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내가 먹은 홍합은 홍합이 아니라고!

윤학배 | 기사입력 2024/02/19 [14:31]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내가 먹은 홍합은 홍합이 아니라고!

윤학배 | 입력 : 2024/02/19 [14:31]

▲ 사진=픽사베이

 

날씨가 풀렸다고 하지만 이직 겨울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길을 가다 보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길거리 포장마차이다. 포장마차에 들어가면 인심 좋은 주인장이 먼저 내놓는 것이 바로 언 몸을 녹이기에 딱 좋은 김이 모락모락  구수하고 감칠 맛 나는 홍합 국물이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검은 껍질에 붉고 주홍색의 속살을 가진 그 홍합(紅蛤), 그 색깔을 따서 이름도 홍합이라 불린다. 그런데 알고 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즐기는 이 홍합은 사실 우리나라 홍합이 아니다. 더군다나 토종 홍합도 아닐 뿐더러 홍합도 아닌 홍합의 사촌 격이다. 아니 내가 먹은 홍합이 홍합이 아니라니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원래 이 작은 홍합?은 지중해에서 건너 온 ’진주 담치’라는 것으로 엄격하게는 홍합도 아니고 우리 토종 홍합과는 크기나 맛이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 토종 홍합은 크기가 손바닥만 한 정도로 제법 크고 육질도 쫄깃쫄깃한데 지중해 담치는 작고 맛도 약간 물렁하다. 원래 지중해에서 진주를 양식하는데 활용되기에 진주담치라고 불린다. 우리가 지금도 동해안으로 여행을 가면 맛보게 되는 섭죽이니 섭국이니 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동해안에서 ‘섭’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남쪽에서 ‘합자’라 불리는 것이 우리 토종 홍합이다. 동해는 물론 남해안에서도 이런 자연산 토종 홍합이 제법 잡힌다. 

 

그런데 이 지중해가 원산지인 이 진주담치는 다리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는데 어떻게 그 먼 바다를 건너서 우리나라 바다에 들어와 염치도 없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지중해 진주담치는 6.25 전쟁과 산업화이전에는 우리나라 바다에 없었다. 그런데 해방 후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유럽 특히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지중해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통항이 많아지면서 선박의 평형과 중심을 유지하게 해주는 바닷물인 발라스트(Ballast)에 실려 그들도 의도치 않게 들어왔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몰래 밀입국?한 지중해 담치가 우리나라 해안에 이주하여 완전히 적응하였고 토착화를 넘어서 왕성한 번식력으로 세력을 넓혀, 이제는 거꾸로 우리나라 토종 홍합을 먼 바다로 밀어내고 우리나라 홍합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기구?한 우리나라 토종 홍합인 ‘섭’의 신세인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섭’의 입장에서야 섭섭함을 넘어 원통할 만한 일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 이런 사례가 어디 한 둘 인가 싶기는 하다.

 

이처럼 진주담치와 같은 유사한 해양 생태계 교란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더군다나 이 발라스트 바닷물의 양이 우리의 상상을 넘는 것이다. 몇 십만 톤 크기의 유조선이나 곡물 운반선의 경우 이 발라스트 물이 수십만톤에 달하니 그 양이 엄청나다. 육지에도 고유의 생태계와 생태계에 적응한 고유생물종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도 특정 해역에 서식하는 고유 생태계와 생물종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바다문제를 다루는 UN 기구인 국제해사기구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런던에 본부가 있다.)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약 50억 톤 이상의 바닷물이 발라스트 수로 사용되어서 한 국가의 바다에서 다른 국가의 바다로 옮겨지고 여기에 수만 종의 바다생물과 미생물이 바닷물과 함께 이동하게 된다.

 

사람이야 여권도 있고 출입국 비자가 있어서 기록이라도 남지만 이 발라스트에 실려간 생물들은 말 그대로 허가도 없이 남의 바다에 밀항이나 밀입국 한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부산항에서 10만톤 크기의 배가 호주로 옥수수를 싣기 위해 출항하면 빈 배이기에 부산앞바다에서 바닷물 10만톤을 배 밑바닥에 채우고 호주 시드니 항으로 가서 채웠던 부산 앞바다 바닷물을 시드니 앞바다에 버리고 대신 옥수수를 10만 톤을 싣고 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산앞바다에 살던 해양생물이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호주 시드니로 이동하여 살게 된다.

 

당연히 호주 시드니 앞 바다의 해양생태계는 부산 앞바다에서 이동해 간 해양생물로 인해 교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는 외래 해양생물이 부착하거나 토착화하여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 바다의 참게와 고둥이 미국으로 가는 선박의 발라스트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가 미국 서부항만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나 LA의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선박평형수에 실려오는 해양생물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제해사기구(IMO)는 발라스트 수를 싣고 배출할 때에는 반드시 해양생물을 살균하거나 거르게(filtering) 하는 등 강제화 조치를 하도록 국제규정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제 규제흐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여 20조원 이상 되는 세계 발라스트 처리 장치 시장의 30%정도를 점유한다는 점이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홍합 아니 진주담치처럼 이미 우리 바다에 들어와 있는 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가는 겨울이 아쉽다면 동해안으로 달려가 우리 토종 홍합인 뜨거운 ‘섭국’ 한 그릇 어떨까 한다. 커피 한잔에 파도를 보는 ‘파멍’은 덤으로 즐기면서.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