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검역(Quarantine)과 40일!

윤학배 | 기사입력 2024/03/06 [09:29]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검역(Quarantine)과 40일!

윤학배 | 입력 : 2024/03/06 [09:29]

▲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에서 엑스레이 판독 및 검역탐지견으로 검색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농침축산검역본부 제공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려고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입국하려면 3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검역(檢疫, Quarantine)이다. 사람에 대한 검역도 하고 동식물에 대한 검역도 한다. 평상시에는 그냥 쉽게 통과하는 절차이지만 우리는 코로나 시절 이 검역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살았다.

 

그 다음이 입국절차(Immigration)다. 약간은 무뚝뚝한 듯 보이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권을 살펴보고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얼굴도 확인하는 바로 그 과정이다. 여기에서 통과하면 입국도장을 쾅하고 찍어준다. 하기에 요즘은 이것도 자동화되어서 도장이 생략되기도 한다. 다음이 세관(Custom)이다. 특별하게 밀수나 고가의 물품을 가져오지만 않으면 무사통과다. 우리는 이렇게 입국에 필요한 3가지 절차를 가리켜 앞머리 글자를 따서 CIQ라고 부르고 이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기관들인 검역소와 출입국사무소, 세관을 CIQ기관이라 부른다. 공항이나 항만에서 소위 ‘힘이 센’ 기관들이다.

 

이중 검역은 평소에는 별 관심을 두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출입국 절차다. 그러나 소위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검역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생생하게 체험한 바 있다.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국내 여행도 ‘일단 멈춤’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검역은 코로나나 사스처럼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팬데믹(pandemic) 시대에는 국가의 어느 역할보다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 영어로 검역을 의미하는 ‘quarantine’이라는 말은 이탈리아의 4대 해양도시 공국중에서 가장 번성했던 바다와 물과 배의 도시 베네치아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이태리 4대 해양공국은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아말피를 일컫는데 이중 베네치아만 이태리반도의 동쪽인 아드리아해에 위치하고 나머지는 반대편인 이태리 반도의 서쪽인 지중해에 있다. 그러기에 현재 이태리 해군을 상징하는 이태리 해군의 깃발은 이 4개 해양공국의 문장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지금이야 아말피나 피사가 무슨 해양 도시 국가였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만도 하지만 근대 이전까지는 이태리는 물론 유럽의 상권을 쥐고 흔들었던 해양공국이자 항만도시이고 부자 도시였다. 이들 4개 도시는 뛰어난 선박과 숙련된 선원들을 보유하면서 인도와 이슬람세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지중해는 이들 해양도시의 앞마당이었고 호수였다. 그러나 이들 이태리 해양공국의 운명은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게 멸망하여 지중해 동쪽 바다의 패권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넘어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동시에 지중해 중심의 서양의 세계사는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과 더불어 대서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1660년대 이전 중세시대의 위상에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지만 아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베네치아는 지리적 여건상 항상 외부로부터의 전염병이나 질병의 유입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전염병이 도는 지역이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배가 베네치아에 입항 하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바로 베네치아 외곽의 작은 섬들 몇 곳을 지정하여 이 배와 선원들을 일정기간 격리한 후에 이상이 없으면 베네치아 입항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베네치아는 페스트가 절정이던 중세시대인 1377년부터 외부에서 페스트 감염자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이와 비슷한 격리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이 때 격리하는 기간이 바로 40일이었는데 아마도 40일이면 병균도 죽고 감염된 사람도 회복하거나 해서 문제가 없는 기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40일이 이탈리아어로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quaranta’이다. 이 40일이라는 ‘quaranta’가 영어와 불어로 받아들여져 이제는 40일 보다는 검역이라는 출입국 용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 40이라는 의미는 서양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성경에 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바로 준비기간이나 시련기간을 의미한다. 모세의 호렙산 40일, 유대인들의 광야생활 40년, 예수님의 40일 금식과 40일간의 광야생활 등이 그것이다. 베네치아의 40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이제 공항이나 항만에서 검역하는 것을 보게 되면 베네치아와 바다를 떠 올려 보자. 참으로 바다에서 유래된 무궁무진한 우리의 일상이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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