 팩트(fact)를 따지는 것은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혹여 노모의 말에 과학적 이론을 따지고 드는 이가 있다면 이는 본질을 읽어내지 못하는 ‘텍스트 난독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텍스트 난독증’은 상대의 말이나 글의 숨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팩트 체크’에만 치중하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반면 ‘텍스트 난독증’도 아닌데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이가 있다면 이들은 고의로 본질을 부정(否定)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의 마음을 품은 이들은 본질에 관심이 없다. 상대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부정(否定)하는 이유는 크게 자존심의 역린을 건드렸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생기는 경우, 상처가 있는 경우다. 그러니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얘기는 트집을 잡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의 상황(context)를 알지 못하고 서로간 팩트 체크를 하면 하수 싸움이 된다. 자존심과 감정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론에서 상대가 비합리적인 이견만을 낼 때에는 팩트 체크가 아닌 상대가 무엇을 ‘부정(否定)’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특히 팩트를 부정하는 상대에게는 팩트를 따지고들 것이 아니다. 상대의 주장을 따지고 드는 것은 감정싸움이 될 뿐이다. 

 

‘저녁 외식으로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자’는 즉흥적인 남편의 제안에 아내의 반응이 부정적일 때 “지난번에 스파게티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따지고 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왜 외식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아내의 부정에서 오는 메시지를 파악해야 한다. 결국 아내는 외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외출을 거부한 것이 아닌가. 

 

이렇듯 대화나 협상, 회의, 소통 등 담론의 효과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상대가 왜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을까를 먼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담론(談論)의 진정한 자세다. 그러면 담론을 주도할 수 있다. 여유 있는 자만이 이러한 자세를 취할 수 있으며, 흥분하지 않으면서 담론의 본래 목적을 얻을 수 있다. 상대 부정(否定)에서 오는 메시지를 인지하면 담론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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